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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천사람 Jun 22. 2023

결혼, 그리고 회고.

나를 움직이고 지키는 힘은 무엇이었나

오랜만에 쓰는 글이네요.

결혼과 여행을 통해 느낀 것들을 하나둘씩 정리해보려 합니다.


벌써 2주 전이네요.

오래도록 긴 여행을 함께하고 싶은 희선이와 결혼했습니다.

연애기간으로는 거의 2년이 됐는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네요.


저는 짧게 느껴졌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믿음을 주었기에

빠르게 결혼을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고맙더라고요.




'아내, 와이프'라는 표현보다

여자친구가 입에 더 익숙할 때 떠난 스위스.

난생처음 떠나는 유럽을 신혼여행으로 가다 보니

유독 특별하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사진/영상으로 담아 왔어요.

모든 것들이 한국과 달랐고, 스스로의 모습을

많이 돌아보게 된 시간들이었습니다.


가장 자주, 많이 생각났던 건

'내가 아는 세계가 정말 좁았구나'라는 점이었어요.

 

여러 브랜드를 사랑하면서

가장 좋아하는(했던) 브랜드에 소속되어 

그 브랜드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지만,

익숙한 환경에서 조금만 벗어나 보니 

제가 속한 브랜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정말 극소수였습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브랜드의 제품들을 착용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브랜드와 사람이 있었죠.


지금 제가 속한 브랜드를 정말 많이 사랑했고, 좋아했지만

'오히려 그 사랑 때문에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건 아닌가'

'애정과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나'

'스스로 만든 애정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인한 예민함이 크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되더라고요.


취리히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던 린덴호프 언덕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마음 내려두고 쉴 수 있는 게 얼마만인지.

언덕 올라가서 콜라 한 캔 따고 노닥거리는데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부끄럽지만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결혼 준비하느라 못했던 것들 다 하고 온 것 같네요.



더 넓은 곳을 경험하기 위해 떠난 루체른.

와이프가 교통편을 꼼꼼하게 잘 봐줘서

평생 없을 경험을 많이 했던 날이네요.



유람선 타고 강을 건너는 때에도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넓은 땅,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빨리빨리, 

언제 할 거야, 뭐 할 거야, 어떻게 할 거야,

왜 이렇게 한 거야, 다 놓친 거야,

나였으면 이렇게 안 했다

 

스스로를 묶어두게 하는 말들이

조금도 생각나지 않던 스위스.

그중에서도 비츠나우에 들렀을 때

유독 이 평화로움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자연 속에서 같이 사는 '척' 말고,

'정말 자연 속에 사는 삶은 이런 게 아닌가' 싶었어요.


적당한 여유와 적당한 일,

적당한 편의시설과 적당한 자연.

그렇다 보니 사람들에게도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더라고요.


난생처음 밟는 땅에서

익숙하지 않은 곳들도 잘 찾아가는 걸 보니

'와이프랑 정말 잘 맞는구나' 싶었습니다.


저희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스위스에 왔다는 게 확 와닿았던 그린델발트.

맑은 날 아이거 북벽을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나 축복받은 날씨에 올 줄은 몰랐습니다.


구름이 살짝 끼어도 금방 걷히고,

사람들에게 유독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평생 느긋하게 살고 싶은 건 아니지만,

굳이 속도의 차이로 큰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살 필요가 있을까요.


스위스라고 스트레스가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일을 할 때나 사람들끼리 지낼 때나

제가 받았던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아내에게도 같은 느낌이었기를 바랍니다.


아침 일찍 나와서 셀프 웨딩사진을 찍었는데,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제가 지키고 싶은 건 이런 시간들이었거든요.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지낸 건 아니었을까요.


툰 호수 유람선 기다리던 인터라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인터라켄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몸에 걸치고 있는

크고 작은 브랜드들을 보다 보니

조금은 더 넓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한테는 전부인 것 같았던 브랜드가

누군가에게는 전혀 관심 없는 곳일 수 있고,

반대로 제가 모르는 브랜드도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속한 곳을 발전시키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게 정말 '양질의 일' 아닐까요.


생각해 보면, 저에게는 지금까지 그러한 '일'들이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끝없이 브랜드를 탐구하던 제 모습을

신혼여행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조금 내려두니 행복은 더 커지더라고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웃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했었고,

너무 많은 겁을 먹었던 것 같아요. 



지키고 싶은 사람과

지키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여행이 끝나갈 무렵, 가장 좋았던 순간을 와이프에게 물었을 때

"툰 호수에서 유람선 타고 슈피츠 넘어갈 때 너무 좋았어"

라고 바로 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순간에 느낀 행복을

사는 동안 다시 꼭 선물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습니다.

(여담이지만, 툰 호수를 건너는 2시간이 저에게도 꿈만 같았습니다.)


사는 동안 꼭 다시 오고 싶은 슈피츠


행복한 신혼여행이면서도

그동안 스스로를, 그리고 가까운 사람을 힘들게 했던

모든 걸 내려두고 제 자신을 찾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요.

물살이 생각보다 빨라서 놀랐던 베른


같이 2만 보를 걷다가

더워지면 발 담그고 잠시 쉬어갔던 시간들이

사는 동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굉장히 높았던 피르스트


머리가 핑- 돌고 숨이 가빠져도

옆에서 같이 올라가 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융프라우 올라가던 길


멀고 높게만 느껴졌던 설산을

같이 오르며 정상까지 올랐던 것처럼,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현명하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쾌청하지 않아도 구름은 걷혔던 융프라우

그리고 그 어려움들도

모두 넘기고 나면 별 것 아닌 일처럼 웃고 말겠죠.


열심히 오르고 추위도 이겨가며

융프라우를 올랐던 그날처럼요.




더 많은 행복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쉽게 지나치는 것에서 행복을 찾고 기록하는 일도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세계가 정말 일부분이었고

전부인 줄 알았던 것도 전부가 아니었듯이,

제가 모르는 영역에 끝없이 호기심을 갖는 모습을

앞으로 잘 지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보다 시간을 벌어야 하겠죠.

전부인 줄 알았던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써왔던 것 같아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은데 말이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는 데 

소중한 시간을 쓰며 살아야 할 듯합니다.


여러 고비들이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잘 헤쳐나갈 수 있겠죠.


모든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여러 환경,

그 환경에서 사람들이 찾는 브랜드, 보고 듣고 먹고 쓰는 모든 것들에

항상 궁금해했던 그때의 모습.

이 모습을 찾아온 신혼여행이었네요.


힘들어하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쏟던 날들은 묻어두고

다시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한 여정을 떠나려 합니다.

오늘의 결심이 있기까지 저를 움직이게 했던 질문으로

행복한 기록을 마칩니다.



"명함에서 모든 것을 떼어내고 이름만 남겼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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