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엿보기 19.

『자화상』, 자기가 그린 자기의 초상(肖像)

by 강화석

“나는 누구인가?”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벌써 십 수 년도 더 지난 예전 일이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했던,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유명 미남배우인 신모(某)씨가 TV에 나와 "이걸 베토벤 파마라고 한다." 며 자신의 파마머리를 자랑하던 모습을 보면서 그 헤어스타일이 좋아보였다. 젊은 시절 귀를 덮는 長髮(장발)을 잠시 해보기는 했으나, 늘 평범한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내가 갑자기 따라 해보고 싶었다. 50대 초반을 지나던 때였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한번 해 보려고 미장원엘 갔지만, 막상 의자에 앉아 내 얼굴을 보고 나니, 파마해달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왠지 내 모습이 나대기에는(?) 어쭙잖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집에는 해보겠다고 말하고 나왔지만, 그저 평소대로 커트cut만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자화상(自畵像)」이란 졸시(拙詩)를 한편 쓰며, 나의 불발된 시도와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모습을 발견하고 경험한 정서를 스스로 달래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이 해프닝happening 덕에 나를 돌아보는 「자화상」이란 시를 써보는 계기가 되기는 했으나, 그 시 또한 여기저기 내 보일만 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시(詩) 토론 모임에서 슬쩍 내보였을 뿐이다. 이렇게 자기 모습을 스스로 바라보면서,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도 아니며, 또 새삼 발견하는 자기 모습에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음에도 쭈뼜대는 자신이 의아하기는 하였다.


지금 나는 개인적 경험에 따른 글을 쓰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경험을 갖고 있는 내 입장을 빗대보면서 그간 「자화상」을 쓰고 그린 작가들의 심정이나 그 배경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자화상(自畵像)은 “자기 모습을 스스로 직접 그린 그림”을 말하지만, 이렇게 그림뿐 아니라 시(詩)로 표현한 자화상을 꽤 많이 떠올릴 수 있는데,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이나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은 숱한 사람들에게 여전히 감동을 주거나, 어떤 식이든 영향을 주는 뛰어난 문학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림 “자화상”의 경우에도 17C 화가 “렘브란트Rembrandt”를 비롯하여 19C 인상주의 화가 “고흐Gogh” 등이 특히 자화상을 많이 그린 편에 속하는데,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이들의 작품들은 깊은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자화상을 그리는 화가나 시인들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자기만의 내적인 갈망이나 사유의 사정이 있을 법하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누구라도 그릴 수 있지만, 자화상을 쓰고 그렸던 시인이나 화가들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본격적인 ‘자화상’의 등장은 르네상스 시기인 근세부터라고 할 수 있지만, 인류의 자화상은 <나르키소스Narcissos>의 신화 속에서 근원적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르키소스>가 호수 위에 비친 자신을 보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혹은 자기를 알지 못하게 되었으면) 오래 살 수 있었으나, 수면에 드러난 자기의 얼굴을 본 <나르키소스>는 그 모습에 반한 끝에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신화 속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타인화(他人化) 된 자기를 사랑하게 된 <나르키소스>의 자기애(自己愛)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 자화상인 셈이다. 이것은 자기를 타자(他者)로서의 대상화(對象化)이면서, 라캉이나 실존주의자들의 관점인 타인에 의한 응시를 통해 실존을 확인하는 한편, 자기정체성의 인식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자화상”은 자기를 타자로 대상화 시켜 타인으로 바라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응시(凝視)”는 주체의 분열을 표시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즉, “스스로를 보는 스스로를 본다”는 의미는 자기 존재의 확인은 반드시 타인을 통해서 가능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볼 수 없는 자기는 결국 자기의 실재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존재한다는 사실 외에는 실재성을 확신해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자신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는 내재성을 나타내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는 공허한 반사놀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아“는 실재하지 못하므로 상상계 속의 이미지가 실재한다는 것을 확증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응시“가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주체가 데카르트 주의(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측면에서의 주체에 해당한다면, 그리고 그 주체의 눈(眼)이 중심적인 시선을 가지는 것이라면, “응시”의 개념은 주체에서 분열하여 대상으로 변한 뒤에 결국 대상 속에서 주체를 바라보는 것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라캉에게 ‘응시’는 주체의 분열을 표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응시의 기능은 눈의 기능과 혼동되어 왔는데, 나르시시즘Narcissism적인 기능을 갖는다면 라캉에게 응시는 타자성, 욕망과 관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자화상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자기 확인의 물음에 대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像)을 ‘어떻게 다시 만드는가?’의 “어떻게”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스스로를 그리는 것이므로 그림의 대상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수월한 회화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결코 자화상이란 그런 발상과는 거리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자화상(Self-Portrait)은 기본 개념조차 ‘자아라는 의미의 self’와 portray가 합쳐진 ‘self-portrait’로서 ‘자기를 끄집어내다, 밝히다,’ 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에게 “자화상”이란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에 의문을 던지는 거대한 질문과 화답(和答)이라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인식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만나고 관계를 맺는 현상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이 필요하며, 자신이 스스로를 직접 그리기 때문에 외모의 재현만이 아닌 고백적이고 자기 탐구적인 경향이 드러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렘브란트 34세의 자화상.jpg 렘브란트, 34세의 자화상, 1640년. 사진 출처: 영국 내셔널갤러리

