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 순례길의 시작

by Gi

간밤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가, 맞춰 두었던 알람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호스텔 2층 침대에서 내려와 창 밖을 바라보니 순례길 첫날을 기원이라도 하듯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였다. 온도와 습도 또한 완벽했다. 시작이 좋다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리스본 대성당은 9시 30분에 입장객을 맞이한다. 나는 크레덴셜을 구매해야 해서 빠르게 샤워를 마친 뒤 짐을 꾸렸다. (여기서 크레덴셜은 순례자 여권이다. 단순한 신분증이 아닌 순례자의 여정을 증명하고 자격을 부여하는 의미이기에 필수로 들고 다녀야 한다.)


혹시나 빠진 물건이 없는지 몇 번이나 체크를 한 후에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배낭을 메고 거울을 보니, 어제와는 다른 모습의 내가 서 있었다.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표정, 그리고 무언가 결연해 보이는 눈빛.

어딘가 어색하다.


호스텔을 나서자 리스본의 아침 공기가 내 폐부를 가득 채웠다. 근처 작은 마켓에서 우유와 빵을 사 들고 성당으로 향했다. 파스텔 톤의 건물들, 울퉁불퉁한 포르투갈 특유의 보도블록,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트램 소리. 광장을 오 다니는 관광객들과 그들을 맞이하는 가게 직원들의 분주함.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나는 이 도시의 숨결을 느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했다


성당에 도착하니 9시 20분이었다. 리스본 대성당 앞에 서니, 그 웅장한 모습에 잠시 숨이 멎는 듯했다. 12세기 중반에 지어진 이 성당은, 무어인들로부터 도시를 되찾은 기독교 십자군의 승리를 기념하며 세워졌다고 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시작되어 여러 차례의 지진과 재건을 거치며 고딕, 바로크 양식이 더해진 리스본 성당은 마치 리스본의 역사 그 자체를 보는 듯했다. 세월의 풍화 속에서도 그 웅장함을 잃지 않은 건 수세기 동안 사람들의 기도와 희망이 담겼기 때문일까.


성당이 열기까지 기다리는 여행객들과, 나와 같은 순례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물론 몸만 한 배낭을 메고 있는 모습들이 여지없이 순례자 모습이긴 했다. 순례자들 사이에서는 어떤 특별한 유대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처음이신가요?"

"어디서 오셨어요?"

"산티아고까지 가시나요?"


이런 질문들이 오갔다.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지만, 먼저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그때, 갑자기 한 중년 여성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에서 오셨나요?"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아, 제가 한국에 몇 번 가봤거든요. 한국 사람들 눈빛이 특별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른 순례자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예상치 못한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이번이 첫 순례길이에요. 사실 좀 두렵기도 하지만, 기대도 돼요."


내 입에서 나온 서툰 영어에 놀랐다. 하지만 말을 이어갈수록 긴장감이 녹아내리는 게 느껴졌다.

다른 순례자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들의 따뜻한 미소와 격려의 말을 해주었고,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이 순간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시간에 딱 맞춰 성당 문이 열리고, 우리는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상당히 엄숙했다. 조금만 소리를 내면 높은 천장 때문에 소리가 울릴 것 같았다. 낡고 오래된 벽들을 한번 쓰다듬으며 크레덴셜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내 앞에는 아까 그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가 직원에게 카드를 내밀었지만,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현금만 받습니다."


여성의 당황한 표정이 보였다. 그녀는 지갑을 뒤적이며 현금을 찾았지만, 없는 듯했다. 나는 순간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결심을 했다.


"저, 괜찮으시다면 제가 대신 내드릴게요."


내 말에 여성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고마워요. 어떻게 갚아야 할지..."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길을 가는 순례자잖아요."


나는 10유로 지폐를 꺼내 그녀의 크레덴셜과 함께 내 것까지 구매했다. 사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선의를 베푸는 것이 앞으로의 여정에 자그마한 운을 더 해주지 않을까는 생각이었다. 단돈 2유로로 내 운과 그녀의 행복을 샀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여성은 기분 좋은 웃음으로 고맙다며 크레덴셜과 함께 구매한 순례자 조개를 손수 내 배낭에 달아주었다.


성당을 나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손에 쥐어진 크레덴셜을 바라보았다. 이제 정말 시작이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첫 발걸음을 내딛으며, 그렇게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어떤 만남과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채 걸음을 옮겼다.



- 선의가 조개라는 형체로 빚어졌다 -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