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조림 웃음, 표준화 언어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말하지 못하고, 웃어야 할 순간 지시받는

by 강하단

자막없는 예능은 없다. 출연자가 한국어로 말하고, 시청자도 한국사람인데도 자막은 필수가 되었다. 자막 뿐만이 아니다. 어디서 웃어야 하는지 알려주기 위해 삽입된 통조림 웃음과 효과음악 그리고 이제 감동해 눈물을 흘려야 할 순간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OST까지 완벽하게 구성된 예능과 드라마여야만 시청율 높여 히트할 수 있다. 시청자는 감독이 기획해 계획한 대로 웃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다. 이제 시청자는 배우의 연기와 대사만으로는 더 이상 이해하고 감상하기 힘들어 보인다.


1987년 3월 7일 서울 파고다극장에서 인생을 마감한 기형도 시인이 남긴 시집 ‘입속의 검은 잎’에 “소리의 뼈”라는 시가 있다. 한번 읽어보면,


소리의 뼈, 기형도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해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비슷한 경험을 영화 '뮤지엄 아워스(2014)’를 인디영화관에서 보면서 했었다. 독립영화이고 특별한 스토리 전개가 있는 영화도 아니다. 그래도 영화가 은근히 매력있다 라고 느끼는 순간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영화에 배경음악이 없다는 것이다. 장면과 배우의 대사 만으로 이루어진 영화다.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는 정적만이 이 영화를 설명했다. 이 영화를 보고 재밌는 상상을 하나 했다. 만약 아카데미 배경음악 상이 있다면 ‘뮤지엄 아워스’가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어떻게 보면 관객을 배려하지 않는 영화일 수도 있다. 감독이 판단해 관객들이 감동하길 원하는 장면에서는 배경음악으로 관객의 마음을 적셔야 하는데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기형도 시인의 “소리의 뼈”를 생각했다. 감동도, 감동하지 않을 권리도 오롯이 관객에게 있다고 말하는 젬 코엔 감독의 주장을 듣는듯 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 장면에서는 음악이 드디어 들리는데 수고한 사람들에게는 음악을 통해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나 보다.


통조림 웃음을 떠올릴 때마다 꼭 “짜장면”이 생각난다. 짜장면을 짜장면이라고 말하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발음하나, 단어 철자 하나가 틀려도 큰 일 난 것 처럼 정색하면서 지적하는 방송국 아나운서들을 볼 때마다 직업이니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그렇겠지 이해하다가도 불편한 마음이 영 가시지 않는다. 언어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언어는 정해져 고정된 지식형 진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시대 속 사상이고 표현 수단이라고 이해하는데 야단 맞으면서 틀림을 지적받는 것이 이상했다. 상대방에게 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기분 나쁜 표현으로 공격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언어를 존재의 고문실이라고 한 지젝과 기록은 아예 남기지 말라고 한 소크라테스도 이해가 될 지경이다. 문득 표준어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언어 이론의 기본기도 없지만 사람들을 옭아매기 위해 표준어를 만드는 것은 분명 아닐듯 하다. 만약 그렇게 꼭 지켜서 말해야 하는 것이라면 표준어야 말로 예능프로의 통조림 웃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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