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풋내기의 영암 정착기

2) 서울 풋내기의 독천 5일장 정복기

by 강하늘땅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은데....혹시 만원 말고, 5천원 어치는 안 파세요?”

“5천 원어치는 안 파는데”

“...”

“아가씨를 그렇게 주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줘야 돼”

“아...그러면 그냥 주세요....”


검정 비닐을 꽉 채운 만 원 어치 상추,

마른 꽃이 달린 오이 5개와 물렁물렁한 가지 5개,

벌겋게 익다 못해 터질 듯한 토마토 1kg과 곳곳이 멍든 사과 10개.

아침 7시, 전라남도 영암 독천 5일장에서 4만 5천 원을 내고 구매한 것들이다. 시골 물가가 서울보다 더하는구나 싶었다. 천 원짜리 몇 장만 내미셨던 할머니들과 싱싱한 먹거리가 들어 있었던 수많은 장바구니를 떠올리면, 어리숙한 젊은이에게 덤터기를 씌운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전라남도 영암에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던 서울 풋내기는 그렇게 처참히 장보기에 실패했다.


물론, 시골 유일의 대형 마트인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간편하게 핸드폰으로 배달을 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줄곧 시골 살이를 꿈꿨던 내게 재래시장에서 장보기는 포기할 수 없는 로망이었다. 영암에 내려온 첫날 마주한 독천 5일장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소리 높여 가격을 흥정하는 할머님, 그에 지지 않고 맞서는 상인들, 틈새로 눅진하게 퍼지는 꽈배기 기름 향기, 발 디딜 틈 없이 늘어놓은 좌판, 촌스러운 꽃무늬와 땡땡이 옷, 희뿌연 연기와 함께 튀어 오르는 하얀 뻥튀기....

장날은 사람 흔적이라곤 없는 시골 거리에 밀물 차오르듯 차오르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이벤트였다. 빽빽한 서울에 질려 성근 영암에 온 거지만, 고작 덤터기 한 번 당했다고 시골의 하이라이트를 놓치긴 싫었다.


그럼,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완벽한 시장 인간이 되는 것!


다른 분들은 어떻게 물건을 살까 하고, 시장 한가운데 서서 주위를 관찰했다. 그러다 문득, 내 옷차림이 유독 눈에 띈다고 느껴졌다. 출근 전에 장을 보러 간 탓에, 회색 슬랙스와 흰 반팔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뭐가 튀느냐고 하겠지만, 꽃무늬와 원색이 판치는 곳에서 무채색의 정갈함이란 그야말로 ‘나 여기 처음이에요’ 하고 외치는 꼴이었다. 게다가 그 인파들 가운데 젊은이가 나 혼자인 것도 한몫했다. 이건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니 넘어가더라도, 적어도 다른 사람들 사이에 ‘평범’하게 섞여야 하지 않나 싶었다.


다시 돌아온 장날, 초록색 티셔츠와 헐렁한 바지를 입고, 상추를 담았던 검은 비닐봉지를 대롱 손에 들었다. 거기에 바짝 마른 콩깍지처럼 튕기는 성격도 온몸에 좀 뿌려줬다. 딱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첫 가게에서 물건을 산 지난번과는 달리, 일단은 천천히 시장 한 바퀴를 돌았다. 솔직히 어떤 채소가 좋은 건지 알아보는 능력은 없었으므로, 최대한 깐깐하고 합리적인 소비자인 척했다. 그랬더니, 어떤 가게 사장님이 오이고추를 먹어보라며 주셨다. 달콤하니 시원한 맛이 좋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오이고추는 됐고, 애호박 하나 주세요. 어 아니 아니. 그거 말고, 네네 그거 주세요.”


처음 집어 든 물건은 일단 별로라고 반존대로 튕겼다.


“원래 1,500원인데, 1,000원에 줄게-”

“에이 거짓말”

“진짜야~”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대화도 하면서 가격까지 깎았다. 고추를 입에 문 채로 다른 가게에 갔다. 5천 원 어치는 절대로 안 판다던 사장님이 상추 2천 원 어치를 그 검정 봉지에 가득 채워 팔았다. 사과 가게에서는 파지 사과 4개를 서비스로 받았다. 오이에는 말라비틀어진 꽃이 없었다. 상인 분들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신기했다. 2만 원 어치를 양손 가득 들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향했다.


영암 두 달 차인 지금, 만원으로 필요한 건 다 사는 능력이 생겼다. 며칠 전엔 자주 먹는 건 직접 키워볼까 싶어서 상추 모종을 사러 장에 갔다. 상인분의 추천을 받아서 여름을 잘 버티는 상추 모종으로 골랐다. 커다란 화분에 흙을 붓고, 상추 모종들을 드문드문 띄워 옮겨 심었다. 볕이 잘 드는 평평한 돌 위에 화분을 올려놓고, 물을 골고루 뿌려 줬다. 사진을 찍어 회사 사람들에게 자랑했더니, 모종을 왜 그렇게 비싸게 샀냐고 물으셨다.


아아..


난 아직도 멀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