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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천사람 Sep 11. 2023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를 보내며

할아버지를 보내 드리고 왔습니다.

3일간의 긴장이 풀린 채로 깊은 잠을 잤다가

정신 차리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누군가 떠난 이후 기록을 남기는 건 기분이 참 이상합니다.

2009년 5월 17일, 반려견 뭉치가 떠난 이후 10년도 넘었네요.

"이 상황에 글 쓰고 사진 찍는 게 말이 되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해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다만, 그럼에도 기록을 남기는 건 책임감이 느껴져서이기도 합니다.

이때의 생각을 가시적인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평생 머릿속에서 맴도는 기억으로만 묻다 가겠지요.

오히려 제 성격에는 남기지 않는 게 '게으름'으로 느껴지기에

이럴 때일수록 호흡을 다듬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아버지께서 가셨습니다.

병상에서 투병생활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그에 가까운 어려움을 많이 겪고 계셨어요.


6.25 전쟁 참전 이후 세 쪽이 나버린 다리.

그 당시 할아버지의 나이 스물두 살.

그렇게 7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오셨습니다.


불편할 대로 불편해진 몸과 희미해져 가는 기억을 잡기 위해

아버지께서 밤낮없이, 휴일 없이

그렇게 몇 해를 보내셨습니다.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걸 다 하셨지만

할아버지께서 가시는 건 정말 순식간이더라고요.

그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우시는 걸 처음 봤습니다.

늘 저에게는 강성이셨고, 고집도 세고, 무서운 분이셨던 아버지 셨기에

식장에서도 경건하고 차분한 모습만 보이셨거든요.


그랬던 아버지께서

입관식 때 소리 내어 우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항상 할아버지가 우선이셨던 아버지의 모든 것이 떠나는 순간이었을 테죠.

그 깊이를 이해할 순 없겠지만, 많은 감정이 오갔습니다.


화장터로 관을 옮기고 마지막 안내를 받은 후,

자리에서 소리 없이 우시는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그저 말없이 안아드렸습니다.


아버지께서 왜 그렇게 우시는지 들을 수도 있었고,

할아버지께서 생전에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다는 걸 알게 됐죠.

'가실 때 만이라도 편하게 가신 것이

하늘이 보인 최소한의 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가족들이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

제가 할아버지가 된다면, 다음 목표는 이것으로 하고 싶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건강이 좋으셨다면

더 많은 추억을 함께 쌓을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제 기억에는 그럴 만한 기억이 많지 않습니다.

두 번째 쓰러지시고 나서는 할아버지 댁 밖으로 나가지 못했으니까요.


나중에 먼 여행을 떠나게 될 때,

다음 세대의 가족들에게

제가 조금이나마 '기억할 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추억을 나누고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며칠을 통해 더 크게 깨달을 수 있었네요.


가족들이 기억해 주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멋있고 재밌는 사람으로 늙고 싶습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남은 시간 동안 연습해야겠죠.




할아버지께서는 이제 현충원에서 선배 전우들과 함께하십니다.

할아버지께서 다치셨을 때 도와주신 전우 분들,

평생 찾지 못했던 그분들과

그곳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이어 장교의 길을 선택했을 때,

"이놈도 장교여?" 하며 재밌어하시던 게 생각나네요.

직업군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남은 삶을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놓아주신 할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손주며느리랑 행복한 기억 많이 쌓고 갈게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곁에서 밤낮없이

자식으로서의 모든 도리를 다 하셨던

저희 아버지를 위해 이 글을 남깁니다.


고생하신 것 모두 저희 가족은 알고 있습니다.

이제 마음 조금 내려두시고,

아버지 건강도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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