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풋내기의 영암 정착기

5) 똥 손은 시골에서 무엇을 키웠을까요? - 하

by 강하늘땅

③ 딸기


그늘이란 그늘마다 길고양이들이 녹은 치즈처럼 늘어져 있었다.


한반도의 아래쪽에 위치한 영암의 여름은 사람에게나 동식물에게나 지독했다.

딸기 모종은 영암군 농업기술센터가 주관했던 한 수업에서 얻었다. 텃밭 실습을 마치면 선생님께서는 늘 남은 모종들을 수강생들에게 나누어주셨다. 못 먹는 허브는 싫고, 토마토는 흔하고, 상추는 이미 죽였으니까... 기왕이면 비싼 작물을 키워보자는 마음으로 딸기 모종을 골랐다.

보통 딸기하면 상큼하고 발랄한 느낌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딸기 모종은 왠지 모르게 어두운 느낌이 났다. 한 뼘보다 작은 키. 짙은 녹색 잎사귀. 갈퀴같이 잘게 나뉜 이파리. 이리저리 아무데나 휘어진 줄기. 검정색 비닐봉지 안에 물을 잔뜩 머금은 채로 담겨 있는 모양새가 마치 흑마법사가 키울 법한 식물 같았다.

하지만 마법을 부릴 줄 모르는 주인 때문인지, 딸기는 자꾸만 말라 비틀어져 갔다. 일주일 만에 딸기가 잿빛으로 변했다. 땅바닥에 내려앉은 딸기를 보니 내 마음도 우중충하게 가라앉았다. 홧김에 줄기를 확 잡아 당겼다. 그런데 이게 웬걸. 뿌리가 화분에 어찌나 단단히 박혀 있던지 호미를 써서 겨우 뽑아냈다.


나중에 딸기 모종을 주신 분께 여쭤보니 원래 딸기는 여름에 죽고 그 자리에 뿌리를 단단하게 내려 다음해 봄에 다시 자란단다. 그것도 모르고 억척스럽게 딸기를 잡아 당겨 댔다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따로 없다.


④ 천리향


지금 내 방 창가에는 빛을 받아 고고하게 빛나는 천리향이 있다. 그렇다. 놀랍게도 똥 손인 내가 천리향을 아직까지 살려 두었다. 심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말이다.


“향이 천리까지 퍼진다고 해서 이름이 천리향입니다. 모종은 손바닥만 한데, 성체가 되면 사람 만하게 커져요. 그게 참 멋있죠. 뜨거운 햇살을 싫어하니까 적당히 해가 들어오는 창가에 두면 좋겠죠? 또 습한 환경을 싫어하니까 물은 많이 주면 안....강하늘땅! 듣고 있어요?”


사람 눈에서도 한숨이 나올 수가 있나. 선생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고개를 끄덕이며 와다다 말을 쏟아냈다.


“천리향이 과습한 걸 싫어하니까 상추랑 같이 키우면 안 되겠네요? 상추는 물을 좋아하니까? 이참에 화분을 따로 살까봐요.”

“네. 그렇죠.”


다행히 선생님은 의심을 거두신 듯 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걱정이 무색하게 제자는 애먼 길로 샜다. 그날 저녁, 인터넷에서 천리향과 어울리는 화분을 찾기 시작했다. 뽀얀 흙의 질감이 매력적인 화분, 반들반들한 재질의 네모 화분, 쨍한 네온 색감이 강렬한 화분... 하나같이 작고 예뻤지만, 가격은 전혀 예쁘지 않았다. 분갈이를 한번 할 때마다 들어갈 돈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바로 그때, 처음부터 큰 화분에 심으면 분갈이를 할 필요도 통장이 거덜날 일도 없을 거라는 천재적인(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결국 10인분 카레도 끓일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냄비, 아니 화분을 샀다. 연한 갈색 빛이 도는 토분이었다. 상추 화분에 쓰고 남은 흙이 있어서, 그걸로 토분을 채웠다. 와중에 과습이 될까봐 흙을 토분의 절반만 넣었다. 그 모양이 화산 꼭대기에 푹 파인 분화구 같아서 태양 아래 두어도 절로 그늘이 생기겠다 싶었다. 안 그래도 얇은 모종이 괜히 더 초라해 보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천리향은 거대한 화분의 보호 아래 무자비한 여름을 지나왔다. 단 한 톨도 자라지 않은 채, 천리는커녕 지척에서도 그 대단한 향기도 풍기지 않는 채로 말이다.


