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엿보기 17.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이 아니다.”

by 강화석

위스키 “산토리 올드”의 광고 「Old is new」 캠페인


술과 매우 친숙해 지고 있는 한 해의 끝 무렵이다. 누구라도 이때쯤이면 술과 가까워지게 되어있는데, 이 핑계 저 이유 들며 탐닉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송년의 필수품처럼 술이 따라오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술은 인류가 식량거리보다 앞서서 만들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있다. 인류가 아득히 먼 옛날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인류의 발전 단계를 보면, 원시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사회로 변모하며 “농경문화”가 발전하게 된 것은, 인류가 곡물이 발효된 음료를 마셨다가 매료된 후 이걸 얻기 위해 열심히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얘기이고 보면, '빵보다 맥주가 먼저'라는 가설이 맞는다 할 수 있고, 이미 기원전 7000년 전 황하유역에 살던 인류가 술을 빚었으며, 기원전 7000년에서 6000년까지 유럽의 조지아Georgia에서도 포도주를 담갔다는 등, 인간이 의도적으로 술을 빚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캐나다 UBC의 “에드워드 슬링거랜드”교수가 쓴 책 『취함의 미학』에 담긴 이야기이다.

오늘은 때가 때이니 만큼 “술 광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일본 위스키인 “산토리 올드”의 광고캠페인 “Old is New”시리즈에 대한 것이다. ‘재패니즈 위스키(Japanese Whisky)’는 1928년 산토리 위스키(SunTory Whisky)가 세상에 나오면서 시작됐고, 일본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5대 위스키 생산국에 속하고 있다.

특히 산토리위스키 “올드(OLD)”는 1950년대부터 고가(3천엔)임에도 불구하고 출세한 사람이 마시는 위스키로 인식되면서 일본의 거품경제 시기와 맞물려 크게 히트한 술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거품경제가 가시기 시작하고, 다양한 주종들과 저가의 위스키가 등장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든 이후, 1990년대에는 위기 인식하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게 되었다. 산토리올드는 가격을 1980엔으로 대폭 낮추고, 예전의 브랜드 평판을 회복하면서 새로워진 브랜드의 이미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주 고객층이 예전의 한참 잘 나가던 젊은 층이 아닌, 이제는 나이가 든 중장년층임을 감안하여 주 소비층을 “올드(old) 세대”로 삼고, 브랜드인 “OLD”와 연결하여 동류의식을 자극하면서도, 새로워진 산토리올드(OLD)에 신선한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Old is New”라는 캠페인 키워드Keyword를 정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이 아니다.”라는 광고의 concept 및 카피슬로건copy slogan을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였다. 광고에 대한 관심유발을 자극하면서 광고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중의적인 표현전략을 시도하고자 한 것이다.


본래 술 광고에 정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술이란 제품이 “쾌락재”로서 소비자에게 행복감이나 즐거움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연결에 도움을 주는 역할과 관련이 있으니, 광고소재나 분위기 조성에서부터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대략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이다. 건전한 분위기에서 젊은이들의 활기와 생동감을 전하려는 광고도 있지만, 한 때는 좀 민망한 또는 끈적끈적한(?) 분위기가 연상되는 장면들을 대놓고 보여주며 술을 권하거나 유혹하는 광고들도 많았다. 어차피 그렇고 그런, 다 아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대중다수가 보는 TV등 대중미디어를 통해 버젓이 이런 식의 광고를 하곤 했다.

술 광고에는 ‘사랑의 상황’이나 ‘아름다운 여인’의 등장이 필수적인 것처럼 취급되기도 하는데, 상대역이면서 주인공인 남성역시 당연히 출연하여 묘한 분위기를 이끌어 가게 된다. 남성은 술의 헤비유저heavy user로서의 역할이 있고, 술 소비를 촉발하는 자연스런 상황을 암시하려는 설정인 것이다. 이렇게 광고에서는 술이 남녀 간의 모종의 거사(?)에 필수적인 매개이거나 도구로서의 역할이 있음을 연상하려는 의도인 셈이다.


광고가 이렇게 노골적이다. 광고의 목적을 달성하려다 보니 이것저것 서설(序說)을 빼고, 기승전결도 없이 본론으로 훅 들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단도직입적인 전개가 다소 어색하거나 마뜩찮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수많은 노출정보 속에서 진득하니 특정의 광고만을 들여다볼 리 없는 소비자의 심리를 직격하여 광고한 보람(효과)을 일으키려면, 이렇게 대놓고 외치면서 할 말을 해야 하는 것이 광고의 숙명적인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필자가 제작에 관여했던 술 광고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고려되었다. 외국여행지의 화려한 선상(船上)파티에 중년의 신사와 젊고 멋진 차림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 둘은 서로 관심을 기울이며 은밀히 눈빛을 교환한다. 그 어떤 대화는 없어도 이런 상황 스토리와 광고 사이에 제품과 달콤해(?) 보이는 술잔을 끼워 넣어 보여주면, 누구든 제멋대로 그 빈틈의 스토리를 채우면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쯤하면, 이 광고는 술을 매개로 그 다음단계의 작업을 자극하려는 의도까지 연상하게 하는 것이니, 한편 교묘함을 담고 있는 듯해도, 누구든 어렵지 않게 상상을 유발하며 제품에 대한 관심과 기대를 갖게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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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2.jpg 광고화면(크리세이(http://cressay.co.kr) 제공) 캡쳐

