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시인의 시, 「歸天(귀천)」
후일(後日), 나의(혹은 우리의) 귀천은 어떠할까?
오래 전 인사동 한 복판 어느 골목길에 <歸天(귀천)>이라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다양한 차(茶)를 골라 마시는 곳이면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주점(酒店)이기도 했는데, 작은 공간이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글을 쓰는 작가들을 비롯, 예술가들이, 그리고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 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거나 사람들과 환담(歡談)을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나의 기억이 그러하다.
그곳에서 가끔 천상병 시인을 보곤 하였다. 주점 <귀천>은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 운영하는 사업장이었고, 주로 취(醉)해 있는 듯이 보이는 천 시인은 그이의 남편이었다. 그리고 <귀천>이라는 카페이름은 천상병 시인의 대표작이라 할 시 「귀천」에서 따온 것이었다. 내가 인사동에 가게 되면 가끔씩 들르곤 하던 그곳은 세련된 공간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나름 운치가 있고, 어떤 특별한 정서가 집안 분위기를 감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귀천>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다. 그때가 정확히 언제쯤인지는 모르는 데,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뒤는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남편 천 시인이 돌아가시고, 홀로 된 부인이 한동안 운영을 계속하다가 가게를 정리할 사정이 생겼을 것이다.
천상병 시인이 지은 여러 시편(詩篇)중에 많은 사람들은 「귀천」이라는 시를 우선해서 떠올릴 것이다. 천 시인의 시들이 그야말로 꾸밈없고 그래서 맑고 순수하면서도 잔잔히 또는 깊숙이 파고드는 통찰을 담고 있는데, 「귀천」은 이런 그의 시 세계를 대표할 만하게 놀라운 감흥과 진솔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귀 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歸天)」전문, 『창작과 비평(1970)』
인간은 이 세상에 와 살다가 언젠가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오래된 인식이다. 그래서 이 세상, 저 세상 하며 세계를 구분하고 죽음을 맞으면, 저 세상은 원래 이곳으로 오기 전 살았던 곳으로서, 이 세상에서 죽게 되면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그 곳이며, 곧 이런 인식에서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천상병 시인은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시 「귀천(歸天)」을 통하여, 자신에게 닥칠 이 세상과의 이별을 미리 정리하여 놓은 셈인데, 한편으로는 기구(岐嶇)한 자신의 삶에 대한 초월적(超越的) 정서가 깊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시는 1970년 6월『창작과 비평』에 발표되었다. 이미 알려진 지난날의 일이지만, 1967년 천 시인은 ‘동백림(東伯林,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되어 고초(苦楚)를 겪었었다. 이에 대해서 천 시인은 세세한 내용을 스스로 밝히기를 꺼려하였지만, 어이없는 이유로 휘말린 것이었고, 그에 따른 고통과 후유증 때문에 힘들어 했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귀천」이 쓰여 지고 발표된 시기가 그 사건으로부터 멀지 않은 때였고, 곧 상관이 없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도 한다. 이 시는 이승에서의 삶을 편안하고 경쾌하게 “소풍”처럼 생각하면서도, “죽음”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반복법을 사용하면서 까지 노래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천 시인의 삶에 대한 달관(達觀)한 인식과 태도를 드러내는 고차원의 생명관이기도 하겠지만, 일반인식으로 본다면 섬뜩한(?) 발상이기도 한 것이다.
비록 천상병 시인이 그동안 보여준 종잡을 수 없는 언행(言行)으로 해서 “기인(奇人)”이라는 평을 들을지언정, 문학평론가 김우창 교수가 천 시인에 대해서 “우리 시대 최후의 서정시인”이라고 하였던 것처럼, 그의 시들은 대부분 순수한 시라고 할 만하였다. 그런데, 「귀천」이라는 시는 언뜻 보면 편안하면서 순수한 인식으로 받아들일 만하다고 여기면서도, 그 이면(裏面)에 깔려있는 낙심하고 지친 가운데 삶에의 욕구를 잃은 심정에의 반작용인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시어들이 쉽고 평이하므로 그 전달력에 복잡함을 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원천적으로 차단(遮斷)하고 있지만, 단호하고 강력하게 자신의 결기를 부각하면서 태연히 언술(言術)을 표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 시의 주(主) 메시지는 속세(俗世)로 소풍을 와 있는 상태이지만 머잖아 다시 하늘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 다만 짧은 이 세상으로의 소풍이지만 “아름다웠다”는 것을 밝히고 있기에 그의 소풍에 대한 소회(素懷)가 그나마 다행이라 할지라도, “하늘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강조하는 그의 속셈에 대해서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석연치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 시를 읽게 되면 마치 “사세구(辭世句)”를 연상하게 되기도 한다. 즉 스스로 ‘죽음을 앞두고 세상에 대하여 작별을 고하는’듯하다는 인상을 갖게 하는 것이다. “사세구”가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여겨진다면, 다른 말로 “유언(遺言)”이나, 또는 시 작품이므로 “임종시(臨終詩)”에 해당할 만한 것이다. 물론 천상병 시인은 이 시를 발표한 후 비교적 많은 시간이 흐른 1993년에 별세하였으니, 실제로 이런 유추에는 적절하지 않았지만, 그 당시 이 시를 읽은 독자들의 반응에는 그저 즐겨 읽고 말기에는 염려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해(1970년) 겨울, 천 시인이 갑자기 종적을 감추어 근 1년여 동안 행방불명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가족들이나 지인들 그리고 문학계에서는 그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정사실화 하고 그를 추모하는 유고 시집을 발행하기도 하였었다(1971년, 천상병 유고시집 『새』).