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과 명상

가까운듯 아주 먼, 아예 다른

by 강하단

생각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어쩌면 언어 이전의 대화일 것이다. 언어에서 잠시 벗어난 순간, 언어로 모인 생각이 언어를 아주 잠시 벗어나 생각한 결과, 추상이 만들어진다. 언어일 수밖에 없는 생각이 불손하게도 언어를 잠시 벗어난 직후 경계에서 추상은 그림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추상을 언어이전의 대화라고 부른다. 추상이야말로 언어가 마련해준 유일한 비언어 선물인 셈이다. 그 이유로 인간의 가장 크고도 무모한 욕망이지만 그래도 영혼에 의해 용서되는 것은 추상은 순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순간을 머물고는 영혼으로 회귀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우린 추상적인 것은 갖지만 추상을 지닐 수는 없다.


현실 속 예로 요약하면 언어를 뒤흔드는 언어로 된 비언어 화두를 드는 간화선은 있지만 이성이 아닌 합리의 언어로 언어 이전의 진리를 보려는 명상 방법을 말하는 자가 있다면 분명 조심해야 한다. 이들의 일상을 보면 명상의 본 모습이 금방 발견된다.


간화선과 언어 명상은 가까운듯 아주 먼, 어쩌면 완전히 다른 수행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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