1994년에 시작한 “산토리올드” 캠페인은 이런 술 광고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당시 일본 내에서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광고 속 에피소드에 대해 사회적 반향이 크게 일며 여론의 지탄을 받을 만한 표적이 될 정도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도, 결국 광고사에 남을 명 광고라고 평가되기도 하였다. 이 캠페인campaign은 목적 달성이상의 노이즈noise를 가져온 광고라고 할 수 있는데, 생활 단편형(slice of life) 소구방식으로 표현한 기막힌 중의적 메시지를 담은 명작이라 할 만하다. 단순하게 보면 앞서 언급한, 뻔한 상황을 이용한 전형적인 술 광고에 속할 수 있지만, 광고 본연의 목적과 콘셉트를 고려할 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도 온갖 재주는 다 부린 고수(高手)의 그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산토리올드 캠페인의 핵심 메시지인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이 아니다.”라는 광고카피는 중의적인 뜻을 담은 고도의 전달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녀 간의, 그리고 기혼의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 또는 연상 여인과 젊은 남성간의 다소 문제적인(?) 관계설정에서의 사랑 감정을 유발하려는 스토리텔링과 함께 브랜드에 포함된 "Old"와 "오래 된"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하려는 기대감으로 브랜드의 리뉴얼(renewal)이미지를 동시에 전하려 한 것이다.

이는 광고자극(광고내용)에 대한 관심유발이 광고에 대한 원활한 정보처리과정의 출발임을 잘 알고 있는 전략적인 소구인 셈인데, 특히 술 제품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쾌락적 이미지는 소구방식을 섹스어필sex appeal로 가거나, 연관된 상황 또는 도구를 이용한다고 해도, 그러려니 하는 기(旣) 인식의 수용태도가 있고 보면, 이 또한 자연스러운 발상에 속하는 것이다. 평범하게 남녀 간의 연애감정이나 사랑의 마음이 싹트게 하려는 접근법으로는 관심거리조차 될 수 없는 것이고 보면, 이렇게 다소 어긋나 보이거나 상식적 인식의 밖에 있는 소재여야 조금이라도 들여다 볼 심사가 생겨날 것이다. 아무튼 당시 일본의 정서측면에서는 대놓고 도덕과 윤리가 수용하기 어려웠을지 몰라도 인간의 내적심리는 이런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광고는 이렇게 미묘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소비자를 자극하고 흔들었다. 선을 넘지 않는 상황에서 내적 반응이나 심리적 자극에 충분히 영향을 발휘한 것이니, 결국, 사회적 여론까지 합세하며 대중의 호응을 증폭하게 된 것이었다. 누군가는 불륜을 조장하는 광고라는 심한(?) 진단과 함께 반사회적 이미지를 덧씌우려 했지만, 오히려 광고에는 유리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셈이 되었으며, 이는 광고의 양면성으로 보아 매우 잘된 흐름이라 할 수 있었다.

