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숨 쉴 곳을 찾아서
24살, 대학 졸업을 앞둔 나는 취업 대신 창업을 택했다.
잘 맞는 사람들끼리 영상을 찍으면 좋지 않겠냐는 동기의 제안으로 시작된 동아리가 어느새 회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사업자만 낸다고 동아리가 하루아침에 회사가 되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대학교 4학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시기였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사업과 꿈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고, 돈을 버는 것보다 서로의 감정에 대해서, 자꾸만 어긋나가는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은 어영부영 흘러갔다. 부모님께 손 벌리는 게 죄송해질 때 쯤. 나는 친구들에게 폐업 신고를 하자고 했다. 그때만큼은 큰 이견이 없었다. 5년의 긴 우정도, 영화에 대한 나의 마음도 끝이 났다.
뒤늦게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떤 NGO의 9개월 계약직 인턴으로 합격했다. 본가인 노원에서 회사인 여의도까지 1시간 30분이나 걸린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깐깐하게 따질 처지는 아니었다. 환경 교육 프로그램과 캠페인을 기획하는 일은 적성에 잘 맞았고, 직장 상사와의 합도 좋았다. 카메라를 들지 않겠다 결심했던 마음이 사라진 것도, 영화를 다시 보기 시작한 것도, 회사 덕분이었다.
“후-하”
저녁 7시, 늘 그렇듯, 여의도역에서 5호선을 타고 퇴근하는 길. 무표정하게 지하철 역사를 통과하는 직장인들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기분 나쁘게 높고 날카로운 마찰음. 승강장을 넘어 계단까지 꽉 들어찬 사람들. 낯선 이들의 역겨운 숨결. 순간 가슴이 저릿한 느낌이 들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언젠가 술 취한 누군가가 토했을지도 모를 회색 벽을 한손으로 짚고, 천천히 숨을 골랐다. 하지만, 비릿하고 매캐한 공기에 속이 더 울렁댔다. 온 몸을 맑은 공기로 채워 넣고 싶었다. 승강장을 등지고 벽에 이마를 갖다 댔다. 운동화에 묻은 얼룩이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인턴 계약 만료까지 한 달, 도피처가 필요했다.
“강하늘땅. 영암에서 살면서, 환경 영화제도 하고 청년마을도 해볼래요?”
모 환경 단체에서 만난 H의 제안이었다. 처음엔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H는 만날 때마다 인사하듯 같은 말을 건넸다. H와는 다큐멘터리 상영회 기획단으로 1년간 함께 활동했었는데, H의 고향이자 직장인 전라남도 영암에서도 한차례 상영회를 한터였다. 오랜만에 만난 진짜 공기 때문인지, 유난히 멋졌던 월출산 때문인지, 천연기념물 남생이 때문인지, 넋을 놓은 나를 보고 H는 뭐 그리 감탄할 게 많으냐고 물었었다. 눈에 걸리는 것 하나 없는 광활한 논, 그 위를 가득 덮은 하얀 물안개, 축축하게 내려앉는 발자국, 은은하게 부유하는 주홍색 태양 빛, 이슬이 가득 걸린 거미줄.... 26년 인생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3일이었지만, 영암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네. 좋아요.”
“진짜 와요?”
“네. 제발요. 이래놓고 안 부르시면 안 됩니다.”
H도 나도 진심이었다. 영화와 환경, 그리고 시골의 조합이라니.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몇 주 뒤, H가 내게 숙소 사진을 보냈다. 영암에 지역살이를 하러 오는 청년들을 위한 ‘청년마을 숙소’였다. 집 걱정을 안 해도 된다니,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엄마. 나 영암 갈 거야.”
어머니께서는 습관처럼 틀어 놓는 일일 연속극을 보듯 재밌겠네 하시고는 말을 아끼셨다. 그렇지만, 나는 내 삶의 가장 오랜 시청자였던 그이의 말뜻을 금세 알아차렸다. 이제는 다 큰 딸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걱정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느껴졌다. 든든하고 속 깊은 응원을 보낸 어머니와 달리 촐랑촐랑 발랄한 장난꾸러기가 하나 있었다. 나보다 16살 어린 여동생은 잔소리꾼이 곧 사라질 거라는 말에 개구리처럼 팔짝대며 좋아했다. 어디로 가느냐, 왜 가느냐, 언제 가느냐, 하며 질문을 퍼부어 대는 내내 동생은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괜히 심술이 나 오동통한 동생의 볼을 양손으로 마구 찌부러뜨렸다.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동생이 가지 말라고 울고불고 하는 것보다야 낫다고 위안을 삼았다.
일주일 내내 싼 짐들을 택배로 부쳤다. 필요한 것들만 챙긴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무거운지. 서울에서 전라남도 영암까지 바로 가는 기차가 없어 목포행 ktx를 탔다. 목포까지는 3시간이 걸렸다. 회색으로 시작된 그라데이션이 파랑으로 변해갈 무렵, 목포역에 도착했다. 역사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어왔다.
영암에서 H가 흰 차로 배웅을 나왔다. 달리는 내내, 차창 너머 풍경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억새로 가득한 영산강 하굿둑, 쇠백로의 날갯짓, 넓게 펼쳐진 논, 위로 우뚝 솟은 월출산. 훅- 숨을 들이마셨다.
푸른 청보리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