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그들’속 삶은 안락하다. 행복하다. 행복해서 서로가 서로를 잡을 필요 조차 없다. 따뜻한 아랫목에 함께 누워있다. 그냥 그 곳에 영원히 있고 싶은 마음 외 다른 것 없다. 하지만 이를 지속할 수는 없다. 이 또한 ‘그들’의 힘, 즉, 잠재력이기도 하다. 변화가 생겨 무언가 다른 것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 호기심은 그냥 보는 것, 봐서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직접 손에 쥐고 싶어한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잡아주지 않으면 안된다. 계속 함께 있고 싶어하는 ‘그들’의 성향이 서로를 잡는다. 떠나려는 자와 잡는 자는 시선을 마주한다. 떠나고 싶은 자도 사실 어디로 가야할지 아직 분명치 않다. 그래서 시선을 여전히 ‘그들’ 방향으로 둘 수밖에 없다. 서로 손을 잡고 있다. 하지만 무릎을 들어 일어나는 자세를 취한 것이다. 떠날 준비는 덜 되었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은 분명하다. 이러다 무릎을 펴고 몸과 얼굴을 돌린다. 호기심으로 무릎을 들었다면 비전으로 방향을 미래로 틀었다. 떠나갈 곳을 본 것이다. 이제 그들의 손을 맞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떠나고 싶은 자의 손이 이제 놓여져 자유롭다. 다만 떠나려 하는 자의 바지 가랭이를 ‘그들’이 여전히 붙들고 있다. 이제 띠쳐 나갈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에이!” 하고 다시 누울지 박차고 나갈지 결정해야 한다. 결정의 순간이다.
이제 ‘그들’에 현실의 예를 넣어보자. 가족, 공동체, 그리고 끝으로 정치협잡꾼도 넣어보자. 가족이면 아픈 이별이고 공동체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용기이다. 하지만 정치 패거리라면 이 무슨 말같지 않은 신파극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