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똥 손은 시골에서 무엇을 키웠을까요? - 상
남의 텃밭에 대충 던진 토마토는 잘만 자라던데...
땡볕 더위에도 파란 지붕 집 옥수수는 하늘까지 자라던데...
주인 없는 들판에서도 들깨는 순식간에 번지던데...
왜 내가 정성을 다해 키운 아이들은 툭하면 쓰러지는 건지. 벌겋게 익은 옆집 고추에 속이 매웠다. 내 손으로 키운 작물을 먹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던가. 지네가 슬금슬금 기어 나오던 여름을 지나, 방아깨비가 가랑이 아래로 뛰어다니는 가을이 오는 사이, 내가 떠나보냈던 식물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영암살이 한 달차. 상추라도 키워서 먹어보자는 마음으로 직사각형 화분 두 개를 샀다. 화분이 도착 하자마자 눈여겨봐왔던 모종 가게로 달려갔다. 항상 시장에서 제일 크게 판을 벌이는 가게였다. 검정 플라스틱 트레이에 빽빽하게 심긴 초록색 새싹들이 나를 반기는 것만 같았다. 상추는 모종도 꼭 상추처럼 생겼다.
“할머니, 이거 더워도 잘 자라요?”
“이게 여름 상추여. 물만 잘 주면 돼.”
“여름 상추요?”
“기냥 상추는 더우면 녹응께. 잘 견디는 놈으로 사가.”
“그럼 여름 상추 모종 열 개만 주세요”
혹여나 잎사귀가 상할까 모종 판 아래를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받쳤다. 집까지 종종대며 걸어갔다. 화분, 흙, 호미, 장갑, 물, 그리고 상추 모종. 준비만 했는데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화분에 자갈과 흙을 넣어 평평하게 다졌다. 화분에 물을 가득 부었다. 그리고는 한 뼘 간격으로 흙에 작은 구멍을 냈다. 손에 붙은 흙을 툴툴 털어냈다. 쌉싸름하고 상쾌한 향이 났다.
다음은 상추 모종을 트레이에서 꺼낼 차례였다. 그런데 상추 모종이 트레이에 딱 붙어서 나오지 않았다. 잎을 살짝 잡고 뽑았는데, 글쎄 잎이 톡하고 끊어졌다. ‘이거 꺼내지도 못하고 끝나는 건 아니겠지.’ 조바심이 났다. 다음 모종은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됐다. 모종판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두 손가락으로 트레이 밑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모종의 뿌리와 그 뿌리를 감싸고 있던 흙이 바스라졌다. 남은 여덟 개의 모종도 죽일 수는 없었다.
결국 유튜브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버석하게 굳은 트레이의 흙이 문제였다. 흙에 물을 뿌린 후 트레이를 살살 눌렀다. 모종이 쏙 빠져나왔다. 미리 파 둔 구멍에 모종을 넣고, 그 주위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연두 빛 이파리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렇게 일곱 번을 더 반복했다. 심겨진 상추들의 모양새가 뭔가 엉성한 듯 보였지만 보면 볼수록 귀여웠다.
사악한 여름 더위가 감돌던 다음날. 상추들이 타죽을까 봐 물을 가득 주고 출근했다. 새끼손가락만 했던 잎사귀가 일주일 새 손바닥만큼 커졌다. 그런데, 이주가 지나고 삼주가 지나도 상추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상추 잎을 만져보니 판매되는 보통의 상추보다 두껍고 단단했다. 잎을 살짝 뜯어서 먹었더니 질기고 쓴 맛이 났다. 상추를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결국 상추들을 파내고 새로운 상추 모종을 심기로 했다. “아이고, 그걸 죽였어? 너무 뜨거워서 그랑께...” 모종 가게 사장님은 한 줄 가격에 모종 두 줄을 주시면서 안쓰럽다는 듯 혀를 끌끌 차셨다.
그래도 두 번째라고 능숙하게 상추 모종을 화분에 옮겨 심었다. 첫 번째 상추의 실패가 직사광선에 바로 노출된 탓인 가 싶어서, 이번에는 화분을 반그늘에 놔두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삼주 뒤, 나는 상추를 또 파서 버려야 했다. 이번에는 상추에 생긴 애벌레 때문이었다. 작디작은 입으로 그 큰 이파리들을 죄다 뚫어 버렸다니 너털웃음이 났다.
새삼 농부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고작 상추 열 개를 키우는 데도 이리 힘든데, 온 들녘에 심은 작물들이 병충해나 기후변화 때문에 죽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감히 상상도 안 갔다.
모종이 문제인가 싶어서 이번에는 다른 모종 가게에 갔다.
“사장님. 이거 상추 맞죠?”
“잉~”
“여름에도 잘 자라는 거죠?”
“잉~”
“진짜 이번에는 잘 키우고 싶어서 그래요. 지금까지 다 죽였단 말이에요.”
“아이고. 상추를?”
사장님은 건성건성 심드렁하게 대답하시다가 피식하고 웃으셨다.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는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간절했던 나는 모종들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했다.
조금이라도 시들시들해 보이는 상추 모종은 나의 레이더망을 통과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가장 튼튼한 놈들로 가득했던 세 번째 상추 화분은 정확히 삼주 뒤에 장렬히 전사했다. 내가 고전하는 사이 더욱더 힘이 세진 무더위에 녹았기 때문이다. 거미가 말라비틀어진 상추들 사이로 춤을 추듯 흔들대며 집을 지었다. 답답함에 내뱉은 숨에 애꿎은 거미만 날아갔다.
사실 시들어가는 상추 옆에는 짱짱하게 자라는 친구가 있었다. 바로 파란 꽃을 가진 수레국화였다.
처음 상추를 심을 때, 비어있는 자리에 무엇을 더 심을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친구가 선물로 줬던 수레국화 씨앗을 심었다. 바짝 말라 있는 씨앗을 물에 담가두었다가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싹이 났다. 나의 첫 번째 상추들이 죽어나가는 동안 수레국화는 쑥쑥 자랐고, 두 번째 상추들이 죽을 때 쯤 꽃을 피웠다.
‘뭐야, 나 똥손 아니었잖아?’
나는 곧바로 씨앗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꽃 사진을 찍어 보냈다.
“엥? 내가 선물한 꽃은 그게 아닌데?”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준 걸 심은 건데. 잘 봐봐...!”
“수레국화는 꽃잎이 훨씬 많고, 가운데가 더 진한 파란색이야. 사진 속 꽃은 꽃잎 개수도 적고 한가운데가 노란색이잖아.”
“그럼 얜 뭔데?”
“그러게, 걘 뭐니?”
그렇다. 그때 화분에 있었던 건 ‘진짜’ 수레국화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옮겨 심은 수레 국화는 이미 죽었고, 어디선가 날라 온 씨앗이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운 것이었다. 들떴던 마음이 애매하고 찜찜해졌다.
내가 한동안 답장이 없자. 친구가 위로의 문자를 보냈다.
“야. 그래도 예쁜데?”
“수레국화라고 생각했을 때가 더 예뻤던 거 같아.”
“그게 말이 되냐? 아까랑 똑같은데.”
“그냥. 내 마음이?”
“야 그거 사실 내가 선물해준 거야. 내가 바람에 날려 보냈다. 이 언니 대단하지?”
“뭐래~”
친구의 실없는 농담에 기분이 풀렸다.
화분 앞에 가만히 앉아 꽃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름 모를 꽃에서 연보라 빛이 났다. 얇은 꽃 이파리가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렸다. 어쩌면 내가 심었던 수레국화보다 더 예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