서양 미술사에서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들을 꼽자면, 렘브란트가 70여점, 반 고흐가 42점, 폴 세잔이 30여점, 그리고 마르크 샤갈, 프리다 갈로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들은 자기 성찰의 방법으로서 꾸준히 자화상에 매달린 것으로 평가 되는데, 자화상을 통해서 단지 외양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얼굴을 묘사하면서 정신을 묘사하려는,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까지 표현하고자 하였다.

63세의 렘브란트.jpg 렘브란트 판 레인, 63세의 자화상, 1669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동아일보)

렘브란트는 의도적으로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그의 생애는 비교적 화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말년으로 갈수록 그의 삶은 순탄치는 않았다), 작품들에는 우울함이 깃들여 있는 편이라 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물질과 가려진 영혼, 현실과 꿈, 욕망과 부족함 사이에서의 갈등의 느낌들을 은연중 드러내면서도 예술적 감각으로 절묘하게 대비하여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의 자화상에는 자기에게서 느껴지길 바라는 현세적(現世的) 이미지, 또는 물질적 상징을 의도적으로 표현해 내기도 하였다. 이는 렘브란트가 성공한 화가로서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았기에 이 부분을 감추지 않았던 탓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흐 자화상1.jpg 고흐, 귀가 짤린 자화상 1889년 1월, 59*47cm, <유화>, 런던, 도록사진 캡쳐

렘트란트에 비해 반 고흐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면서도 자기를 지키려고 부단히 애를 쓴 화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흐는 생애 중에서 27세인 1880년 경 부터 세상을 떠나는 1890년 까지 10여 년 동안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총 2,000점에 달하는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이중에서 자화상은 42점에 이르며, 대부분 1886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이후부터 남 프랑스의 아를Arles에 머물던 시절까지 그려졌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고흐의 삶은 끊임없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부모의 무관심과 충돌 뿐 아니라, 반복되는 실연과 친구와의 결별을 통해 그가 겪은 좌절과 절망의식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동생 테오와의 교류와 지원 덕에 그림을 그림으로서 위안을 구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하였다. 이런 삶속에서도 고흐는 인내하고 노력하면서 자기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을 찾으려 고군분투했다고 할 수 있다. 동생 테오와 교환한 수많은 편지 속에 담긴 그의 성찰과 고백을 통해 고흐가 안고 있었던 조건이나 고뇌에도 불구하고 예술에의 몰두와 자아탐구에 대한 열의를 읽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내적인 갈망이나 열정이 마치 혼(魂)의 절규처럼 작품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고흐가 남긴 “자화상”들을 통해 그에게 가해지는 생애의 조건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 했던 자기에 대한 탐구의지를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강하게 위협하던 삶의 조건들에 맞서 내적인 성찰이나 자아개념의 탐색을 통해 극복하려 하는 한편, 자아정체성을 확인함으로써 자기존재를 받아들이려 했던 것이라 이해하고 싶어진다. 자화상에 담긴 모습들은 자기를 그린 것이지만 분명 동일하게 표현되어지지는 않았다. 이것은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는 또 다른 응시를 통해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변화나 갈등에 대응하는 내면성을 담아내었기 때문이라 생각해 본다.

