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스위치에 화력, 태양광, 원자력, 태양광 등 선택을 추가하자
경제학자는 탄소를 저장하는 전세계 습지의 가치를 년간 34억달러, 곤충 수분 역할의 가치는 년간 1600억달러라고 굳이 환산한다. 대신 생태 환경학자는 꿀벌을 포함한 곤충,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와 무기물이 연결된 전체로서의 생태를 생각하고 탄소의 흐름과 순환을 중심으로 습지의 가치와 꿀벌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그럼 탄소중립은 어떤 태도를 취한 결과인가? 이 질문 이전에 자본으로 생태가치를 환산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생명과 물질 그대로를 보는 관점의 우열 또는 선호 정도를 달리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지극히 다르다는 전제만 가지고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 탄소중립은 현재는 첫번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이익이 생기면 양잿물도 마시는 인간행동을 이해한다면 자본으로 생태가치를 환산하는 지금의 시도에 색안경을 낄 필요까지는 없어보이고 지금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거라는 생각도 든다.
GDP, GNP 등의 지표를 앞세운 경제성장 모델이 국가 경영의 기본이 된지 오래다. 인구문제, 소득격차, 기후재앙의 문제가 생기면 국가는 어김없이 경제성장 모델 속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저출생,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면 줄어든 인구로 새로운 국가의 경제와 사회 모델을 고민해서 구상하기 보다는 지금의 경제규모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한다. 소득격차와 부의 편중 문제가 발생하면 강력한 정부의 힘을 활용해 징수한 세금을 통해 복지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측과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산업 경제가 성장하면 전 국민이 먹고 살 수 있는 부가 생산된다고 믿는 측으로 나뉜다. 하지만 양편 모두 동일한 믿음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우선 경제가 성장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양쪽 다 크게 관심이 없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경제가 성장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믿는다. 기후재앙이 코앞에 닥쳤는데 탄소 자체 보다는 탄소중립 개념을 통한 경제성장에 좀 더 관심있어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탄소배출권을 거래해서라도 탄소중립을 기어코 이루겠다는 의지는 경제성장의 욕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또한 경제성장 논리 외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할 수 있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앞의 세가지 예 모두에서 우리는 다른 대안이 없지 않냐는 주장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은 1980년대 영국의 수상이었던 마가렛 대처 수상의 “티나TINA” 논리에서 비롯 되었다. 경제성장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TINA (There is no alternative)’ 주장이다. 대처 수상은 신자유주의라는 강력한 정책을 통해 영국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했고 신자유주의는 이후 한국의 진보, 보수 정부 할 것 없이 도입됐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믿음은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기후재앙 해결의 방법으로 탄생한 탄소경제, 탄소거래제 등도 티나TINA의 우산 안에 있는 제도라고 보인다. 정책 토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학문 토론의 학술대회에서 조차 탄소를 물질로 보고 생물학적 순환, 테크니컬 순환으로 토론을 이어가다가도 끝에는 화폐와 금융으로 귀결되어 버리곤 한다. 경제성장이 아니면 방법을 찾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버리는 최면에 빠진 세계 처럼 보인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처하고 적응하려는 국가 R&D 사업과 정책 대부분 지표 중심으로 기획, 계획하고 성과도 지표 중심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런 지표는 경제성장 모델 하에서 만들어진 인구정책, 인재양성 중심의 교육정책, 일자리 정책, 산업계 지원정책과 연결되어 있다. 국가 정책의 대국민 홍보도 지표를 충분히 활용한다. 무엇보다 통하니 계속 활용한다. 다양한 평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량적인 지표 뿐만 아니라 정성적인 것도 포함한다고 강조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정성quality’이란 개념은 결국 성장과 국가별 순위와 다르지 않으니 정성 개념의 다른 차원에서의 깊은 해석이 정책 차원에서도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믿는다. 지표는 그 성격상 정량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들다. 지표 중심의 정책, 지원, 평가 제도는 정부의 성격과 무관하게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도 티나TINA 논리는 예외가 아니다.
