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백석(白石)의 이런 사랑이야기는 어떠한가?
백석이 사랑한 여인에게 바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지난 가을, 세검정 부근 신영동 주택가 골목길을 통해 백사실 계곡을 거쳐 북악산으로 들어가는 산행(山行)을 한 적이 있다. 다소 가파른 길이긴 하지만 동네와 붙어있으니 마치 뒷산이라도 오르는 것 같고 수량도 풍부하면서 맑은 물이 흐르는 백사실 계곡은 풍류(風流)가 저절로 일어날 만치 운치(韻致)가 있었다.
북악산은 서울 한 복판이라 해도 좋을만한 곳에 인왕산, 북한산과 맞닿아있고, 청와대를 품고 있으며 정상에 서면 서울 중심가가 내려다보인다. 북악스카이웨이를 끼고 걷다가 팔각정에 오른 뒤 하산하는 길도 다양한데, 결코 작은 산이 아니라는 뜻도 될 것 같다. 정상에서 주로 왼쪽 방향으로 향하다 보면, 청와대 옆길이라 할 삼청동 방향과 성북동 방향으로 갈리는데, 우리 일행은 성북동 방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곧 이어 다소 급한 내리막길이 나오고, 산 중턱을 한참 올라온 곳까지 집을 지은 성북동 주택가가 나타나는데, 이곳은 부촌(富村)으로 이름을 얻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하산(下山)을 계속하면 자연스럽게 꽤 유명한 사찰 “길상사(吉祥寺)”를 지나치게 되어있다. 사연(事緣)과 遺緖(유서)가 어우러져 있는 서울 장안의 명소라 할 만하므로 그 절은 일반의 사찰(寺刹)이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이 절에 대해서 알고 있다. “김영한(1917~1999)”이라는 여성 사업가가 평생 일군 대형요정(대원각)을,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재산을 기꺼이 시주(施主)하였는데, 처음에 거절을 당하는 바람에 오랜 기간 설득을 해야 했다고 하니, 이 또한 특별한 스토리텔링이 될 법하다. ‘무소유(無所有)’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구도자(求道者)이면서 작가인 법정스님에게 여러 차례 설득 끝에 뜻을 이루면서 본인도 무소유를 실천하여 “길상사(吉祥寺)”라는 도량(道場)과 깊고 아름다운 기억의 명승지(?)를 남긴 셈이다.
한편 이런 덕행(德行)을 실천한 이 여성 사업가는 “자야(子夜)”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시인 “백석(白石, 본명 백기연, 1912~1996)”과 관련이 있기에 더욱 화제가 되었다. 즉 젊은 시절 두 사람은 우연히 인연이 되어 한동안 연인관계였었고, 평생을 잊지 못한 그녀는 홀로 살면서 사업을 일군 것이며, 이렇게 뒤늦게 불교에 귀의(歸依)하면서 특히 법정스님의 무소유 정신에 감화되어 전 재산에 해당하는 거부(巨富)를 시주한 것이라는 스토리이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면 심상(尋常)치 않으면서 고결하고 지순한 남녀의 사랑이 떠오르게 되고 누구라도 가슴에 간직하고 싶은 아름다운 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한다. 이런 배경으로 길상사 경내에 “자야”라는 별칭을 가진 기부자 “김영한”을 기리는 사당(祠堂)과 이 분의 평생 연인인 백석시인의 대표작중 하나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제목의 시비(詩碑)를 세워 길상사를 방문하는 대중들에게 노출하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필자에게도 이 시는 백석시인에게 잘 어울리는 시적 정서와 영감을 전해 주는 시라는 생각으로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다. 또한 관련된 기록을 보니 결국 법정스님을 설득 끝에 ‘대원각’을 사찰로 재건축하여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할 때, 김영한은 인사말을 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한다. 즉 자신이 시주한 “1,000억에 달하는 돈도 그 사람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 하면서 백석을 언급하였고, 누군가가 “언제 백석이 가장 생각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따로 때가 어디 있나.”라는 발언을 함으로써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날 필자는 길상사를 잠시 둘러보는 중에 김영한님의 사당 문이 열려있었고, 누군가가 그린, 이 분의 곱고 아름답게 그려진 영정(影幀)을 먼발치에서 나마 처음으로 볼 수 있었는데,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리고 백석 시비에 새긴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다시 읽어 보았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1938)” 전문