⑤ 배추


상추가 떠난 자리에 무엇을 심을까 고민하다가 텃밭에 김장 배추를 심는 앞집 할머니를 보았다. 내가 김치는 못 담가도 배추 된장국 정도는 끓여 먹어볼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래. 저 하늘과 내 하늘이 다를 것도 없는데, 망하면 같이 망하고 잘되면 같이 잘되는 거지. 지금까지 내가 키워 온 식물들의 생존률은 고작 25%였지만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사장님. 저 또 왔어요. 배추 모종 10개만 주세요”

“이번에는 죽이면 안 돼~”

“제가 키운 배추로 된장국 끓여가지고 올게요.”

“아따~좋네.”


모종 가게 사장님의 응원을 떠올리며, 장갑 낀 손으로 호미를 불끈 쥐었다. 굳어 버린 흙을 다시 되살려야 했다. 먼저 화분에 물을 붓고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호미로 흙을 두드리듯 파냈다. 단단하게 박혀있는 상추 뿌리를 뽑고, 뭉쳐 있는 흙은 잘게 부쉈다. 말랑말랑 물을 잘 머금은 상태의 흙에 듬성듬성 구멍을 냈다. 화단에 미리 화단에 줄지어 깔아둔 배추 모종들을 하나씩 구멍에 집어넣었다. 잎사귀가 동서남북으로 납작하게 펼쳐져 있어서 모종 가운데 흙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했다. 오랜만에 화분에 생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역시. 이번에도. 어김없이. 결국. 또...

이런 단어들을 익숙하게 적는 내가 싫다. 식물을 죽였다는 사실이 이젠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닌 것도 같다. 예상했겠지만 배추 모종들은 이주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심지어 증상이 첫 번째 상추 모종들이 죽었을 때와 유사했다.

공평한 하늘 아래 왜 앞집 배추는 잘 자라고, 내 집 배추는 죽는 것인가. 단단하게 굳어버린 배추를 보며 그동안 나의 화분에서 스러져갔던 수많은 식물들을 떠올렸다. 한참을 화분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는 제일 작은 배춧잎 하나를 뜯어 하늘 위로 휙 던졌다.

그렇게 똥 손은 어떤 것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채 일 년을 흘려보냈다.


내가 끊임없이 식물을 죽이는 동안에도 자연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키워냈다. 시간을 결코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여름의 끝자락을 고이 접어두고, 천천히 가을이 되어 태어날 준비를 했다. 사방으로 노란 물결이 밀려들어왔다. 논마다 오후 햇살 같은 벼들이 가득했다. 그 위로 탈곡기가 털털거리며 지나갔다. 쭉정이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추수철의 마을에 활기가 돌았다.


“햅쌀~ 햇고구마~ 무우 사시게요~”

“콩이요. 팥이요.”

“들기름 방금 짠 들기름~”

“아가씨. 가을배추 싱싱해. 김치 하면 맛있지. 배춧국 끓여도 되지...”


오일장 단골가게 사장님이 좌판에 놓여 있던 배추들 중 하나를 골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제일 싱싱해 보이는 배춧잎을 뜯어서 건네주셨다. 달달한 맛이 났다. 배추 하나에 천원 밖에 안 했다. 모종보다 값싼 배추 하나를 품에 안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집 앞 오르막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새 또 못 보던 작물이 보였다. 짙은 초록색 이파리가 가늘고 길게 뻗어 있었다. 딱 보니까 파 같은데...


어디 한번 심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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