경제성장, 지표 중심의 정책 외에는 정말 대안이 없는 것일까? 아니다. 새로운 가능성의 단초가 기적의 해 1989년을 지나고 새로운 밀레니움이 열리면서 이미 생겼는데 아직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큰 변화가 다가 온다는 사실 만큼은 모두 느끼고 있다. 디지털 세상이다. 인류의 생각이 흐르는 피가 디지털로 바뀌고 있다. 1989년(www이 시작된 해) 이후 태어난 세대가 대부분의 영역에서 주류가 되는 2030 이후에는 세상의 질서와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예측에 귀기울려 보자. 이는 가치의 기준이 누군가에게 의해 확고하게 정해지고 파생되어 나온 가치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는 20세기 이전의 세상논리가, 사람이 모이면 그곳에 가치가 생긴다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한 21세기 논리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의 출발을 알린 www 구성 언어인 html의 특성을 보면 과학적으로도 단번에 알 수 있지만 맹자가 양혜왕에게 말한 ‘하필왈리’의 진리 속에 묻어 있는 세상의 질서이기도 하다. 세상의 질서는 강력한 지도력이 발휘될 때 가능하다고 믿는 중앙집중형 통제로 기후변화 위기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 국민과 기업이 지켜야 하는 규율과 정책이 정해져 아래로 전달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방식이다. 그 중 대표적인 방법이 탄소중립인 것이다. 탄소중립의 의미가 중앙에서 정해지고 그 실천 방안이 주위로 퍼져 나가는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이를 성실하게 실천하는 국가는 기후위기 극복 모범국가가 되고 국제 정치 논리로 교묘하게 빠져 나가는 국가는 기후 악동국가가 되는 식이다. 그러다가 그 중심, 즉, 국가간 세계 질서가 흔들릴 정도의 중심 세력이 바뀌면 모든 것이 무색해져 버리기도 한다. 국가 내부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는 정부의 기후위기 극복 기조가 바뀌면 국가 전체의 질서가 순식간에 바뀐다. 중앙이 리더가 되어 질서란 의미를 정해주면 효율적으로 관련 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중심이 흔들리면 세계 모든 질서가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민주주의는 그 중심을 바로 잡는데 집중되어 왔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움직임이 디지털 세상에서는 중앙집중이 아닌 모두가 결정하는 의미로 가치가 형성되는 질서 속에서 생기고 있다. 지금까지는 가치가 중앙에서 정해져 만들고 배분하는 방식이라 한정된 가치를 두고 분배의 갈등이 높았다. 재화, 일자리, 자본 모두 이렇게 한정된 가치였다. 그러니 갈등이 높고 엔트로피가 치솟았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가치는 대중이 모이는 곳에 형성되는 것으로 가치의 생성 모델이 바뀌고 있다. 이제 가치 배분이 어려우면 다른 가치를 형성하면 되는 시대로 옮겨가는 것이다. 갈등의 엔트로피는 사라져 버리는 마이너스 엔트로피 사회가 우리 곁으로 이미 성큼 다가와 있다.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겠냐고 회의적인 생각을 품을 수 있다. 그런 변화가 실질적으로 일어나려면 구체적인 실천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포럼도 열면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몇가지 비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자 한다. 티나를 외치면서 머물지 말고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작은 물꼬라고 열기 위함이다.