실제 백석(白石)은 당시 이 시의 이미지처럼 가난하고 의기소침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 시의 주체와 백석의 처지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의 내용으로 본다면 시 속의 “나”에 대해서는 애잔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즉 가난하고 무력한(그러나 실제적인 의미로는 현실의 벽에 갇혀 있어, 그것을 극복하기에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시인이 아름다운 여인 “나타샤”를 사랑하면서 그리워하며 괴로워하는 중인데 때마침 눈까지 내린다. 이때 “눈(雪)”은 이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시인)”를 위로하듯 내리는 상징이면서, 현실의 ‘나타샤’와의 거리를 더 가로막는 방해(장애)물로서의 은유적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시인은 괴롭고 힘든 현실로부터 자연스럽게 더욱 멀어지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게 되면서도 스스로의 심정은 반대로 더욱 고무되는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인은 자기와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자기위로가 되고, 자기 동화가 발생하게 되어 불가능하고 절망적인 세속의 세상으로부터 떠나 현실과 동떨어진, “출출이(뱁새)”가 우는 깊은 산골로 들어가 “마가리(오막살이)”라도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당연히 나타샤는 자기의 뜻을 따라 함께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시인은 지금 고독하게 “나타샤”를 그리워하며 내면에서 사랑을 구하는 중인데, 눈까지 내리게 되니 더욱 사무치는 마음에 빠지게 되는 시인은 차라리 나 홀로 방해받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건사할 수 있는 심정으로 이런 현실을 떠나 산골 오막살이로 가야겠다는 인식에 이르는 것이다. 곧 ‘눈’은 현실에서의 장애가 되는 상징으로 작용하면서도 역(逆)으로는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지키겠다는 동기를 자극하는 또 다른 은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리 마음먹는 것은 내(시인)가 세상에 져서가 아닌, 사랑이 이뤄지는 것을 막는 더러운 세상을 내가 스스로 버리고 싶은 것이며, 이때 순백(純白)의 눈은 그가 바라는 깨끗한 세상으로 탈바꿈 시켜주거나, 더러운 세상을 감출 수도 있기에 이러한 은유적 표현을 통해 자기(시인)가 갈구하는 내적인 바람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다음과 같이 자기의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현실의 장애와 상관없이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변할 수 없고 나의 사랑이 순수하게 지속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사랑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려는 것이다. 물론 이때 “흰 당나귀”는 비현실의 메신저messenger로서 시인에게는 이상(理想)의 구원자이면서 응원자로서 용기를 심어주는 상징적 은유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런 ‘흰 당나귀’는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귀하고 특별한 힘을 가진 표상(表象)으로서 세상의(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의탁(依託)을 내포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염원은 나를 사랑하는 나타샤 역시 동일할 것이며, 우리(시인과 나타샤)의 아름다운 사랑은 이제 현실의 어떤 조건과 장애에도 상관없는 순수한 세계로 가서 완성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 시는 1936년에 첫 시집 <사슴>을 발간한 이후, 1938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현실을 초월하여 실제로는 어려움이 있는 사랑에 대한 염원과 소망을 이상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나타샤”라는 외국인을 연상시키는 이름은 특정한 누군가를 지칭하기도 하고, 아니면 대표성을 띈 누군가 모두를 포괄하는 일반적인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시에 등장하는 “출출이”, “마가리” 등 토속적인 사투리에 해당하는 시어를 포함하여, 대체로 서정적이면서도 이국적 정취가 느껴지는데, 현실 도피적이며 속세를 이탈하려는 자연주의적인 유랑의식이 담겨있다. 