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민주주의는 ‘진공’을 먹고 산다

“대중”없는 선거 민주주의

by 강하단

민주주의에 대중이 없어서야 어디 될 일인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대중 없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냥 “투표하는 국민”만 있어도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선거 후에는 상대 후보에 표 던진 사람과 싸우고 다음 투표까지 기다리면 견딜 만 한가보다. 그런 선거 민주주의에 대중은 없다.


대중은 없는가? 가려졌는가? 가려진 대중과 없는 대중은 많이 다르다. 가려진 것은 가려진 뒤에 존재가 있기는 하지만 없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대중은 가려져 있는가? 혹은 형성 자체가 되지 않고 있는가? 알 길이 없다. 대중 형성을 돕는다고 자청하는 각종 전문가 집단만 있지 대중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 전문가는 소통을 돕는척 하면서 특정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국민을 한쪽 방향으로 이끈다. 대중처럼 보이는 프레임 집단을 형성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정부 또는 그 반대 정치인들의 대행자인 경우가 많다.


자신이 대중의 한 사람인지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프레임 집단구성원에 불과한지 판별하기 어렵지 않다. 가장 먼저 진단하는 방법으로, 의견이 다른 상대방의 의견이 궁금한지 또는 화가 나 있는지 보면 된다. 프레임 속에 있으면 프레임 밖 타인에게 화가 나기 마련이다. 팬덤층이 자주 화 내는 것과 비슷하다. 두번째, 어느 순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곁에서 사라지고 프레임 속 사람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한다. 네모난 프레임이 논리와 이성이라 믿는 사람은 대중이 아니다. 그들은 소통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프레임 지킴이 “단어”를 언어라고 오해한다. 한정된 단어를 무한 반복한다. 언제든 지킴이 단어를 던지고 투표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대신 대중은 소통한다. 소통하는데 전문가 지식은 참고만 할 뿐 이끌려 그들 세계로 들어가지 않는다. 아차 하는 순간 빨리 제자리로 돌아와 자신의 언어를 챙긴다. 디지털 언어, 인쇄된 언어, 말의 언어, 투표하는 언어, 돈이란 언어 사실 관계없다. 말 잘하고 글 잘 쓰지는 않지만 자신의 언어가 타인과 함께 이루는 힘을 믿는다. 그리고 타인의 말을 받아주는 소통에 집중하는 능력을 자주 보인다. 대중은 타인에 화내지 않는다. 자신의 언어가 튕겨져 나오는 프레임과 프레임 지킴이 전문가에 분노할 뿐이다.


프레임 사이 공간은 “언어 없는” 진공이다. 프레임 집단의 투표 민주주의 정부는 진공을 먹고 산다. 왜냐고? 화내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니 자명하지 않은가.


그대 아직 민주주의를 꿈꾸는가? 그것도 대중 민주주의를 기대하는가? 그러면 투표민주주의 세계 프레임을 깨는데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프레임 사이 진공을 소통의 언어로 채우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프레임 과학이 우주공간은 진공이라 믿는 대신 인간 과학은 우주공간을 채우고 있는 물질이 있다고 믿는 것과 매우 흡사하다. 대중이 안간힘 쓰고 있다. 이제 대중 가림막 장벽만 걷어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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