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기억(1)

(1) 자아를 끄집어낸 새로운 도시로의 이사

by 강하단

도시는 기억: (1) 자아를 끄집어낸 새로운 도시로의 이사


한 도시에서 오래 살다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다고 가정해 보자. 이사 간 첫날 그리고 이후 몇일 동안 짐을 정리하는 일 외에 무얼 하는지 생각해보자. 우선 인터넷 와이파이 설치 신청을 할듯 하다. 오래 전 같으면 이사 첫날 집전화와 신문 구독 신청하는 것으로 출발했겠지만 지금은 인터넷 신청이 최우선이다. 일단 인터넷 연결이 되고 나면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되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듯한 느낌에 안심이 된다. 이사 온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도 어렵지 않다고 마음을 놓게 된다. 그 다음으로 집주위 가까운 슈퍼와 카페를 찾는다. 예전에는 이웃에게 이사왔다고 인사를 하면서 떡을 돌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집주위 슈퍼와 카페에 인사하는 것으로 이사온 동네에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가까워서 필요할 때 쉽게 갈 수 있는 슈퍼와 아침에 일어나 모닝커피를 즐길 수 있는 근처 카페를 찾아내면 정착이 완료된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데 만약 슈퍼는 GS25, CU, 세븐일레븐과 같은 편의점이고 카페는 스타벅스, 이데야, 파스쿠치와 같은 프랜차이저라면 이사 전과 다를바 없다. 집은 대개 아파트, 빌라이고 집구조도 거기서 거기이니 거주지 이전 신고를 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의 시민으로 서류상 이동만 했을 뿐 크게 바뀐 것은 없다. 그런데 가까운 슈퍼가 편의점이 아니라 집 근처에 재래시장이 있고 집 주위에 그 동네만의 까페가 있다면 새로운 곳이란 느낌이 든다. 물론 편의점과 프렌차이저 까페도 있지만 이사온 새로운 동네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이사를 와서 몇일 지나면서 재래시장 안에 여러 채소가게, 반찬가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돼 배달음식, 햇반 보다는 가능하면 밥을 해 재래시장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하려 한다. 인상좋은 분이 파는 시장안 채소가게와 반찬가게 단골도 만든다. 동네 까페 사장님이 그날 마다 추천하는 로스팅 원두로 내린 드립커피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날 모닝커피를 사오다 다섯평 남짓한 작은 꽃가게를 발견한다. 행사나 이벤트 때나 사는 것이라 여겼었는데 수줍게 꽃가게 들러 꽃 한송이를 사서 컵에 꽂아 두고는 나만의 작은 꽃병을 이번 기회에 장만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다 이번에는 산책을 하다 지하로 내려 가야하기는 하지만 작은 서점이 하나 있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다. 내려가 보니 독립서점이었다. 교보문고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작은 책방이지만 예쁜 책장과 정답게 메모지를 붙인 책들이 정겹다. 이전 살던 동네와 다르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이사와 만나게 되는 새로움의 화룡점정을 나른한 토요일 오후에 찾아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예술영화전용 극장이 멀지 않은 장소에 있었다. 상영관은 하나뿐이고 좌석도 50석인데 시간별로 상영하는 영화는 달라 하루에 대개 5편 정도다. 모두 예술영화 또는 인디영화이다. 그리고 방문 첫날 운이 좋게도 영화가 끝난 후 영화평론가의 간단한 영화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다를것 없는 이사 전 도시와 이사 온 도시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많이 달랐다. 오랜 만에 만난 가족과 친구에게 우선 할 얘기가 생긴 것도 덤으로 얻었지만 무엇보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 하나씩 발견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고 신기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도시 세계는 마치 상품으로 만들어진 똑같은 인형의 집 같았다고 느껴졌다. 이사 온 도시에도 그렇고 그런 수많은 빌딩, 아파트, 도로, 버스와 지하철, 상점, 백화점, 슈퍼, 편의점, 병원 등이 있지만 그런 부분을 한꺼풀 벗겨낸듯 “다름이란 이름”으로 다가온 이사온 동네에서의 생활은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이라는 모습을 드러나게 만들었다. 책이나 수업에서 가끔씩 들어왔던 “자아”는 이렇게 형성되는 것인가 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아가 느껴지자 역으로 도시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라는 궁금함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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