귀를 싸맨 자화상.jpg 고흐, 파이프를 물고 귀를 싸맨 자화상 51*45cm. 1889년 1월. <유화> 도록사진 캡쳐

고흐는 아를Arles에 머물며 고갱과 함께 이상적인 화가 공동체 생활을 꿈꾸었으나 그와의 불화로 좌절되어 버리자 스스로 귀를 자르고 난 뒤에도 곧 바로 두 개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림 속의 고흐는 오히려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물론 강렬한 기운이나 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기대를 내려놓거나 고갱에 대한 사죄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고흐는 고갱과의 사건이후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고갱에게 “진지하고 깊은 우정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쓴다고 하면서, “이 멋진 세상에서 결코 어떤 악의도 없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아달라고 사죄의 뜻을 담아 부탁하고 있다. 귀를 자른 부분에 붕대를 감은 모습을 그린 두 개의 자화상 속 고흐는 푸르고 맑은 눈망울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 또는 자기를 바라보는 관찰자를 바라보고 있다. 이 작품들 이후에도 몇 편의 자화상을 더 그렸는데, 이때의 그림 속 고흐는 상처가 없는 왼쪽 옆모습을 보여주는 시선으로 그려졌다.

미술영역에서 시작된 자화상은 18세기 이후에 문학에서도 ‘자아의 글쓰기(écriture du moi)’ 라는 형태로 발전하여 문자를 통하여 자아(自我)를 표출하고 現象(현상)하고자 하였다. 자아를 주시하고 그 존재 의의를 각성하는 일은 자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위이며, 이렇게 자아를 인식하려는 과정에서 타인과 구별되는 존재로서 자기를 파악하고 고유한 존재로서의 가치와 생존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한편, 이로 인해 자아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서정주와 윤동주는 모두 공교롭게 23세 때인, 즉 서정주는 1937년(1915년 출생) 가을에, 윤동주는 1939년(1917년 출생) 9월에 각각 시 「자화상」을 썼다. 1930년대 후반에, 20대 초반인 두 젊은 시인들은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자아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가진 채, 자아 정체성에 대한 성찰의 과정을 겪은 것인가 싶다. 20대라는 나이와 국가적 상황이 부여한 조건 속에서 자기들이 가진 개인적 욕구나 사회적 압박 등과 맞물리면서 개인의 정체성과 국가적 상황사이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고뇌에 빠진 이들에게 가해진 해결과제는 그저 간단하거나 평이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정주나 윤동주에게 작품 「자화상」은 본격적인 시 창작의 단초가 되어준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미당(未堂) 서정주의 「자화상」은 첫 시집인 『화사집』(남만서고, 1941)에 첫 번째로 등장하고 있는데, 비록 그의 첫 작품은 아니지만 평단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시적(詩的) 출발점으로서 「자화상」을 서정주의 처녀작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이며, 윤동주의 경우에서도 이전 시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나’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뚜렷하게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 1939년에 쓴 「자화상」에서부터라고 평(評)하고 있다.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중략)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하략)


서정주의 시 “자화상”, 화사집(남만서고, 1941)


