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보따리도 갚을 각오하고 도와줘야 한다

결초보은 대 배은망덕, 그리고 자업자득

by 강하단

타인이 알아주지 않을 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서러울 때가 있는데 도움을 준 사람이 원수로 갚을 때다. 선의로, 최소한 그렇게 믿으면서, 도왔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한 후 돌변한다. 도와달라고 요청해 도움 받았어도 다르지 않다. 도움 받아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 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결초보은 할 거라 믿으면 뒷통수 제대로 맞으니 도와준 후에는 멀리 피해 있는 것이 상책이다.


이렇게 말하니 당신은 그런 일만 있는 것도 아닌데 세상을 왜 그렇게 삐딱하게만 보려고 하냐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음의 얘기를 한번 살펴본 후 이어가 보자.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검은 집(2012)’이라는 소설 속 얘기다.


외딴 곳 검은집 폐가는 마을의 골칫거리다. 마을사람 누구랄 것도 없이 어린시절부터 경험하지도 않은 나쁜 기억을 갖고 있어 낮에도 가기 꺼렸고 밤이면 폐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한 젊은이가 마을의 골칫거리인 폐가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후 그날 밤 폐가에서 하루 밤을 편안히 지내고 다음 날 마을 사람 앞에 버젓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마을 사람들은 기뻐하면서 진실을 밝힌 젊은이에게 고마워 하기는 커녕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젊은이를 마을에서 쫓아내려 한다. 밝혀진 진실이 싫어서가 아니라 간단한 진실 조차 밝히지 못한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감추기 위해서다. 물에 빠져 간절할 때와는 달리 구출되고 나니 물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자신의 못난 모습을 아는 사람이 사라졌으면 하는 것이다.


곤경에 빠졌을 때 도움을 청하고 도움 받아 해결되면 은인의 뒷통수 뿐만 아니라 앞 이마까지 쳐서 라도 쫓아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다만 쫓아낸 후 찾아온 거짓 평화와 때론 화려해 보이는 승리감은 다름아닌 가장 추한 병통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병통에 다시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해 보지만 이번엔 다르다. 왜냐하면 그의 주위에는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존재들만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지구에 손 내밀어 온갖 도움을 받았던 지구인들은 이제 망신창이가 된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에서 새출발 하겠다고 한다. 배은망덕도 유분수다. 하지만, “쉿!” 하면서 그들이 알아서 떠나 주길 상처받아 열 받은 지구는 조용히 칼을 갈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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