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미숙함은 가혹함의 대상

by 강게리

누군가의 날것 그대로의 감정이 폭발했다.




금요일 밤, 가벼운 설렘과 타인의 연애사를 기대하며 넷플릭스를 열었다. '나는 솔로' 30기 영철의 대성통곡은 시청자들의 보편적인 기대 심리를 처참히 배반한 장면이었다. 눈물의 온도차는 컸고, 태도의 돌변은 급격했다.


자신을 걱정해 다가온 상철에게 그는 "오지 마세요. 저리 가세요"라며 매몰차게 선을 그었다. 그러고는 언제 울었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목표를 다 이뤘다. 속이 시원하다"며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심지어 자신을 위로하려 했던 이가 누구인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안방극장에 전달된 것은 타인과의 교류가 철저히 단절된, 오직 혼자만의 기행이었다. 시청자들은 당황했고, 이내 그 당혹감은 거부감으로 번졌다 방송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는 들끓었다.


'소름 돋는다', '무섭다', '왜 저런 사람을 방송에 내보내느냐'


비난이 쏟아졌다. 급기야 그를 타인의 감정을 착취하는 '나르시시스트'라 규정짓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우리는 왜 그의 행동에 이토록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었을까. 그것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는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과 상호작용할 때, 호의에는 감사로 답하고 슬픔은 어느 정도 통제할 줄 아는 '사회적 규범'을 기대한다. 영철의 행동은 예고도 없이 이 암묵적인 룰을 산산조각 냈다.

대중이 그를 향해 날을 세운 것은 그들이 타인에 대해 유독 매정해서가 아니라, 소통이 불가능해 보이는 타인의 낯선 붕괴 앞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자기 방어이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을 때 겪는 자연스러운 거부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차가운 비난의 소음 속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그의 내면을 조심스레 들여다보자. 과연 그는 타인을 조종하려는 나르시시스트일까?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아마도 그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특이하다"는 시선과 싸워왔을 것이다. 남들과 조금 다른 자신을 부정하기도 하고, 세상의 편견에 맞서 속으로 수없이 마음을 다잡으며 소신껏, 그러나 외롭게 버텨온 35년이었을 테다.


연인과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계의 정점을 향한 도전은, 역설적으로 '나'를 객관화해야만 하는 잔인한 시험대다.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친구 관계에서의 어긋남보다, 나의 밑바닥까지 내보여야 하는 연인 관계에서의 좌절이 훨씬 더 뼈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에.


수많은 인간관계가 얽히고설킨 '나는 솔로'라는 압력솥 안에서, 그는 마침내 자신이 일반적이지 않음을 직면했다. 그 순간 터져 나온 대성통곡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다. 우리가 아는 보편적 슬픔이 아니라는 말이다. 과거 우여곡절 속에서 상처받고 웅크렸던 시간들이 오버랩되며 터져 나온 창발적 현상이다.


평생을 둘러싸고 있던 두꺼운 방어기제의 알이 깨지는, 지독하게 고통스럽지만 필연적인 자아 직면의 순간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나오기 잘했다"며 후련해하던 그의 불안정한 모습은 미치광이 촌극이 아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진짜 민낯과 마주한 사람이 겪는 당연한 감정의 혼란이자 치유의 시작점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미숙하다. 단지 사회라는 매끈한 가면을 쓰고 그것을 능숙하게 숨기고 익숙함에 살아갈 뿐이다. 영철의 날것 그대로의 미숙함이 유독 불편했던 이유는, 어쩌면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숨겨둔 들키고 싶지 않은 서툰 모습이 그의 오열 속에서 불쑥 마주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흉측하고 처절하다. 타인의 치열하고 아픈 고군분투를 단지 '무섭다'는 단어로 납작하게 눌러버리기엔 우리의 삶 역시 그리 완벽하지 않다. 폭풍 같은 감정의 혼란 속에서 세상과 만나 서툴게 배워가고 있는 이방인에게, 비난의 화살 대신 잠시나마 따뜻한 연민의 시선을 보내주면 어떨까.


"영철에게 감동받은 정숙"이라는 다음 주 예고편의 문구처럼, 그리고 훗날 나는 솔로 라이브 방송에서 영철과 상철이 서로 오해를 풀고 이해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응원의 마음을 품고 다음 주를 기다린다. 그가 흘린 당혹스러운 눈물이, 결국 단단한 껍질을 깨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기 위한 도약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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