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이고 지키는 힘은 무엇이었나
오랜만에 쓰는 글이네요.
결혼과 여행을 통해 느낀 것들을 하나둘씩 정리해보려 합니다.
벌써 2주 전이네요.
오래도록 긴 여행을 함께하고 싶은 희선이와 결혼했습니다.
연애기간으로는 거의 2년이 됐는데,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네요.
저는 짧게 느껴졌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믿음을 주었기에
빠르게 결혼을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고맙더라고요.
'아내, 와이프'라는 표현보다
여자친구가 입에 더 익숙할 때 떠난 스위스.
난생처음 떠나는 유럽을 신혼여행으로 가다 보니
유독 특별하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사진/영상으로 담아 왔어요.
모든 것들이 한국과 달랐고, 스스로의 모습을
많이 돌아보게 된 시간들이었습니다.
가장 자주, 많이 생각났던 건
'내가 아는 세계가 정말 좁았구나'라는 점이었어요.
여러 브랜드를 사랑하면서
가장 좋아하는(했던) 브랜드에 소속되어
그 브랜드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지만,
익숙한 환경에서 조금만 벗어나 보니
제가 속한 브랜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정말 극소수였습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브랜드의 제품들을 착용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브랜드와 사람이 있었죠.
지금 제가 속한 브랜드를 정말 많이 사랑했고, 좋아했지만
'오히려 그 사랑 때문에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건 아닌가'
'애정과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나'
'스스로 만든 애정보다 타인의 시선으로 인한 예민함이 크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마음 내려두고 쉴 수 있는 게 얼마만인지.
언덕 올라가서 콜라 한 캔 따고 노닥거리는데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부끄럽지만 사진도 많이 찍었습니다.
결혼 준비하느라 못했던 것들 다 하고 온 것 같네요.
더 넓은 곳을 경험하기 위해 떠난 루체른.
와이프가 교통편을 꼼꼼하게 잘 봐줘서
평생 없을 경험을 많이 했던 날이네요.
유람선 타고 강을 건너는 때에도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 넓은 땅,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빨리빨리,
언제 할 거야, 뭐 할 거야, 어떻게 할 거야,
왜 이렇게 한 거야, 다 놓친 거야,
나였으면 이렇게 안 했다
스스로를 묶어두게 하는 말들이
조금도 생각나지 않던 스위스.
그중에서도 비츠나우에 들렀을 때
유독 이 평화로움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자연 속에서 같이 사는 '척' 말고,
'정말 자연 속에 사는 삶은 이런 게 아닌가' 싶었어요.
적당한 여유와 적당한 일,
적당한 편의시설과 적당한 자연.
그렇다 보니 사람들에게도 특유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더라고요.
난생처음 밟는 땅에서
익숙하지 않은 곳들도 잘 찾아가는 걸 보니
'와이프랑 정말 잘 맞는구나' 싶었습니다.
저희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스위스에 왔다는 게 확 와닿았던 그린델발트.
맑은 날 아이거 북벽을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렇게나 축복받은 날씨에 올 줄은 몰랐습니다.
구름이 살짝 끼어도 금방 걷히고,
사람들에게 유독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었어요.
평생 느긋하게 살고 싶은 건 아니지만,
굳이 속도의 차이로 큰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살 필요가 있을까요.
스위스라고 스트레스가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일을 할 때나 사람들끼리 지낼 때나
제가 받았던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아내에게도 같은 느낌이었기를 바랍니다.
아침 일찍 나와서 셀프 웨딩사진을 찍었는데,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정말 좋더라고요.
제가 지키고 싶은 건 이런 시간들이었거든요.
그동안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지낸 건 아니었을까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인터라켄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몸에 걸치고 있는
크고 작은 브랜드들을 보다 보니
조금은 더 넓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한테는 전부인 것 같았던 브랜드가
누군가에게는 전혀 관심 없는 곳일 수 있고,
반대로 제가 모르는 브랜드도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속한 곳을 발전시키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게 정말 '양질의 일' 아닐까요.
생각해 보면, 저에게는 지금까지 그러한 '일'들이
지금과는 다른 환경에서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끝없이 브랜드를 탐구하던 제 모습을
신혼여행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조금 내려두니 행복은 더 커지더라고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눈앞에서 웃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했었고,
너무 많은 겁을 먹었던 것 같아요.
지키고 싶은 사람과
지키고 싶은 모습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여행이 끝나갈 무렵, 가장 좋았던 순간을 와이프에게 물었을 때
"툰 호수에서 유람선 타고 슈피츠 넘어갈 때 너무 좋았어"
라고 바로 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순간에 느낀 행복을
사는 동안 다시 꼭 선물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습니다.
(여담이지만, 툰 호수를 건너는 2시간이 저에게도 꿈만 같았습니다.)
행복한 신혼여행이면서도
그동안 스스로를, 그리고 가까운 사람을 힘들게 했던
모든 걸 내려두고 제 자신을 찾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제가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요.
같이 2만 보를 걷다가
더워지면 발 담그고 잠시 쉬어갔던 시간들이
사는 동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머리가 핑- 돌고 숨이 가빠져도
옆에서 같이 올라가 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멀고 높게만 느껴졌던 설산을
같이 오르며 정상까지 올랐던 것처럼,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현명하게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들도
모두 넘기고 나면 별 것 아닌 일처럼 웃고 말겠죠.
열심히 오르고 추위도 이겨가며
융프라우를 올랐던 그날처럼요.
더 많은 행복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쉽게 지나치는 것에서 행복을 찾고 기록하는 일도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아는 세계가 정말 일부분이었고
전부인 줄 알았던 것도 전부가 아니었듯이,
제가 모르는 영역에 끝없이 호기심을 갖는 모습을
앞으로 잘 지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보다 시간을 벌어야 하겠죠.
전부인 줄 알았던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써왔던 것 같아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은데 말이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는 데
소중한 시간을 쓰며 살아야 할 듯합니다.
여러 고비들이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잘 헤쳐나갈 수 있겠죠.
모든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는 아내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을 둘러싼 여러 환경,
그 환경에서 사람들이 찾는 브랜드, 보고 듣고 먹고 쓰는 모든 것들에
항상 궁금해했던 그때의 모습.
이 모습을 찾아온 신혼여행이었네요.
힘들어하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쏟던 날들은 묻어두고
다시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한 여정을 떠나려 합니다.
오늘의 결심이 있기까지 저를 움직이게 했던 질문으로
행복한 기록을 마칩니다.
"명함에서 모든 것을 떼어내고 이름만 남겼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