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만 허락하는 음악

이미지와 글로는 이해하기 힘든 순간을 그리고 쓰다

by 강하단

행동하는 거의 모든 순간 우리는 “왜?”라는 질문을 받는다. 물론 남에게 복수하듯 왜라고 묻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얘기해도 기어이 이유를 들어야겠다는 자세다. 그런데 이유를 묻지 않고 심지어 활짝 마음의 문을 열어주면서 환하게 웃고 눈물까지 보이도록 허락하는 것이 있으니 음악이라는 예술이다. 음악을 함께 듣는 순간 빈부의 차별은 사라지고 옆자리 낯선이도 가족처럼 느껴진다. 유학의 최고 경지가 “악”이고 부처님이 음악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 말이 이해된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고 생각해 이해할 수도 없는 과학의 예외가 바로 음악이란 예술이다.


음악은 심금을 울린다. 다른 예술 영역이 할 수 없는 능력이다. 정제된 소리를 내면으로 가져오면 마음이 반응한다. 마음의 진동과 외부 진동이 합쳐져서 증폭된다. 나의 진동이 마음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폭발하듯 진동하며 다른 누군가에겐 하나 더하기 하나 하여 둘만 되기도 하고 합쳐져서 진동이 사라지기도 한다. 지극히 주관적이다. 하지만 소리만큼 공평한 것이 있을까? 음이 생기면 누구나 들린다. 보는 것이 허락되고 볼 의지가 있을 때만 우리는 본다. 만지고 맛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듣고 싶지 않아도 일단 공간과 시간 속으로 퍼져 나온 소리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배분되어 듣는 생명체 마음으로 배달된다.


작곡가라도 음악을 듣고 왜 울음이 나는지 또는 왜 그냥 덤덤한지 이유를 묻지 못한다. 생명의 내부 현상이라 다른 언어로 표현할 길도 없다.


음악은 어떤 다른 예술보다 시간에 의존하고 민감하다. 흘러가 버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을 절묘하게 음악은 이용한다. 음이란 매체는 생각과 이해를 거치지 않고 마음의 공명을 내는 것이라 그렇다. 시, 소설과 같은 문학은 글로 이루어진 작품을 읽어 이해해야만 감동한다. 회화 예술작품은 추상을 보고 내면에 기억하고 있던 이미지를 끄집어 내야만 감동한다. 음악은 다르다. 생각해서 이해할 수 없고 이미지로 감상하지 않으며 오로지 순간을 흐르게 해야만 가능한 예술이다. 녹음해도 순간의 흐름으로만 오롯이 들을 수 있다.


“요즘 젊은 음악가들이 실러의 시에 자꾸 곡을 붙여 큰 일이다”라고 괴테는 한탄했다고 하다. 그런데 재밌게도 그 젊은 음악가가 베토벤이었다고 한다. 오죽 음악으로 말하고 싶었으면 그랬겠는가. 오페라, 뮤지컬 장르가 생긴 배경일 것이다. 음악으로 생각할 수 없지만 노래는 생각까지 허락한다. 다만 음악과 글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음악과 글 중 어느 하나가 너무 강하면 노래는 죽어버린다. 음과 글이 조화를 이룰 때 감흥과 공감은 폭발하듯 예술가와 함께 하는 관객은 하나가 된다. 떼창의 순간 가수와 관객은 하나가 되어 순간을 영원으로 바꾼다. 그 순간 음악과 노래는 니체의 중력으로 작용한다.


2011년 스페인 까디스에서 중학교를 다닌 아들은 해변을 따라 집으로 오는 길에 요즘은 왜 베토벤과 같은 음악가가 나오지 않냐고 물었다. 그 때의 질문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공간을 연구하고 시간을 주제로 한 메멘토와 인터스텔라 영화를 곱씹으면서 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이니 아마 그 답을 지금은 알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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