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결단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면 약자의 복지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고도 충분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당연하고 박수받을만 하다. 하지만 약자복지 정책을 펼치는 순간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국가가 약자란 존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국가는 더 많은 노력을, 필요하면 예산도, 약자란 개념 자체를 없애는 일에 쏟아야 한다.
어제(10월25일)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도 예산편성을 설명하면서 “약자 복지”를 강조했다. 연설에서는 사회적 약자란 표현을 사용했고 약자를 위해 많은 예산을 편성한 것을 강조했다. 정치와 복지예산의 세세한 부분을 검토하기 힘들고 연설문을 있는 그대로 보자면 대통령의 정책은 잘못되지 않았고 오히려 박수 받아 마땅하다. 예산편성과 집행은 국회와 정부의 몫이니 팬데믹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국내 경제와 국민 살림살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사회적 약자’라는 단어를 대통령과 언론이 강조하는 점이다.
약자는 힘이나 세력이 약한 사람이라고 사전에서 정의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의하면 약자 극복은 영원히 불가능해 진다. 약자가 힘이나 세력을 얻어 강자가 되면 또 다른 약자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즉, 국민을 강한자와 약한자로 나눠 보는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 다른 각도에서 약자를 이해해야 한다.
약자를 “선택권이 없는 사람”으로 정의해 보자. 돈이 부족해 삶의 여러 행동에 다양한 선택이 불가능할 수도 있고 제도적으로 아예 허락되지 않는 선택도 꽤 많다. 전기 예를 들어보면 우린 한전에서 보내주는 하나의 전기만 사용하고 화력, 태양광, 원자력, 풍력, 수력 등의 다른 에너지원 중에서 택하여 사용할 수 없다. 수돗물도 수자원공사와 지자체 정수장에서 보내주는대로 받을 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 제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 한번의 투표로 선출하고는 임기 중 별 다르게 의견을 낼 만한 다른 장치와 선택권이 없다. 기껏해야 여론조사, 위원회가 보완책으로 쓰인다. 이렇게 정의하니 소수 권력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약자가 되어 버린다. 이것이 지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국가의 현실이다.
별 다른 대안이 없지 않냐고 우리는 믿고 있다. 아니다. 그렇게 자포자기 하고는 가능한 여러 대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전기만 해도 비록 한전으로부터 에너지원을 달리해서 전기를 받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선 디지털 방식으로 수정해 전기스위치를 화력, 태양광, 원자력, 풍력, 수력 등으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 다른 전기를 선택해서 사용하고 전기료도 다르게 납부하는 방법이 있다. 에너지 뿐만 아니라 물, 쓰레기 등에 이런 식으로 시민에게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다. 국가의 모든 정책에 디지털 방식의 대중 선택이 투표와 시시각각 연결되도록 하면 새로운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 시대 민주주의를 탄생시킬 수 있다. 권력에 요구하지 않아도 되니 소통 민주주의, 대중 민주주의의 실현이지 않는가.
권력자에게 향해 있는 대중의 목소리를 선택권 확보를 통해 방향을 바꾸면 각 분야 민주주의는 새롭게 실현될 수 있다. 대안 없다고 손 놓고 포기할 때 권력은 그곳에서 자라고 끊임없이 약자는 양산된다. 이제 약자의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