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은 사라지고 '가성비 좋은 친구'만 남은 인간관계
인간의 뇌가 온 마음을 다해 감당할 수 있는 진짜 '절친'의 숫자는 평생 단 5명뿐이다.-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
내 스마트폰 연락처에 1,200명이 넘는 이름이 저장되어 있는데도, 학창 시절 영원할 것 같던 솔메이트들이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린 건 지극히 과학적인 현상이었던 거다.
주말을 맞아 집안 대청소를 하다 90년대 스티커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한껏 꼴사나운 폼을 잡고 브이(V) 자를 그린 나와 내 절친. 그 아래에는 반짝이는 젤 펜으로 '우정 영원히'라는 낭만에 취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부모님이 불허한 외박도 서슴지 않고 친구집에 며칠은 함께 보냈던 우리는 언제부터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렸을까. 내가 매정한 놈이라서? 의리 없는 배신자일까? 아니다. 그저 우리의 뇌 용향이 꽉 차버렸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던바 교수가 말한 그 '5명'의 VIP 좌석은 필연적으로 남편, 아내, 자녀, 혹은 당장의 생존과 밥벌이에 직결된 사람들로 리뉴얼될 수밖에 없으니까.
10대, 20대 시절 우리는 서로가 우주의 중심이었다. 야자 시간을 땡땡이치고 같이 먹던 핫도그는 미슐랭 3 스타보다 맛있었고, 네가 실연을 당하면 내가 대신 전 애인의 삼족을 멸할 기세로 저주를 퍼부었다. 대학 입시부터 첫 직장의 더러운 상사 욕까지, 우리는 서로의 가장 완벽한 '감정 쓰레기통'이자 '비밀 금고'였다. 우리는 늙어서도 실버타운에서 함께 하자며 굳게 약속했었다. 하지만 40대가 넘어가며, 그 견고했던 우정의 성벽은 현생의 파도와 흉흉한 시대상을 맞고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뇌 용량의 한계도 한몫하겠지만, 우리가 사는 현시대의 씁쓸한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뉴스만 틀면 '믿었던 지인에게 당한 사기', '십년지기의 뒤통수' 같은 범죄가 쏟아진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방어기제가 뼛속 깊이 새겨진 세상. 그러다 보니 10년 만에 옛 친구에게서 "잘 지내?라는 카톡이 오면, 반가움보다 합리적 의심이 앞선다.
뭐지? 보험인가?
다단계 옥장판을 팔려나?
혹시 돈 빌려달라는 건가?
순수했던 시절의 추억마저 현대 사회의 불신 필터를 거치면 순식간에 공포 스릴러로 변모한다. 사람이 싫어진 게 아니라, 변해버린 사람을 감당하고 검증할 에너지가 40대 중년에게는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이토록 사람을 경계하는 팍팍한 사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인연을 맺는 건 숨 쉬는 것만큼 가벼워졌다. 인스타그램만 켜면 나와 취향이 맞는 랜선 친구들이 널려있다. 자식 학원비 걱정, 아내의 갑갑한 잔소리, 부동산 평수 비교 같은 피곤하고 질척이는 현실 교집합은 쏙 빼고 소통할 수 있다. 그저 예쁜 홈카페 사진에 '좋아요'하나 눌러주고, "너무 멋지네요."라는 영혼 없는 댓글만 남기면 그만이다.
과거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나의 밑바닥 감정까지 내어주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데, 화면 터치 한 번으로 적당한 도파민과 소속감을 채워주는 '온라인 지인'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러니 굳이 옛 친구와의 끊어진 밧줄을 땀 뻘뻘 흘리며 다시 이을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우리는 그저 감정 소모가 적고 안전한, '가성비 좋은 관계'로 도피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니, 옛 친구와 멀어진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우리의 삶이, 그리고 이 세상이 그렇게 세팅되어 버린 것뿐이다. 서랍 속 스티커 사진을 다시 덮으며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어릴 적 절친이 지금 내 곁에 없다고 해서 그 시절의 찬란했던 우정마저 부정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 친구는 그저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시즌1'에 등장해 주었던 가장 완벽하고 눈부신 주연 배우였던 거다.
결국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의 채사장 작가의 책 제목처럼, 그곳이 남은 현생의 어느 후미진 골목길이든, 아니면 다 늙어 숨을 거둔 뒤 저승 문턱에서든. 진짜 다시 만날 운명이라면, 굳이 지금 당장 끊어진 밧줄을 억지로 이어 붙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는 마주치게 되어 있다면, 그저 지금은 각자의 세트장에서 '현생'이라는 남은 시즌을 완주하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