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가는 대륙간 거리만큼이나 다르다
새학기를 준비하는 두가지 방법
여기 새학기를 준비하는 두 종류의 학생이 있다. 첫번째 학생이다. 방학기간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친구들과 세미나도 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쌓는다. 지식을 통해 사회와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확고한 관점을 만들어 둔다. 학기가 시작되면 자신이 만든 관점을 이용하면 어떤 프로젝트의 문제라도 해결할 준비가 된 것이라 믿는다. 두번째 학생이다. 첫번째 학생과 마찬가지로 도서관도 가고 친구들과 세미나도 갖는다. 다만 그는 읽고 토론한 후에 자료를 모으는데 집중한다.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 새 학기 수업에서 어떤 프로젝트가 나오더라도 자신이 모은 자료를 조합하면 답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두 학생의 기숙사 방을 방문해 보자. 첫번째 학생의 방에는 책상과 컴퓨터 그리고 책 몇권만 있다. 두번째 학생의 방은 방학 기간에 모은 자료들로 가득하다. 두 학생 중 어떤 학생이 새 학기를 보다 잘 준비한 것일까? 겉모습 만이라면 두번째 학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새학기가 시작되어 겨뤄보지 전까지는 낙관하기 힘들다. 수업에서 주어질 프로젝트와 문제의 답을 찾는데 유리한 것이, 첫번째 학생이 준비한 관점일지, 두번째 학생이 준비한 자료일지는 실제 상황이 오기전 까지 예상하기 힘들다.
요리할 도구와 재료 vs 레이메이드 포장요리
새학기 수업을 현실 속으로 가져와 보자. 첫번째 학생의 방법은 세상을 바라보는 몇가지 관점만 있다면 어떤 현실 속 문제라도 해결가능하다고 믿는 것이다. 요리로 치자면 쌀과 채소 몇가지 만 있으면 어떤 메뉴라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식이다. 두번째 학생은 다르다. 복잡한 현실세계에서 경쟁하고 생존하려면 각 상황에 대처하는 해결책을 미리 확보해 두어야 한다고 믿는다. 요리로 치면 냉장고 속에 레디메이드 포장요리를 갖추고 있다가 식사 때가 되면 간단하게 데워서 또는 레인지에서 해동해 먹는 것과 유사하다. 이 두가지 방식을 설명하는 이론을 들어보면, 관점을 강조한 첫번째는 미니멀리즘, 다양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해결책 마련을 주장한 두번째는 합리주의와 가깝다고 생각한다.
언어로 옮겨와 보자
미니멀리즘은 이렇게 생각한다. 핵심적인 중요한 문법만 있다면 단어를 문법 구조 속에 넣어 모든 대화와 글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합리주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특정 상황에 잘 어울리고 설득력있는 대화와 글은 대개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상황에 잘 적용된 많은 대화와 글을 분석해 그 속에서 법칙을 찾아내야 한다고 본다. 전자가 경험만 있다면 얼마든지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생각이고, 후자는 상황별로 적용해야할 말과 글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 생각이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르다
미니멀리즘은 관점을 중시한다. 그들의 도구는 간단하다. 도구 하나만 제대로 있어도 재료를 이용해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면 그들은 탄소중립이란 개념을 만들어 모든 실천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합리주의는 다르다. 인간행동이 그렇게 간단하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인류의 기후위기 대처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행동지침, 실천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미니멀리즘은 재생에너지, 원자력, 가스 등의 재료는 탄소중립을 위해 얼마든지 구별할 것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지만, 합리주의의 기후위기 대처는 재생에너지, 원자력, 가스 별로 에너지 실천 법칙과 실천행동 가이드라인이 뚜렷하게 정해지고 때로는 규제를 주장하기도 한다.
미니멀리즘과 합리주의 대표 학자간 작은 소동이 있었다
2014년,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노엄 촘스키 교수와 합리주의 계승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언론을 통해 서로를 비판했다. 조금은 의외지만 선공은 촘스키였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온갖 사상들을 얘기하지만 경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면서 지젝을 공격했다. 지젝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늘 경험을 강조하지만 촘스키야 말로 경험적으로 틀린 말만 하지 않느냐고 비꼬았다. 촘스키교수는 오래 전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 교수와도 논문을 통해 “언어”에 대해 논쟁한 적이 있었는데 대가들의 논쟁이 일반인에게는 즐거운 경험이 되기도 한다. 촘스키교수의 나이가 올해 95세지만 여전히 건강하므로 지젝과 직접 만나 토론하는 모습을 봤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도 가져본다.
디지털시대 가치에 대해 질문한다면
만약 촘스키와 지젝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꼭 디지털시대의 가치와 미래의 모습을 물어보고 싶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과 딥러닝이 가져올 미래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예상되는 답이 있다. 먼저 촘스키는 빅데이터라는 거의 무한대의 엄청난 데이터도 결국 인간행동으로부터 왔고 그 행동은 결국 몇가지 패턴에서, 패턴은 다시 몇몇 개념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면서, 디지털 시대 AI도 결국 인간 개념이 좌우할 것이라고 답할 듯 하다. 미니멀리즘 다운 대답이다. 이어 지젝은 역시 조금 다른 답을 할 듯 하다. 그는 빅데이트는 그 속에서 법칙을 찾아내야 할 보물 창고 같은 것이다. 이 속에서 몇가지 출발점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므로 빅데이터 형성 패턴보다는 발생한 데이터 현상에서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 실용적이라는 답을 할듯 하다. 물론 예상이다. 정말 두 철학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꼭 확인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