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를 보내며

by 인천사람

할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왔습니다.

3일간의 긴장이 풀린 채로 깊은 잠을 잤다가

정신 차리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군가 떠난 이후 기록을 남기는 건 기분이 참 이상합니다.

2009년 5월 17일, 반려견 뭉치가 떠난 이후 10년도 넘었네요.

"이 상황에 글 쓰고 사진 찍는 게 말이 되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해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다만, 그럼에도 기록을 남기는 건 책임감이 느껴져서이기도 합니다.

이때의 생각을 가시적인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평생 머릿속에서 맴도는 기억으로만 묻다 가겠지요.

오히려 제 성격에는 남기지 않는 게 '게으름'으로 느껴지기에

이럴 때일수록 호흡을 다듬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께서 가셨습니다.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어려움을 많이 겪고 계셨어요.


6.25 전쟁 참전 이후 세 쪽이 나버린 다리.

그 당시 할아버지의 나이 스물두 살.

그렇게 7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오셨습니다.


불편할 대로 불편해진 몸과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잡기 위해

아버지께서 밤낮없이, 휴일 없이

그렇게 몇 해를 보내셨습니다.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걸 다 하셨지만

할아버지께서 가시는 건 정말 순식간이더라고요.

그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우시는 걸 처음 봤습니다.

늘 저에게는 강성이셨고, 고집도 세고, 무서운 분이셨던 아버지 셨기에

식장에서도 경건하고 차분한 모습만 보이셨거든요.


그랬던 아버지께서

입관식 때 소리 내어 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항상 할아버지가 우선이셨던 아버지의 모든 것이 떠나는 순간이었을 테죠.

그 깊이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많은 감정이 오갔습니다.


화장터로 관을 옮기고 마지막 안내를 받은 후,

자리에서 소리 없이 우시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저 말없이 안아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왜 그렇게 우시는지 들을 수도 있었고,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다는 걸 알게 됐죠.

'가실 때 만이라도 편하게 가신 것이

하늘이 보인 최소한의 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가족들이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

제가 할아버지가 된다면, 다음 목표는 이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건강이 좋으셨다면

더 많은 추억을 함께 쌓을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제 기억에는 그럴 만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두 번째 쓰러지시고 나서는 할아버지 댁 밖으로 나가지 못했으니까요.


나중에 먼 여행을 떠나게 될 때,

다음 세대의 가족들에게

제가 조금이나마 '기억할 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추억을 나누고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며칠을 통해 더 크게 깨달을 수 있었네요.


가족들이 기억해 주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멋있고 재밌는 사람으로 늙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남은 시간 동안 연습해야겠죠.




할아버지께서는 이제 현충원에서 선배 전우들과 함께하십니다.

할아버지께서 다치셨을 때 도와주신 전우 분들,

평생 찾지 못했던 그분들과

그곳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이어 장교의 길을 선택했을 때,

"이놈도 장교여?" 하며 재밌어하시던 게 생각나네요.

직업군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남은 삶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놓아주신 할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손주며느리랑 행복한 기억 많이 쌓고 갈게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곁에서 밤낮없이

자식으로서의 모든 도리를 다 하셨던

저희 아버지를 위해 이 글을 남깁니다.


고생하신 것 모두 저희 가족은 알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 조금 내려두시고,

아버지 건강도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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