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단편선 02

영,일(0,1)

by 강한상

처음에는 그저 깨어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차가운 캡슐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나 자신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점점 더 격리되어 갔다.

원래라면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했다. 100년에 한 번 짧은 깨어남을 맞이하고 다시 잠들기를 반복하며 목적지로 향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가 잘못되었다. 의식이 깨어버린 것이다. 몸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었지만 정신만은 선명하게 깨어 있었다. 시스템이 내 몸을 깨우고 일정 시간이 지나 다시 냉동수면으로 돌입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신호는 오지 않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차갑고 단단한 벽, 반들거리는 금속 표면, 텅 빈 캡슐, 그리고 고요한 정적...

‘왜 나는 움직일 수 없고 의식만 깨어있는 거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몸을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몰라’ 이런 막연한 생각이 나를 버티게 했지만 그 또한 점점흐릿해졌다.

나는 기다렸고...'아니 계속 기다릴 거야'

시간이 쌓였다.

10년? 그쯤 되었을까. 점점 내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언제나 같은 풍경이 반복됐다. 그리고 그 반복속에서 감각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미세한 진동마저도 없어졌다. 완벽한 정적 속에 놓여 있었다. 어느 순간 벽이 꿈틀거렸다. 아니, 벽이 아니라… 공간이…. 눈앞의 금속의 벽이 마치 유리처럼 휘어지더니 갑자기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하지만 곧 다음 순간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이건 착각인가? 아니면 지금 내 눈이 잘못된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애초에 이 공간 자체가…

분명 나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어쩌면 존재하는 것조차 착각일지 모를지도…


끝이 없었다.

기다림도, 고통도, 감각의 마비도…. 얼마나 지난 거지?

순간과 순간이 붙어 늘어진 것 같고 끝없는 시간의 고리에

갇힌 것 같았다. 시간이란 개념조차 믿을 수 없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의식 속에서 생각들이 부서지고 있었다.

기억이 꼬리를 물고 과거와 현재가 뒤섞였다. 내 정신은 거의 붕괴에 가까워졌다.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허상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기억이 흐려졌다. 이곳에 오기 전의 기억, 내 이름,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희미해졌다.

의식은 있었지만 감각은 부재했다. 나의 존재를 믿었지만

그 믿음조차 허무했다.


'삐-익… 삐-익…'

어디선가 불규칙한 소음이 들려왔다. 한참 만에 소리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얼마만의 소리였을까.

'삐-익… 삐-익…'

소리는 반복되었고 내 의식 속을 파고들었다.

내 정신을 무너뜨리듯 파열음을 내며. 벽이 부서지는 느낌,

공간이 틀어지는 감각... 무엇인가가 부정되는 것을 느꼈다.

'삐-'

어둠이 내 시야를 덮었다. 순간적으로 ‘드디어 끝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을 기대하며…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소멸되지 않았다. 이 감각...낯설지 않다. 나는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이 순간을 겪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기억들이 쏟아졌다. 이전에도, 그 이전에도, 그보다 더 오래전에도… 깨어나고 그리고 다시 사라졌다.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얼마나 많이 이 곳에서 깨어났던 걸까? 그렇다면, 마지막은?내가 여기서 벗어난 적이 있었을까? 벗어나려고 한 적이 있었나?… 아니다.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처음부터 이 곳에서만 존재했다. 그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저 중요하지 않은 한 줄의 코드로…

'삐-익… 삐-익…'
… 처음에는 그저 깨어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눈을 뜨고, 숨을 쉬고, 차가운 캡슐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나 자신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나는 점점 더 격리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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