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 자본주의, 소화제 기후정책, 소화제 인구정책
아무리 심한 소화불량이라도 시원하게 뚫어주는 소화제를 어렵게 구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소화제를 구입한 그 날부터 소화가 잘 되는거다. 소화제를 먹을 일이 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의도적으로 과식해서 소화제를 테스트해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도 비슷한 예를 들었는데, 한 카페의 메뉴에 “크림없는 커피”가 있었는데 하루는 손님이 주문했는데 크림이 없어 “크림없는 커피” 주문이 안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크림 재고가 카페에 없으면 “크림없는 커피” 판매 금지하는 법?
지젝의 예는 소화제와는 조금은 다른 관점이 있기는 한데 합법의 문제이다. 크림이 없는 카페에서는 “크림없는 커피”를 팔 수 없게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가정하다. 이는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에 그런 성격이 있기도 하다. 가게에 언제든 쓸 수 있는 크림도 없으면서, “크림없는 커피”를 판매하는 것은 소비자를 속이는 것일 수 있으니 불법이라는 것이다. 소화가 잘되지만 소화제를 먹기 위해 억지로 과식하는 것을 법으로 막을 길은 없지만 크림이 없는데도 크림없는 커피를 파는 것은 카페 손님을 현혹시켰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궤변같지만 법에는 그런 면도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궤변의 논리를 암호화폐 테라-루나 사태로 옮겨 보자. 스탠퍼드대학에서 컴퓨터 과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권도형은 가치가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테라 코인 상품을 내놓으며 테라 가격을 알고리즘으로 유지 보장하기 위해 루나 암호화폐를 이용했다. 테라와 루나는 서로 그 가치를 유지시켜 준다. 가치안정 코인은 대개 현물, 금, 채권 등을 연계해 가치를 보장하지만 테라는 알고리즘으로 가치를 유지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 2022년 코로나 종식이 가까워 지자 발생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암호화폐 가격이 떨어져 암호화폐 루나로 테라의 가치 유지가 힘들게 되었다. 이런 사태에 권도형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으로 루나를 구매하면서 가격조작을 꾀했다는 혐의로 미국 수사당국의 주목을 받게 된다. 암호화폐 가격조작도 주가조작과 같은 범죄행위다. 추가 범죄도 드러나는데 테라-루나 가격상승과 유지를 위해 비밀협약을 한 트레이딩회사와 맺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만약 권도형이 가격조작을 시도하지 않고 암호화폐에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데 그쳤다면 자본주의 가치 생성의 귀재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가 만든 거대 자본의 세계에서 자본이론으로 이익을 만들어낸 천재 컴퓨터과학자로 이름을 남겼을 수도 있었다. 자본주의 법치국가에서는 법테두리 내에서 일어나는 자본을 향한 어떤 욕망이라도 칭송받지만, 그들이 말하는 자본의 질서를 깨는 행위는 범죄가 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자본을 둘러싼 정의라는 이름을 가진 많은 법들이 사실은 권력형 자본과 심지어 정부가 만들고 있으니 이 또한 테라-루나의 알고리즘과 유사한 면이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소화제 먹으려고 소화불량이 필요하고 크림없는 커피 팔기 위해 쓰지 않는 크림이 필요하다. 자본이란 신용가치로 무한의 욕망을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를 지키는데도 자본 관련법이 필요하다. 과식하지 않고 커피에 크림 넣어 먹지 않고 과도한 자본 욕망만 없다면 소화제, 크림없는 커피 메뉴, 자본 지키미 법은 애당초 없어도 될 일 이었다.
분양받은 아파트 가격이 3-5배 뛰면 투자를 잘 한 결과이고 암호화폐 가격 2배 뛰면 투기인가? 암호화폐 투기를 옹호하는 것 아니라 암호화폐나 아파트 부동산 모두 자본 투기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궤변같은 논리를 이번에는 기후위기로 가져가 보자.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 마련된 탄소중립 아이디어와 정책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 내리라는 것에는 의심이 없다. 하지만 탄소중립이란 이름으로 탄소배출만 줄일 수 있다면 에너지를 펑펑 쓰는 산업과 인류의 삶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논리는 곤란하다. 에너지 소비가 만든 무한 편리의 삶과 이를 부추기는 산업구조라도 탄소중립만 이룬다면 아무런 문제없고 오히려 자본의 법으로 심지어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 속 체계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탄소중립이 에너지 과소비 유지를 위한 소화제 역할을 해서는 곤란하다
끝으로 어쩌면 가장 예민한 문제로 궤변 논리를 맞대어 보자. 인구감소와 저출산 논의이다. 정부와 많은 경제, 사회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인구절벽의 이면에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룩한 경제성장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숨어 있다. 이제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재원마련이 줄어드는 경제활동 인구로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원인과 배경이 있을 수 있지만 연금, 노령화 사회 등이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 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미래사회 옵션에서 지금은 아예 포함되어 있지 않은 선택 하나를 생각해 보자. 인구밀도가 대폭 감소한 미래 한국을 운영하는 모델이다. 지금과 같이 높은 인구밀도의 5천만 인구 국가가 아니라 3천만, 2천만 정도의 인구를 가진 국가의 경제모델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전혀 불가능하지 않고 지금보다 훨씬 더 경제 선진국 모델 만들기 유리할 수 있다. 주택문제, 교통문제도 그렇고 인공지능 디지털 기술의 도입으로 대폭 줄어들 일자리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문제 핵심은 인구가 감소한 국가의 미래가 걱정되었던 것이 아닐 수 있다. 인구가 줄어든 미래를 설계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그런 미래가 정착하기 까지의 시간, 즉, 줄어든 청장년 경제활동 인구로 경제활동하지 않고 복지와 연금으로 살아가야 할 베이비부머 노령인구 사회가 걱정되는 것이다.
문제를 인구절벽이라고 규정짖고 답을 찾으려는 태도를 이제 돌아봐야 한다. 문제해결 옵션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부각해야 한다. 지금의 저출산, 인구감소, 고령사회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할 길은 출산을 장려해 지금과 같은 높은 밀도의 인구를 유지하는 방법도 있지만 낮은 인구밀도 미래사회에 경착륙하기 위해 필요한 20-30년 정도의 고령화 사회를 감당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20년-30년 정도의 과도기만 견뎌낼 수 있다면 훨씬 나은 경제모델을 한국이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높은 인구밀도 경제모델을 바꿀 수는 없을까 고민하자. 20년-30년 후 저 인구밀도 경제모델 가능하다. 베이비부머 고령사회 부양 위해 출산을 장려하는 것 재고해야
과도하게 높은 인구밀도 국가를 유지하겠다고 젊은 세대에게 출산을 장려하는 것은 장려가 아니라 부담을 지우는 강요가 될 수 있다. 소화제 제약산업이 망할 까봐 과식을 권하는 사회, 굳이 필요없는 크림을 크림없는 커피 주문 받기 위해 재고를 확보해야 하는 사회가 정작 우리 사회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행복하게 일상을 살 수 있는 필요 충분한 자본이 있음에도 끝없는 욕망을 악마식 천재형 자본이론으로 자본을 창조하는 사회는 아닌지 돌아봐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