이 광고는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 그리고 “중년의 여자와 젊은 남자”로 각각 구분하여 두 분류의 시리즈로 전개하였다. 기본의 스토리 라인은 대략 이런 식이다. 50대로 보이는 기혼의 중견간부인 남성 과장은 미혼일 듯 한 젊은 여직원으로부터 관심을 받는다. 예를 들면 기차를 타고 출장을 가는 상황에서 앞에 앉은 젊은 여직원이 “제가 신입일 때, 과장님이 야단을 쳐서 울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이 남자에게도 눈물을 흘리게 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이 말을 들은 남자 과장은 처음엔 무슨 말인가 하다가 그 뜻을 뒤 늦게 알아차리고 놀라게(기뻐하게) 된다는 설정이다. 어찌 보면 간단한 상황에서 이해가 분명한 에피소드를 설정하여 어렵지 않게 그 상황과 전달의 의도를 알아차리도록 하니, 이 광고를 보는 소비자들이 즉시 공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50대의 남성과장은 그동안 사회생활에 열중하느라 개인의 감성이나 연애 감정 등 자신에 대한 부분들에 신경을 쓰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왔으나, 이처럼 젊고 매력적인 여성으로부터 유혹적인(?) 말을 듣고 보니 아직은 자기 자신이 ‘나이 든(old)’ 것만은 아니라는 감정을 확인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신선한 자극은 이 광고를 보고 있는 산토리올드의 주 소비자층인 중년들에게 크게 고무적인 것일 수 있고, 그 공감하는 바에 따라 그 관심의 상징적 대상으로 산토리올드를 연상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유형의 내용을 담은 시리즈광고는 다양한 상황의 에피소드로 만들어져 지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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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년의 여성과 젊은 남성” 시리즈의 스토리는 이렇다.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는 여성의 가게로 잘 생긴 젊은 의대생이 매일같이 점심 도시락을 사러온다. 여 주인은 무심코 매일 같은 도시락을 먹으니 질리지 않느냐고 묻지만, 그 젊은 남성은 매일 도시락을 사러오는 이유는 도시락 때문만은 아니라는 대답을 하게 되고, 결국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매일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여주인은 묘한 기분을 느끼면서 혼자만의 즐거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때에도 광고에서는 “사랑은 먼 옛날의 불꽃이 아니다.”라는 멘트와 자막이 뒤따르며, 여자 모델이 폴짝 뛰어오르는, 다소 어색하지만 속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행동을 보인다. 이외에도 자전거를 타고가던 여 주인의 자전거가 고장이 난 상황에 젊은 학생이 이를 고쳐주게 되거나, 손님이 만원인 버스에서 내리려는 여주인을 위해, 그 젊은 학생이 “여기 손님이 내려요”라고 외쳐 준다든가 하는 우연을 가장하고 있지만 애틋하고 이유있는 두 남녀 간의 핑크 빛의 에피소드를 광고슬로건에 어울리도록 스토리텔링화하여 다양하게 보여줌으로서 주 목표소비자층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가 사회적으로 화제가 될수록, 광고효과는 높아지고 있었지만 한편에서는 우려의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실제 이 광고에서는 그 이후의 발전된 스토리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마음속에 상상되는 감정에의 영향을 염려하게 된 것이다. 즉 사회여론이 “불륜을 조장하는 광고”라는 인식으로 확산하게 되니, 사회문제화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사회적인 noise현상으로 작용하여 오히려 광고효과측면에서는 불리할 리는 없었으므로 부담은 있었을지언정 그만큼 성공적인 광고로 평가받게 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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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7.jpg 광고화면(크리세이(http://cressay.co.kr) 제공) 캡쳐

또한 이 광고에 등장한 주연 남여 배우들은 당시 일본에서는 매우 친숙하고 대중적 호감도가 높은 배우들이었고, 당시에 대중적 관심을 끌만한 소재에 해당하였기에 광고와 유사한 설정을 스토리로 한 영화까지 만들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겉으로야 노심초사하는 듯 했겠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산토리의 모습이 상상 된다.

이 시리즈는 여러 편이 제작되고 방영 되면서 1994년부터 96년까지 지속하였는데, 가격을 대폭 낮춘 탓도 있지만, “산토리올드”는 지난날의 영광을 회고하는 제품이 아닌, 새롭게 선풍을 일으키는 제품으로 리뉴얼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쯤해서 이렇게 사회적 관심을 유발한 산토리올드 광고의 영향력을 돌아보게 되니, 1996년에 광고가 아닌, 드라마에서 이런 유사한 사회적 파장이 일었던 우리나라의 사례가 생각난다. 그 무렵 MBC-TV 월화 드라마 "애인"이 이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우리는 한술 더 떠서 대놓고 드라마로 스토리를 전하니, 내숭이고 뭐고, 일대 신도롬syndrome을 일으켰던 것이다. 곧 "애인신드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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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5.jpg TV자료화면 캡쳐

당시 이 드라마는 사회문화적으로 화제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이에 대해 거론하게 됨으로써 커다란 사회문제로 부각되는 파장을 불러왔다. 또한 화제에 따른 그만큼의 반대급부로 한쪽에서는 대놓고 죄악시 하면서 문제로 삼았다. 인간사회의 이중성이다. 아무튼 이 영향 탓인지는 모르나, 실제 1997년 이혼율이 전년 대비 폭증했다고 하는데, 벌써 한 세대 이전의 일이지만, 사소하게 바라볼 일은 아닌 듯하다.


아무튼 술을 둘러싼 이런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인간사회의 양면적 문제를 의도적으로 유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그렇게 휘둘리면서도 불가피하게 끌어안고 가야 하는 인간사회의 필수용품인 까닭으로 돌리면서 그러려니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연말 술과 가까워지는 제 철이다. 지나치면 몸도 마음도, 나아가 여러 면에서 지치고 상(傷)하게 할 수 있으니, 조금은 경계할 일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이 광고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오고 편안해진다. 마치 오래 전의 광고를 통해 회상하는 식이지만, 아마 한편에서는 이런 상황만큼은 거부하기 어렵게 호응이 이는 것은 매우 당연하지 않은가? 싶다. 물론 이런 반응이 사실관계의 고백은 아니지만 말이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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