엄마로 빙의하여 아들을 바라본다

by 강게리

'엄마에게 상처주기로 했다'를 주제로 브런치북을 쓰기로 했다.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들어 나에 대한 엄마의 마음을 알고자 잠시 빙의해 보기로 했다.


-슉~ 빙의완료-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걱정이 되어 안부를 핑계 삼아 전화를 건다. 하지만 아들은 그 모든 게 잔소리처럼 들리는지 늘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는다. 이제는 자기도 자식 가질 나이가 넘어 알 만큼 안다며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아들을 볼 때면, 행여나 홀어머니에게 마음이 떠나 아내만 바라볼까 봐 눈치가 보여 완강하게 반박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아들에게서 먼저 연락이 올 때가 있다. 대부분 무언가 필요해서 한 연락이면서도, 자기도 무안한 지 뜬금없이 밥은 먹었냐, 몸은 좀 어떠냐며 어색한 안부를 묻는다. 엄마는 그 속이 뻔히 보이면서도 그저 내 새끼 목소리를 듣는 게 싫지만은 않다.


며느리와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면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들이 나를 대하는 무심한 태도에 무득문득 섭섭함이 밀려온다. 이혼 후 서울에서 부천의 허름한 빌라로 이사와 오직 두 알들만 바라보며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죽기 살기로 버텨온 세월이기에, 그 섭섭함은 종종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변한다. 그렇다고 이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자니, 행여나 잘살고 있는 아들의 마음에 짐을 지게 하고 불행을 안겨줄까 염려스러워 속으로만 삼킨다. 그래도 나에게 손 한번 내밀지 않고 자기 가정을 꾸려 소신 있게 살아가는 녀석을 보면 제법 대견하고 믿음직스럽다.


가끔 아들이 거래처 가는 길이라며 불쑥 찾아와 밥을 먹고 갈 때가 있다. 내가 보고 싶어서인지, 내 건강이 걱정되어서인지, 아니면 그저 밥 한 끼 해결하려는 핑계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내가 정성스레 차려놓은 밥을 맛있게 먹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마에겐 삶의 위안이자 큰 안심이 된다. 밥을 다 먹고 문밖을 나서는 아들의 등 뒤로 왜 이리 이것저것 챙겨주고만 싶은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아들의 표정을 보면서도, 기어코 바라바라 짐을 들려 보내는 고집스러운 사랑을 양보할 수가 없다.


이제 아들이 건강하게 자식 잘 낳고 잘 키우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겠는데, 자식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직 갖지도 않은 아이를 들먹이며 이런저런 잔소리와 설레발을 치게 된다. 그럴 때면 아들은 기겁을 하며 화를 낸다. 어릴 때 종종 사고를 치고 고집부릴 때가 있긴 했어도 지금처럼 나를 가르치려 들거나 매몰차게 화를 낸 적은 없었는데, 행여나 나를 미워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더 늙고 힘이 없어지면, 아들도 자기 자식 챙기느라 나를 소홀히 대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가슴 한구석을 찌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노파심도 사랑이라는 것을 아이를 가지면 알게 되겠지. 엄마는 오늘도 내 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을 참을 수가 없다.


-빙의종료-


빙의하여 상상을 정리해 보니 내 못난 투정과 합리화, 밑바닥의 이기심조차 묵묵히 받아내 준 그 거대한 수용이 나의 마음을 때린다.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영향은 육체적, 심리적 '절대적인 안전지대'였다. 내가 밖에서 아무리 상처받고 지질하게 굴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불효자인데, 아빠가 되라고요?"라며 지레 겁을 먹으면서도, 기꺼이 부모라는 신비로운 영역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게 만든 진짜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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