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허무주의” 허무하게 오해받다
칸트의 계승자로 명성을 날렸던 헤겔은 대학 교수로서의 명성 뿐만 아니라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면 동시대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늘 헤겔과 비교될 정도로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고 전한다. 그런 이유에서 였을까. 쇼펜하우어는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사회에서는 있어서는 안된다는 “허무주의” 사상을 주장했다.
99명 위해 1명의 희생을 용인한 공리주의를 경계하다
쇼펜하우어 허무주의와 상반되는 주장을 펼치는 사상은 공리주의다. 쇼펜하우어는 그 당시 벤덤 등의 사상가에 의해 태동되기 시작한 공리주의를 경계했다. 절대다수의 절대행복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수가 행복한 길이라면 소수가 어느 정도 외면되어도 된다는 주장을 한다. 공리주의 관점으로 보면 100명으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99명이 행복할 수 있다면 1명은 포기될 수도 있다. 물론 다수가 잘 되면 소수는 저절로 혜택을 입는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다. 쇼펜하우어는 공리주의자 처럼 믿지 않았다. 다수가 성공한다고 해서 소수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쇼펜하우어가 믿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분명한 것은 그는 “단 한명이라도” 함께 가지 못한다면 전체 구성원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믿었다.
자본주의 세상의 허상을 미리 예측하다
쇼펜하우어는 경쟁자 헤겔을 칸트 사상을 왜곡한다고 비판하면서 자신이야 말로 칸트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교수로서 승승장구하던 헤겔을 시기하면서 대학교수 임용에서 여러번 탈락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려 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추측은 쇼펜하우어를 오해하면서 그의 깊은 사상을 만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의 허무주의란 이름의 믿음이 신자유주의가 완전 장악한듯 보이는 현대 자본주의 세상이 되어서야 본질이 드러난 공리주의의 허상을 18세기에 이미 예측했던 것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