첫번째 제안은 에너지 스위치다. 한전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생산하더라도 일단 사용자에게 도달하면 스위치는 딱 하나다. 에너지원별로 가정과 직장으로 전기선이 들어오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스위치를 달리해서 자신이 선호하는 전기를 사용하게 하는 에너지 민주주의는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선호하는 전기에 따라 다른 전기요금을 낼 수 있다. 정부가 정해 대안없는 하나뿐인 전기 스위치를 사용하는 대신, 즉, 에너지 선택권을 TINA로 치부해 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선거철이 되어 특정 에너지 정책을 공약하는 후보에게 투표하고 그것으로 온 나라의 에너지 정책이 정해진다. 이를 바꾸려면 다음 선거까지 5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가정, 직장, 공공장소의 전기 스위치에 에너지원의 표식이 달리는거다. 지금은 온-오프 스위치만 있지만 화력, 태양광, 원자력, 풍력, 바이오 등으로 에너지원이 표시되어 있는 스위치가 설치되어 전기 사용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에너지 원으로 전기를 사용하는거다. 각기 다른 에너지원으로 생산된 전기는 사용요금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매일 저녁 하루 동안 전국민이 각기 얼마만큼의 에너지원별 전기를 사용했는지 뉴스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선호도에 따라 에너지 산업과 경제는 반응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시도가 시작된 초기 전기료가 가장 저렴했었던 화력발전 전기사용료가 조금씩 비싸지고 태양광 또는 원자력 전기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질 수도 있겠다. 전기료 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기껏해야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이 선호하는 에너지원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전기 선택권이 주어지는 에너지 민주주의가 생긴다면 실시간으로 선호 에너지가 드러나고 이에 따라 각기 다르게 전기산업도 영향을 받아 다르게 성장할 것이다. 지역별로도 선호하는 전기가 달라진다면 지역별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전되는 전기에 대한 가격도 차별시킬 수 있는 유기농 에너지 개념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유기농 인증만 있으면 수입농산물이라도 좋아하는 대신 지역농산물을 통해 소비자 뿐만 아니라 농부까지 건강하게 하는 생태 유기농 농산물 개념이 전기 에너지에서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에너지를 운송하는 송전 과정에서의 갈등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티나TINA로 딱 하나만 있어야 하는 것으로 믿었던 것 중에서 여러개, 아니 수없이 많이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다름 아닌 ‘돈’이다. 법정화폐는 딱 하나지만 디지털 시대 통용화폐는 여러 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렇게 말하면 지금 투자의 극단을 치닫고 있는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를 말하는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새롭게 생기는 디지털 시대의 화폐는 법정화폐와 환전되는 것이 아니다. 법정화폐로 환전하지 않고도 물건도 사고 서비스도 받을 수 있는 돈이 새롭게 생긴다고 상상해 보자. 그 돈으로 여행도 하고 학비도 내고 말이다. 지역화폐를 말하는 것인가요 라고 질문할 수 있다.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시대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화폐는 의미와 가치만 유사하다면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말한다. 그리고 특정 목적에 맞게 사용되고 그런 자격을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 주는 토큰 화폐를 말한다. 예를 들면, 내가 선호하는 에너지를 쓰고 또 투자해서 받은 토큰 화폐를 법정화폐인 달러, 원, 위안과 환전할 수 없고 또 굳이 환전할 필요도 없다. 이 토큰화폐를 받아주는 카페와 레스토랑도 생기고, 여행사와 항공사도 생기고, 학비를 낼 수 있는 학교도 생긴다면 왜 굳이 법정화폐로 환전해서 써야 하겠는가. 국내 뿐만 아니라 마드리드, 런던, 시드니, 하노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가도 그 토큰화폐를 받아주는 식당, 공연장이 있다고 상상해 보자. 상상하면 늘 그렇게 현실이 되지 않았던가. 돈이 둘 이상이면 큰 일 나는 것으로 우린 믿어왔었다. 혼란을 넘어 대혼돈이 올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세금으로 중앙집중형 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티나를 신봉하기 때문에 생긴 믿음이 아닌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아니 이미 한참 지났다.
전기 스위치, 토큰화폐는 새로운 시대의 전혀 다른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작은 예 일 뿐이다. 경제시스템 뿐만 아니라 교육 분야에서도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학점, 학위이란 딱 하나뿐인 지표로 학교가 운영되어 왔었다면 교육과 연구가 효과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언어와 기호가 생기지 않으란 법 있는가. 예술과 문화 영역, 그리고 정치 분야에서도 새로운 언어, 돈, 기호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세상은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지금 당신은 어떤 모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