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저물면 무얼 먹고 살까
기본소득 정책을 주장하는 보수정당 정치인도 생겨나고 기본소득은 틀렸다며 기본자산제가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진보학자와 진보 정치인도 생겼다. 기본소득과 기본자산제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은 각자 다르겠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무언의 합의가 있다는 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진보적인 정당과 노동조합의 주장을 들어봐도 기업이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는 큰 방점을 찍지 않고 이익을 정의롭게 나누는 것에 관심과 노력을 집중한다. 중요하고 성취되어야 할 정의임에는 틀림없지만 잊고 무시되는 정의도 엄연히 있다는 것이다.
돈 버는 방향과 방법을 고민하는 진보는 없는가? 너무 드물어 때론 있기는 한건가 의심이 간다. 합법적이기만 하면 어떻게 벌어도 상관없고 정의롭게 잘 나누면 되는 세상이다. 한가지 사례를 들면, 국가 경제 뿐만 아니라 국민 삶의 질적 내실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국내 농업을 포기하고 대신 자동차, 반도체 등을 포함하는 공산품 수출이익을 얻으려 했던 2012년 발표된 한미자유무역협정FTA가 있었다. 이제는 먼 나라 얘기가 되어 버렸다. 어떤 진보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당시 정부도 하여간 진보를 표방했었다. 이제는 자동차가 아닌 전기자동차 협상을 해야 하니 어디까지 가야 제대로된 국익이 챙겨질 수 있을지 의심이 간다. 미래에는 식량난이 걱정된다며 나라의 농산물 자급율이 낮은 것을 이제 와 뒷북치듯 지적하는 전문가들은 FTA 당시 어떤 주장을 했었는지 궁금하다. 역추적이라도 하고 싶다. 논리와 기준이 자유롭다 못해 뜬구름 판단 좌표를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노동가치의 기준이 이제 저문다고 하면 걱정되고 섭섭한가? 아니면 그럴리 없다고 거부하는가? 인간은 이제 끝이다 라고 얘기하고 싶은가? 역으로 질문하고 싶다. 그럼 우리는 가치롭고 소중한 모든 노동을 제대로 대우해 주고 생산된 이익을 지금 정의롭게 나누고 있는가? 이 질문은 임금노동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무임금 그림자 노동 모두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주부(남성, 여성)노동, 예술가노동, 대중소통”을 포함하는 우리 사회 무임금 기여노동 모두에 대해 제대로 된 이익배분의 정의를 얘기한 적이 있는가? 임금노동자 정의를 외치며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은 합법적이기만 하면 모두 용인해 오지 않았던가?
가치의 기준이 더 이상 노동이 아닌 시대는 이미 집앞에 배달되어 있다. 자동화, 로봇, 인공지능, 사이버노동, 머신러닝, 블록체인 경제와 금융의 시대는 노동의 가치가 기준되는 시대가 아니다. 기본소득, 기본자산제, 보편복지 등 현재 진보로 분류되는 정책의 가치 근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제 더이상 극단적인 상황도 아니다. 노동 자체로부터 완벽하게 쫓겨난 혹은 벗어난 인간에게 소득과 복지가 정의롭게 배분되기 위한 논리, 철학적 배경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우리는 실용적 고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