그리고 “흰 당나귀”라는 특별한 대상을 선택함으로써 서구적인 뉘앙스의 모더니즘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는데, “흰 당나귀”는 아마 백석이 외국문학작품을 수시로 접하는 번역문학작가인 점을 고려할 때, 외국작가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이미지를 연상하려는 선택적인 시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석과 그의 시는 “월북 작가”라는 낙인으로 인하여 한동안 잊혀 지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문학적 대상이었으나, 다행히 백석은 과거 사회주의 문학이나 프로레탈리아 시를 추구한 작가가 아니었고, 또한 실제로 월북한 작가도 아니었으며, 다만 고향인 평북이나 함흥 등에서 거주하기도 했으나 조선일보 기자로 일할 때에는 서울 등에서 지내다가 해방이후 만주에 이주하여 경제활동을 하던 중 나라가 분단되면서 북쪽에 발이 묶인 상태로 북한에 살게 된 사연이 있는 작가였기에 이런 부분들이 인정 되었고, 마침내 월북 문인의 해방 이전 작품에 대한 공식 해금 조치가 이루어진 1988년부터(노태우 정부시절)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백석은 “토속적인 한국어로 민중들의 삶을 노래한 뛰어난 시인으로, 지금도 많은 시인들이 인정하고 존경하는 명실상부한 현대시 최고의 절창(絶唱)”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시인 윤동주가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윤동주의 시에는 백석에게 영향을 받은 시가 많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의 경우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농무(農舞)”를 쓴 신경림 시인도 자기가 쓴 글에서, “중학생 시절 우연히 백석의 시들을 보고 난 후, 단박에 백석이 좋아졌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시를 좋아하게 된 것도 실은 백석 시인으로 인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후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올라왔을 때, 백석의 첫 시집 <사슴>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결국은 어렵사리 손에 쥐게 된 후 “아직도 <사슴>을 처음 읽던 흥분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백석은 1912년 평북 정주시에서 태어나 조만식 선생이 교장으로 있던 시절 “오산고보”를 졸업하였고,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아오야마 가쿠인(靑山學院)대학”을 졸업한 후 잠시 조선일보 기자 생활을 하였다가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영생여고보” 영어교사로 일하기도 하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자야”와 백석이 만나 연인관계가 되었다면 바로 이 시절에 해당할 것이다. “자야”는 자기가 쓴 에세이집 <내 사랑 백석>(1995)에서 백석과의 러브스토리를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기생이었던 “김자야”는 1935년 조선어학회 회원이던 해관 신윤국(신현보) 선생의 후원으로 일본에 가서 주경야독으로 학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는데, 해관 선생이 투옥되자 서둘러 귀국하여 선생이 투옥된 함경남도 함흥 땅으로 가 선생을 면회하고자 하였지만, 면회가 허락되지 않자 그곳에 주저앉게 되었고, 1936년에 은인인 해관 선생을 만나기 위해 '다시 기생이 되어 큰 연회 같은 곳에 나가 함흥 법조계의 유력한 인사들을 만나서 해관 선생님의 특별 면회를 신청할 수 있으리라'는 절박한 믿음으로 함흥 권번(券番, 일제 강점기 기생들의 조합; 필자 주)에 들어갔다는 것이고, 그러던 차에 1936년 가을, 함흥에서 가장 큰 요릿집인 함흥관으로 나갔던 첫날, 김자야(당시 20세)는 시인 백석(당시 24세)과 기생과 손님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으며, 당시 함흥 “영생여고보” 교사였던 백석이 자기 옆에 와서 앉으라 했고, 자리가 끝나고 헤어질 무렵 "오늘부터 당신은 내 마누라요."라 말했다고 자신이 쓴 에세이집 <내 사랑 백석>에서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에세이집은 백석 연구자인 ‘이동순’ 시인(대학교수)이 권유해서 쓰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 대중들은 이러한 스토리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화제로 삼았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와 동명의 뮤지컬이 제작되어 공연되기도 하였으나, 백석 연구자들이나 주변인들은 “김자야”의 주장에 대해 신빙성을 인정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일방적인 주장이라면서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백석은 여성들을 대할 때 명문학교출신이나 교육을 받은 신여성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비교적 까다롭게 선택적으로 만나고자 하였다는 증언 등을 통해 그럴 리가 없다는 반응인 것이다.
