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힐듯한 이익을 약속하는 긍정 문화
경험이 지식으로 이어진 후 만들어진 지식이 다른 지식으로 확대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상처를 치료한 약의 원리가 아무리 확고해도 몸의 잠재력을 높이는 약 개발에는 응용될 뿐 직접 쓰일 수는 없고, 태풍의 피해를 복구하는 과학기술이 망가진 생태 회복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믿음은 비합리적이다. 이런 믿음은 다른 모든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배제하는 편협한 긍정이다. 긍정해 버리면 이익이 생기니 위험하기 까지 하다.
어떤 치료약이 개발되어 상처를 효과적으로 아물게 하고 병의 원인을 제거했다고 가정하자. 제거할 대상이 분명하게 드러난 경우이다. 그런데 제거할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병이 생겨 치료약 개발이 어려울 때 유사한 병에 쓰여 효과를 본 치료약을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병 치료효과가 떨어지는건 당연하다. 조건이 다르니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계를 무시한 원리의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
원리의 확대 외 경계해야 하는 또 다른 것은 원리의 확장이다. 치료약을 써 상처가 아물고 병을 치료해 증상이 사라졌다고 해서 환자의 건강이 바로 회복되지는 않는다. 약은 상처와 병만 치료할 뿐 환자의 건강까지 회복시켜주지는 않는다. 약은 타겟이 분명한 좁은 범위에서는 효과적이었지만 만능은 아니며 한계가 있다.
국정을 농단한 존재를 촛불이 들불처럼 일어나 사회로부터 제거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촛불의 힘이 아무리 크다고 해서 사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효과좋은 약의 원리를 조건과 한계를 무시하면서 까지 확대하고 확장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다. 촛불의 힘을 무”조건”적으로 믿으면 역풍이 생기고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촛불이 작동하는 조건과 범위가 엄연히 있으니 촛불도 한계가 분명히 있다. 어쩌면 촛불이 효과를 내는 범위는 매우 좁을 지도 모른다. 촛불 정신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인 촛불은 구별되어야 한다.
한번 효과를 본 약과 성공한 촛불을 믿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맹신하게 되면 다른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부정적 행위가 되어 버린다. 한번 입증되었으니 왠만한 것에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과도한 긍정이다. 실증된 하나의 길 만이 통할 것이라고 믿는 과도한 긍정은 곧 부정적 행위에 불과하다. “부정적 긍정”을 부정해야 한다.
특정 방법을 쓸 때는 조건과 한계를 명확히 해야한다. 조건이 맞지 않으면 이전에 아무리 통했던 해결책이라고 하더라도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조건이 유사하든지 맞는듯 보이는 경우에도 한계는 분명히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조건과 한계를 무시한 부정적 긍정을 경계하고 제대로 부정해야 한다. 부정적인 행동과 부정하는 행위는 엄연히 다르다. 부정하는 행위는 한계를 분명히 해주기 때문이다. 부정적 긍정은 대개 사용하려는 방법의 이전 효능을 근거로 얻을 수 있는 효과와 이익을 증폭해서 상상하기 마련이다. 얻을 수 있는 이익에 탐닉하면 부작용은 간과된다. 그러니 이를 부정해야 하는데, 긍정의 힘이 워낙 세고 약속하는 이익이 커서 부정하는 행위를 실천하기 결코 쉽지 않다. 조건을 따져보고 한계를 살피면서 끊임없이 단련해야 하는 이유다. 긍정의 훈련과 부정의 단련은 다른 모습이다.
과도한 긍정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긍정이 가져다준다고 약속하는 이익의 유혹을 부정하는 것은 긍정 문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익을 거부해야 하니 당연히 어렵다. 부정하는 행위는 때론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훈련이 필요한 단련이다.
세심하게 따져 부정하는 행위는 거부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데, 긍정 문화가 폐기한 가능성을 되돌려 놓아 미래를 선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