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상품을 토큰화하다

소비하는 정체성

by 강하단

“아 그분, 알죠. 독특한 기후변화 지표를 가지고 계셔서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같은 동네, 같은 아파트에 사시더라구요”. 현실은 다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 마음을 상대가 확인하기 힘들다. 쑥스럽지만 말하면 마음을 전할 수 있다. 문제는 마음을 말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기후위기에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기후위기 세계의 가장 큰 위기는 아무것도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름을 말하지 않고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는데도 남들이 알아 본다면 당신은 꽤 성공한 인생을 산 셈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이름과 얼굴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 테슬라, 삼성의 CEO하면 한 사람이 떠 오른다. 그런데 수백억 재산가, 고등학교 동창, 만년 약팀 롯데자이언츠 팬 이라고 하면 한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떠 올라 범위를 구체적으로 좁혀가면서 찾아내야 한다.


처음 만난 상대에게 어떻게 소개하나? 이름, 직장 또는 하는 일.. 그런데 직접 만나지 않았을 때 이름과 직장 또는 하는 일을 얘기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만나서 얼굴, 말투, 행동을 본 이후 이름과 직장 또는 하는 일에 한 개인이 각인된 셈이다.


소비가 곧 정체성인 시대라고 한다. 물건을 쇼핑하는 방식이 개인의 의미를 담는 정체성이 되었다. 자동차 브랜드, 특정 지역 아파트 브랜드, 주로 식사하는 유명 레스토랑, 지갑 또는 핸드백 브랜드, 주로 입는 옷의 브랜드를 열거하면 누군가가 떠 오른다면 그 사람의 정체성은 소비양식인 셈이다.


이제 조금 다른 세상을 상상해보자. 모든 상품에 독특한 기후변화 지표를 매길 수 있다고 해보자. 가격 태그를 붙이듯 기후변화 지표가 붙어 있다. 마트와 온라인 플랫폼 마켓 진열장 속 상품은 가격태그와 함께 기후변화 지표가 붙어 있다. 상품가격도 지표 중 하나일 뿐이다. 지표는 증강현실AR처럼 기후변화 지표 인식 앱을 설치한 핸드폰을 가져다 대면 확인가능하다. 예를 들면, 마트 진열장 포장 닭고기에 핸드폰을 대어보니 상품가격과 함께 닭을 기른 농장의 에너지원, 물 사용후 하수처리방식, 닭 사료 등의 기후변화 지표를 종합 분석한 독특한 기후변화 지표가 확인 가능하다. 이를 고려해 특정 닭고기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에게는 해당 상품의 기후변화 지표가 입력되어 진다.


상품의 기후변화 지표는 토큰을 통해 거래된다. 토큰을 가지고 구매한다는 것이 아니라 현금, 신용카드를 쓰면 토큰으로 지불되도록 거래체계를 디지털 기술은 어렵지 않게 설계한다. 사용한 토큰은 특정상품의 기후변화 지표를 종합한 가격과 같은 것이므로 구매한 개인은 토큰거래를 통해 지표를 갖게 된다. 기후변화 지표는 좋고 착한 순위를 매기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개성을 선물한다.


왜 꼭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야 하느냐? 아니다. 우린 이미 다양한 상품 브랜드, 모델, 디자인 등을 선택하여 쇼핑하는 복잡한 세계를 잘 살고 있다. 심지어 그렇게 하는 것을 자랑하고 있다. 이를 뒤집어 보면, 광고를 보기 전까지는 무엇이 나에게 필요한지를 모른다(존 갤브레이스, 풍요한 사회). 아무리 힙하고 스웩하게 쇼핑해도 광고를 보지 않으면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사는 자신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기도 한다. 광고를 보고 다양한 상품들이 가진 복잡한 옵션으로 쇼핑하는 엄청난 능력을 현대인 소비자는 이미 갖고 있다. 그 어려운 주식투자, 암호화폐 거래도 거뜬히 해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전혀 복잡하지 않게 인공지능 앱이 도와주고 무엇보다 소비 한번 하면 기후변화 지표가 소비자에게 선사된다. 한달 소비해 독특한 기후변화 지표를 만들어 이름과 얼굴, 직장 또는 하는 일을 말해 주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느슨한 동료가 형성된다면 멋진 일 아닌가?


물론 정체성을 꼭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상품을 소비하는 개인의 삶이 기후변화 지표를 통해 특색을 띌 수 있는 사회가 나쁘진 않아 보인다. 광고없이는 필요한 것 알기 힘든 삶, 특정 브랜드 사용을 자랑하듯 소개하는 삶에서 독특한 자유 하나를 선물 받은 느낌이다. 기후변화 재앙 해결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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