이 시를 통하여 20대 초반의 미당(未堂)이 가진 자아(自我)에 대한 인식이나 자의식(自意識)에 임하는 그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이미 “애비는 종이었다”라는 자기 신분에 대한 고백을 통하여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토로하는 한편,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라며 짧지 않은 세월을 산 그가 자기존재를 인륜적인 관점이 아닌, 세상의 외적 시련을 겪어낸 존재로서 스스로를 객체화하면서 실존적 인식에 따른 자기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23년의 생애동안 살며 그가 내면에 담게 된 자기존재의 실체나 원천에 대한 이런 인식의 출발은 무엇이었을까? 미당은 제3자의 관찰자 시점에서 자기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기와 다른 시선을 가진 타인들에 의해 인식되는 “나”와 자기개념에 의한 “나”의 타협적 극복을 통해 자기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당은 신분의 비천함이나 궁핍한 생활상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피하지 않고 자기개념을 당당하게 파고들며 대의적 관점에서의 생명인식이나 실재의식을 드러내고자 한다.

자아란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고 타인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거나 사회․문화적 환경의 지배를 받기도 하는데, 자기를 타자와 구별되는 존재로 파악하면서 자아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 가치나 생존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미당은 이런 자아 인식의 과정 속에서 주체로서의 자아와 객체로서의 자아를 상정하면서 자기 성찰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당은 자신을 가난하고 불행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고백하면서 그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즉 시의 가운데 부분에서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라고 하면서 타인들이 읽는 객체로서의 자아가 무엇일지라도 상관없이 스스로 주체로서의 자아를 강하게 확립하면서 기본 기조는 암울하지만, 강한 어조를 통해 이를 이겨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윤동주 역시 「자화상」에서 자기를 타자화하면서 스스로를 대상으로 삼아 자기의 존재인식과 함께 객관화된 시점(視點)에서의 성찰을 시도하려 한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윤동주,「자화상」(1939.9.),전반부)


우물 속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타자화하여 객체적 자아로 설정하면서도 실재의 자기와 관찰자로서의 자기가 서로 교차하며 갈등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불안정성을 표출하고 있다. 일단 자기존재에 대한 혼란이 내포되어 있으나 현재의 처지가 이입되어 있는 상태에서의 정체성에 대한 내적 갈등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윤동주의 「자화상」은 우물에 반사된 자기를 “사나이”로 객체화하며 관찰자의 입장에서 우물에 투영된 자기를 인식하려 한다. 그럼에도 자기가 바라는 모습이 아닌 것에 실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 역할의 불충분함과 부족함에 대한 고백이며 반성이 투영되어 있는 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윤동주,「자화상」(1939.9.),후반부)


이것은 결국 우물 속 수면에 비친 나(윤동주)를 나 스스로 보고 있는 것이며, 나 자신을 보고 있는 나를 확실히 해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타자의 응시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타자를 통해 나의 실재(實在)를 확인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이 그러리라고 상상했던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데, 스스로를 주시하는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물 속의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 대상인 우물 속의 나는 관찰자인 나로 하여금 보여지는 존재를 지각하게 되며, 결국엔 “결여(缺如)”를 느끼게 되고 이로 인한 욕망이 탄생하게 되는 각성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자아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욕망이 발생하면서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라고 인식하며 돌아섰다가,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라고 자기 존재에 대한 확인과 함께 발생한 “결여”는 의미있는 욕망으로 전환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윤동주는 우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실존적 인식과 함께 스스로 기대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인과 새로운 내적성찰을 겪어내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윤동주와 서정주는 시 「자화상」에서 공(共)히 ‘나’를 성찰하고 정의하기 위해 타자를 상정(上程)하며 ‘나’를 파악하고 있다. 서정주는 ‘타자의 시선에 비친 ‘나’를 부정하면서, 윤동주는 ‘자기 안의 스스로를 부정’하며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자기의 답을 찾고자 한 것이다.


자화상은 곧 ‘나’를 비추는 ‘거울’이며 ‘타자의 시선’인 셈이다. 그림이든 시이든 표현 수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치열한 자기성찰을 통해 “자기개념”을 정의하고 자아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지난(至難)한 여정을 거쳐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예술가들의 자화상은 단순히 “자기초상”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해당 시대의 총체(總體)나 생애의 전부를 담는 표상(表象)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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