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이기만 하면 공정하다?
폐기물 있는 곳엔 반드시 시스템 있다
위생 시스템은 쓰레기와 소독해야할 대상을 분리해 내는 기준과 장치를 전제로 한다. 폐기물과 인간과 함께 할 수 없는 더러운 존재가 없다면 위생 시스템이 존재할 이유 자체가 없다. 버리고 소독해서 자신들이 사는 곳은 청정하게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긴 체계가 위생 시스템인 셈이다.
요즘 부쩍 시스템이 강조된다. 시스템 공천이란 단어를 여야 모두 심하게 강조한다. 시스템 공천만 하면 공정성이 보장된다는 것 처럼 느낄 정도다. 하지만 시스템에는 코드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스템은 소통으로 이루어 지지만 어떤 소통은 그냥 폐기되고 마는데 코드에 맞지 않으면 선택되지 못한다. 정치계의 공천 시스템 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시스템에는 코드가 반드시 있다. 코드의 기준을 누가 정했고 코드 작동의 키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가 시스템 작동의 공정성을 확보해 주는 것이지, 시스템이라고 해서 모두 공정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망상에 가깝다. 그런 시스템은 없다.
위생시스템에서 분류된 폐기물에는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당신은 동의하는가? 자세히 보면 여전히 사용가능한 것도 많다는 것을 발견한다. 새것보다 더한 가치를 가졌지만 버려지는 것도 많다. 하지만 위생시스템이 폐기물로 분류하는 코드를 작동한 것이다.
그럼 먹거리 시스템은 어떤가? 특히 동물을 음식으로 분류하는 것에는 사실 엄청난 코드가 작동하고 있다. 고통을 느끼고 심지어 자신에 가해지는 차별을 의식할 수도 있는 동물을 인간의 음식으로 분류하는 코드가 인간의 음식 시스템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다, 동물 복지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기르고 고통없이 도살하면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그런 특정한 동물권 환경윤리를 가진 것 뿐이다. 즉, 음식 시스템을 지금과 같이 계속 유지하기 위한 코드를 작동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계속해서 고기를 먹고 싶어 만든 코드일 뿐이다.
쓰임이 다한 정치인을 걸러내고 또는 자신이 속한 분파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한 공천 시스템에도 나름의 기준이야 있겠지만 그들 분파의 냉혹한 코드가 작동할 뿐이다. 여기에 공정성 같은 것이 존재할 리가 없다. 솔직하면 오히려 수긍이 될듯 하다. ‘시스템’이란 단어가 이번에 제대로 오염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