다만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질 뿐 아니라, 이후 “자야”가 함흥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을 무렵, 백석도 영생여고보 교사를 그만 두고 다시 서울로 와 조선일보에 재입사를 하면서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하게 해주고 있다.
이에 대하여 신경림 시인도, 백석이 김영한에게 이태백의 시에 나오는 내용의 글귀 중에서 딴 “자야(子夜)”라는 호를 지어 주었으며, 김자야는 “당신(백석)은 학교 일과가 끝나기 무섭게 나의 하숙으로 달려왔다.”는 이야기와 함께 “함흥에서의 로맨스를 털어 놓았다.”고 적고 있다. 또한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그녀(김자야)”에게 바쳐진 것이라는 김영한의 고백을 인용하고 있다.
백석은 1996년 향년(享年) 84세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백석은 모두 4번 결혼하였다. 2번의 결혼은 아내들과 각각 불과 2년여의 결혼 생활 후 사별(死別)하였고, 3번째 부인은 이혼하였으며, 4번째 부인과는 해로(偕老)하였는데, 북한에서의 생활이 평탄치는 않았다.
백석과 김자야의 로맨스Romance 이야기는 호기심과 함께 관심을 가질 만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가슴 아픈 사연에 해당할 것이다. 김자야의 주장을 확인할 수 없으며 일방적이라고 매도하기도 어렵다. 또한 누군가의 입장에서 편들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거나 소홀히 받아들이려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누구에게나 알려지지 않고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쓸쓸한 이야기는 있는 것이다.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쓴 1938년, 추론 컨데 백석은 첫 번째 부인과 사별한 상태였고, 이 무렵 두 번째 결혼을 한 시기인 것으로 보아, 백석의 고민이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다. 사회적 통념으로 보아 기생을 아내로 맞이하는 일은 매우 곤란한 일이었을 것인데, 다만 이런 사회적 신분(?) 격차를 초월하여 순수하게 서로 사랑하는 감정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시인이어도 젊은 남성에게 미래에 대한 준비나 조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 그리고 백석이 유난히 학교출신이나 교육을 받은 신여성을 선호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런 현실적인 판단 속에서 더 이상의 관계를 지속하거나 발전하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현실 도피의 의식이란 최소한 “자야”에 대한 그의 가슴 아픈 고민과 인간적인 갈등에 대한 표식일 것이며, 그러나 현실을 과감히 도피할 수 없었던 백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1938년) 이화전문학교 출신 “장정옥”과 재혼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물론 이는 순전히 필자의 일방적인 추론이므로 의미있는 서술로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자야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피하지 않고 잘 견디면서 주어진 운명을 살았다. 백석은 불행했던 식민지 시대에도 “모던보이”(물론 영화속 가공의 이미지로 포장한 것이지만)로, 또한 184cm의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외모, 그리고 시인이며, 소설가이고, 영어, 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등 외국어에 능통한 외국문학 번역작가로서 문학적 업적을 남기고 살아갔지만, 그의 마음 한쪽에 혹시라도 담겨있었을 쓸쓸함, 미안함, 죄의식 등 또 다른 판단의 여지가 포함된 생애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의 삶을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따져볼 만한 의미로운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미 실체는 사라지고 뒷이야기만 남을 뿐인 것이다. 세상은 “하늘과 땅이 있고, 멀리서 보면 이 땅의 모든 것은 검고(멀리서 보면 뚜렷이 색깔을 구분할 수 없이 그저 모든 것이 검게 보인다는 뜻이다; 필자 주) 누른 것”이다. 따라서 “김자야” 할머니의 개인의 삶과 백석과의 사랑도 굳이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시비(是非)조로 따져보며 진위(眞僞)를 구별하려하기 보다는 그저 아우르면서 아름답고 안타까운 이야기의 하나인 것에 주목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강화석)
https://www.abcn.kr/news/articleView.html?idxno=86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