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진보적 생각조차 권력과 자본의 보수일 때
기후재앙을 포함하는 환경문제에서도 어김없이 제 3세계가 존재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국가가 여기 해당된다. 제3세계의 대척면에는 미국, 유럽, 일본과 같은 선진국이 있는데 제1세계라고 한다. 그런데 제2세계는 잘 모른다. 1과 3이 있었다면 순서상 2가 있어야 하는데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분명 있었다. 다만 사라졌을 뿐이다. 환경주의 역사에서 제2세계는 다름아닌 구 소련이었다.
구 소련도 19세기말, 20세기 초 산업화의 물결을 피할 수 없었다. 191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이후 서구 국가를 경제적으로 따라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소련이 유럽국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맑시즘에 기반하여 사회주의의 중앙집중화된 체계에 의해 산업화와 그에 따른 환경오염도 조절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강하게 가졌다. 1920년대는 소련 환경보호의 황금기였다. 레닌은 자연보호주의자였고 많은 정책을 자연보호, 환경, 생태연구에 쏟았다. 이런 노력을 환경주의 제 2세계라고 한다. 하지만 1929년 스탈린이 집권하자 환경주의자는 반맑스주의, 반체제인사, 간첩으로까지 몰렸다. 많은 과학자들이 투옥되고 사망했는데 1930-1940년대 약 150만명의 학자들이 투옥되고 사라졌다. 구 소련 과학자 파블로브도 이 중 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환경주의 제 2세계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지금은 그 흔적 조차 찾기 힘들다.
국가를 제1세계, 제3세계로 나누어 분류하는 것은 불편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때론 높다. 동의한다. 다만 이런 분류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잘사는 국가, 못사는 국가의 분류가 실제로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가장 그럴것 같지 않지만 그런 식의 분류가 당연시 되는 UN 아닌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차별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제1세계, 제3세계 대신 선진국, 개도국으로 부르면 좀 나아지는가? 경제 지표로 환경에 대한 국가별 책임과 의무를 분류하지 말고 다른 차원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새로운 제2세계의 등장과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어떨지 제안한다.
기후위기, 플라스틱, 쓰레기, 에너지 위기 대응 제2세계의 역할과 가치를 부각함으로써 그럴듯한 명분과 힘의 논리로 빠져나가는 제 1세계 그리고 보상을 요구하는 제 3세계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활로를 찾았으면 한다. 치열한 토론 후에는 결국 돈으로 귀결되버리는 지금의 유엔, 경제 선진국 협의체, G7, G2는 예외없이 국가를 대표하는 정상 또는 대표자 중심이다. 과거 제 2세계였던 구 소련 중심의 “큰 형님 집단”도 국가와 정부 중심이었다. 새로운 제2세계는 국가와 정부 중심에서 벗어나면서도 제 1세계와 제 3세계 모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세력이었으면 한다. 디지털 시대 여전히 국가와 정부 중심의 테이블 위에서의 협상만이 해결이라 믿고 현장의 요구도 정부와 국가협의체로 향하는 것이야말로 시대를 읽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대중의 등장이야 말로 피할 수 없는 흐름의 대세이고 권력형 강대국 중심의 문제해결 방법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신호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 대중은 언어를 통한 힘의 형성하고 블록체인 디지털화폐로 대중의 연대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대중이야 말로 새로운 제 2세계가 될 충분하고도 필요한 조건을 갖추었다. 이제 그 단추를 제대로 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