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그네 벤치 강탈 사건

범인은 5세, 공범은 엄마

by 강게리

0.6명이라는 초저출산 시대, 대한민국 공공 벤치의 절대적 소유권은 세금 낸 어른이 아니라 '무적의 미취학 아동'과 그를 호위하는 '보디가드 부모'에게 있다.




마침내 봄이 왔다. 아내의 손을 잡고 나선 동네 산책, 5분만 걸으면 흐드러지게 펼쳐지는 벚꽃 터널에 우리는 한껏 심취했다.


"우리 진짜 이사 잘 온 것 같아."


대출의 부담도 잊은 채, 우리는 동네 빵집에서 샌드위치까지 사 들고 경치가 가장 잘 보이는 명당자리, 이른바 '그네 벤치'에 운 좋게 안착했다. 따뜻한 햇살, 훌륭한 뷰, 입에 물고 있는 샌드위치까지. 자본주의가 허락한 소박한 부르주아 코스프레를 즐기며 인생의 유의미함을 논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우리 옆자리 '그네 벤치'에는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조용히 봄을 즐기고 계셨다. 그런데 그 평화로운 풍경 속을 깨고 누군가 다가왔다. 5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였다. 아이는 할머니가 앉아있는 그네 벤치 바로 뒤에 바짝 붙어 섰다.


"나 그네 타고 싶어."


할머니에 대한 부탁이 아니었다. 넓직히 비어있던 옆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어줄 것만 같은 엄마에게 말하는 벤치를 향한 소유권 주장이 아니었을까. 나는 내심 아이 엄마의 제지를 기대했다. "얘야, 할머니 앉아 계시잖아. 기다려야지." 같은 지극히 상식적인 대사를 말이다. 하지만 아이 바로 옆에 서 있던 엄마는 마치 아이의 전속 보디가드라도 된 양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벤치와 할머니를 번갈아 응시할 뿐, 그 침묵은 무언의 압박처럼 보였다.


"응~ 타고 싶었구나~"


할머니는 그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이 묘하게 쓸쓸하면서도 서글펐다. 자본주의와 인권 존중의 사각지대에서, 나이 듦이 곧 '우선순위의 밀려남'임을 그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 터득하신 걸까. 불쾌해하며 따질 법도 한 상황을 가장 부드러운 말투로 무마하며 자리를 내어주는 늙은 노인의 지혜가 못내 뼈아팠다.


이 기묘한 벤치 강탈 사건은 사회학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샤론 헤이(Sharon Hays)가 주창한 '집중 양육(Intensive Mothering)' 이론에 따르면, 현대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시간, 돈, 감정을 무한대로 쏟아부으며 아이의 욕구를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 완벽한 양육이라 맹신한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초저출산 현상이 결합하면서 아이는 희귀한 '국가적 보물'이 되었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희소성은 곧 권력이다. 아이가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공공재인 벤치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도덕적 규범은 손쉽게 생략되어 버리는 '아동 중심주의의 사상'이 벤치 위에서 적나라하게 증명된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의 평화로운 일상에 갑자기 철학적이고도 삐딱한 뇌우가 몰아쳤다. 아이를 낳으면 애국자라 칭송받는 세상. 물론 험난한 육아의 세계에 뛰어든 부모들의 노고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위대한 애국심과 본능적 욕망의 결과물이, 왜 생면부지 할머니의 벤치를 강탈하는 무기로 쓰여야 한단 말인가.


아이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침묵으로 일관하며 무언의 압박을 가한 그 엄마의 모습은 마치 합법적 완장을 찬 독재자 같았다. '내 아이의 기분'을 위해 타인의 권리를 희생시키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사회. 만약 나도 언젠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내 자식의 칭얼거림 한 번에 남의 휴식을 무참히 박살 내는 불도저 같은 괴물로 변하게 될까? 이기주의를 부성애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채 말이다.


나의 뇌 속에서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얽히는 사이, 할머니를 내쫓고 벤치를 차지한 "애국자의 2세"는 그네를 냅다 두어 번 세게 흔들어 탔다. 10초 채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미끄럼틀에 꽂혀 미련 없이 벤치를 떠나버렸다. 덩그러니 남겨진 빈 벤치가 바람에 삐걱거리며 흔들렸다. 할머니가 양보한 것은 그 귀한 봄날의 여유였건만, 그 차지는 고작 미끄럼틀보다 못한 10초짜리 유희거리로 휘발되어 버렸다.


멍하니 그 장면을 지켜보다 순간 궁금해졌다. 훗날 5살 배기 아이가 내 등 뒤에서 "나 이거 탈래"라고 강탈시전을 한다면, 나는 그 할머니처럼 우아하고 인자하게 일어날 수 있을까? 아니면 "내가 먼저 왔어 이놈아!"라고 버티다 맘카페에 '공원 그네 벤치 진상 할배'로 박제되는 최후를 맞이하게 될까.


지금 심정으로서는 아마도 후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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