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즈 이번에는 고개를 떨구다

권력이 가치기준?

by 강하단

영국의 젊은 경제학자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즈(1883-1946)는 영국의 “이코노믹 저널” 편집부로부터 책 한권을 분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책은 미국의 청년모험가이자 화폐인류학자인 퍼니스의 남태평양 야프섬 여행기였다. 이 책에서 퍼니스는 가장 가까운 섬이 500킬로미터 떨어진 외딴 야프섬에서 완벽에 가까운 화폐중심의 복잡한 경제활동이 묘한 질서 속에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야프섬은 해산물과 코코넛 등이 풍부하여 먹고 살기 힘들지 않은 섬이었는데 천여명의 섬 주민들은 특별한 형식의 통화없이도 교환을 했으며 서로 빚을 지고 또 그것을 청산했다고 한다. 통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빚지고 갚는 과정을 표식하는 방법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퍼니스는 야프섬에서 신기한 돌화폐를 발견했다고 전한다. 30센티미터에서 3미터에 달하는 돌화폐는 운반이 거의 불가능한데, 야프섬의 주민들은 이 화폐를 중심으로 매우 복잡한 경제활동을 거뜬히 해낸 것이다. 돌화폐 이면에 숨겨져 존재하는, 즉, 숫자와 표식으로 표현되지 않은 가치의 기준을 형성하고 그 기준에 맞춰서 교환과 경제활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케인즈는 이 책에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통화라는 수단없이는 복잡한 형태의 교환과 경제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통화 없는 경제활동의 가능성을 감지한 것이다. 그것은 통화 없는 화폐시스템, 즉, 신용경제의 출발이 되었다.


케인즈의 발견은 예리했고 해석은 명쾌했다. 금 또는 은을 가치기준으로 삼아 화폐를 찍어 통화로 사용하는 당시 화폐경제 한계를 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의 이론은, 신용이 가치 기준의 중심을 잡아 주기에 가능한 지금의 화폐시스템과 경제구조의 출발이 되었다. 그런데 묘하다. 신용은 금, 은과 같은 희귀금속이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닌데 복잡다단한 경제의 기준으로 손색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달리 해보면 이해 안될 것도 없다. 금과 같은 희귀금속이 가치 기준이 될 때에도 금이 사용가치 보다는 희귀성 때문에 자격이 부여된 것이다. 또 한가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금에 가치기준의 자격을 부여한 것은 국가란 권력이었다. 그러니 이런 가치기준 부여의 체계에서 설사 금을 빼더라도 국가란 권력이 뒤를 받치고만 있으면 별 어려움없이 가치기준을 지킬 수 있다. 즉, 예전의 가치기준이었던 금, 지금의 가치기준인 신용은 다름아닌 국가란 권력의 다른 상징에 불과한 것이 된다. 화폐가 특정 가치를 가진다고 보장해주는 것은 금도 신용도 아닌 권력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국가라는 권력도 믿음 아닌가.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국가는 가치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하지만 국가 권력도 그 정부에 따라 신용을 잃을 수 있는 사례는 국제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제대로 정치를 하더라도 신용이라는 믿음을 절대적으로 지켜줄 수는 없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겪으면서 국가란 권력이 보장하는 신용은 조금씩 의심을 받기 시작하였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실체없는 숫자게임과도 같은 경제정책들이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가치 생성과 붕괴를 만들고 있다. 부동산은 요동치고 은행계좌에 넣어둔 달러가 갑자기 몸집을 불렸다가 쭉 빠지기도 한다. 먹지도 않고 운동하지 않아도 제 멋대로 살이 쪘다가 다이어트가 되니 자신의 몸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일상에서는 사용하기 힘든 암호화폐의 가격도 급락과 반등을 반복하고 있다. 화폐가 투자의 대상이 되는 상황도 생소하기만 하다.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치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 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가치 기준이란 것이 있는지에 대한 깊은 의심을 가지게 되어 가치의 절대성 같은 것은 애초 없는듯 하기도 하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데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 것보다 위험하고 무모한 어리석음은 없지 않은가.


야프섬의 돌화폐에서 신용이란 개념을 발견한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가 오더라도 이번에는 현재의 화폐경제학의 작동원리 그리고 가치의 기준을 분석한 후 새로운 질서를 제시하기는 불가능할 듯 하다. 과거에는 금이란 가치기준과 싸워 이기는 싸움이라면 지금은 국가권력이기 때문이다. 이 싸움에 승산이 있을까? 질문에서 조심해서 표현하고 이해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국가 자체가 아닌 국가권력임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국가 개념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의 권력에 대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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