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속 스파이는 바로..

시민과 대중

by 강하단

그 광장 속 걸음은 묘한 설렘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곳 저곳에 모여 얘기하는 사람들 사이에 어깨와 귀를 넣어도 누구도 밀어내지 않았다. 사는 도시에서 오늘 하루 일어난, 내일 일어날 일들이 들렸다. 광장에는 주어 담을게 늘 있었다. 걷다보면 우연히 만나는 친구와 안부를 주고 받고, 어디서 봤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과는 머쓱한 시선만 교환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보이면 광장의 중간 곳곳에 세워진 높은 기둥 뒤에 살짝 숨기도 했었다. 기둥은 또 삶의 지혜와 지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강의실 역할도 했었다.


중세까지 이어졌던 고대의 광장 속 모습이다. 정보도 지식도 모두 광장에 가야 들을 수 있었다. 광장은 입장료 받지 않고 모든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광장에 코드가 있다면 광장을 가진 도시의 언어를 알아야 하고 도시가 요구하는 질서를 지키는 정도에 불과했다. 농업, 상업, 정치에 필요한 모든 정보는 광장에서 들어서 가져와야 했다. 불길한 전쟁 소식도 그곳에서 들었다. 모든 정보를 정리해 “기억”해야 했고 가족에게도 전달해야 했다. 따지고 보니 모든 시민은 광장 속 스파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오해는 말아야 한다. 스파이는 광장을 가진 도시를 파괴하기는 커녕 도시 체계를 지키는 일꾼이고 원동력이었다.


광장 속 스파이를 눈여겨 본 권력은 광장의 역할을 의회, 학교, 법정, 도서관으로 옮겨 버렸다. 그래야 권력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열린 광장은 각기 다른 장소로 옮겨져 문이 달리고 출입이 통제되었다. 언어 코드면 충분했던 광장은 정치코드, 교육코드, 법코드, 지식코드 없이는 출입할 수 없는 장소로 옮겨졌다. 손쉽게 재밌는 스파이 노릇을 하던 시민은 이제 전문 스파이들이 가져다 주는 정보만 받을 수 있고 댓가를 치르게 되었다. 당연히 자유롭게 활동하던 스파이 시절이 그리웠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어느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광장이 다시 열린 것이다. 대중이 된 시민은 처음에는 그것이 광장인줄도 몰랐다. 대중은 걸어다니며 듣고 보고 마음껏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코드는 예전과 같아 언어면 무사통과이다. 듣고 배우고 인사하고 지혜를 듣던 그 시절 광장과 판박이다. 이제 대중은 스파이 노릇을 마음껏 다시 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시민은 도시 체계를 위해 했다면 지금 대중은 세계란 체계를 위해 스파이 역할을 하면 된다.


이렇게 아테네 광장은 인터넷 광장으로 환생했다. 시민 스파이는 대중 스파이로 부활했다. 딱 한가지, 기억의 광장이 기록하는 광장으로 바뀐 것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제 2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