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한 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세상과 격리되어 있었던 것이 알려졌고, 다시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 일이 있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런 해프닝으로 인하여 「귀천」은 그런 오해를 받을 만 하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천」을 읽다보면 분명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거나, 속세에서의 삶에 대한 그의 인식을 읽을 수 있을 만치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라는 첫 연의 첫 행은 3연으로 된 시에서 매 연마다 첫 행에서 반복하여 노래하고 있으니, 그가 “이 세상”을 떠나 “하늘”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에, 그저 단순하게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평생을 살다가 “언젠가”이 세상을 떠나는 당연하고 자연스런 생애에 대한 자기의 회포(懷抱)를 정리하려는 시라기 보다는 분명 어떤 계기와 이유가 있기에 머잖은 시기에 이르러 그런 일을 감행(?)하려 한다는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듯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누구에게든 “죽음”을 연상하게 할 “나 하늘로 돌아간다.”라는 의중(意中)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면서 현재의 삶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뉘앙스nuance를 풍기며 이승에서의 삶이란 새벽녘의 이슬이나 해질 무렵 바라볼 수 있는 산기슭의 노을로 비유하면서 잠시 소풍을 다니러 온 것으로 대유(代喩)하고 있다. 새벽녘의 이슬은 영롱한 빛을 띠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줄망정 햇빛이 나는 순간 사라지고 말 뿐이며, 산기슭에 걸린 노을 또한 순식간에 산 너머로 숨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유독 짧기만 한 새벽녘의 이슬과 저물녘의 노을을 통하여 이 땅에서의 삶을 짧은 소풍에 비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소풍이므로 오히려 미련을 두거나 연연할 만 한 것이 아니라는 투로 홀가분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은 아름다웠으며, 따라서 아름다운 소풍이었다는 것을 그곳에 가서 말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상병 시인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결코 아름답기만 한 삶을 살다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땅에서 63년을 살다가면서 전술(前術)한 대로 남들은 쉽게 겪지 못할 여러 곡절들을 경험하면서 제 마음껏 살다간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은 아련해 진다. 자신과 무관한 일로 불행한 옥고를 치르고,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하였고, 자신이 바라던 대로 자유롭게 살다간 것도 아니었다. 살아있으면서 발행했던 유고(遺稿)시집의 이름이 『새』였는데, 유독 천상병 시인은 「새」를 제목으로 쓴 시가 10여 편에 달할 정도로 “새”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무래도 새의 자유로운 비상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천상병 시인은 1972년 친한 친구의 여동생인 목순옥님과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아내의 덕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시를 쓰는 삶을 살게 되었지만, 돌이켜 보면 많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진작부터 문재(文才)가 드러나게 되니 젊은 나이에 시인이 되고 문학 평론가가 되었으며, 문학에 전념코자 졸업을 앞둔 시점에 다니고 있던 대학을 중퇴까지 하였지만, 그는 서울대 상대를 다니던 재원이었다. 사람들은“별나게 제멋대로”세상을 살아간다고 천상병에 대해 말하였지만, 그에게 닥친 우연한 일은 삶의 방향과 모습을 크게 바꾸어 놓은 셈이 되었다. 자신만만(?)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의 이치와 삶에서 터득한 사회적 정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곤 하였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겪은 불미스런 일로 인하여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상태로 지내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종잡을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을 가진 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삶이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며, 우연찮은 일로 인하여 전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만드는 것인가 싶다. 삶에서 아직 ‘가지 않은 길’이란 그 길 앞에 서있으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할 것이며,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미래의 일은 예측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시 「가지 않은 길」은 인생의 선택적인 측면을 말하고 있지만, 때론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도 선택이 갈릴 수도 있는 것이듯이 인생이란 간단하지가 않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인생의 앞길을 예상하기도 어렵거니와 한 길로 죽 뻗은 길도 없는 것이니, 마치 숨어있다 나타나듯 어딘 가에 갈림길이 있고, 어떤 식이든 선택해야 하는데, 그 선택은 누구도 예외가 없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본인의 의지도 아니었지만, 그에 관한 호소를 들어줄 이도 마땅찮고 무용(無用)하며 안타까운 일이었을 뿐일 테지만, 천상병은 스스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살았다.
그가 꿈꾸었을 삶은 어떠하였을까? 가보지 않았고, 가볼 수도 없었지만 청년 천상병이 꿈꾸었을 그 삶이 애처롭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는 아름답고 착한 아내가 동반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이해심 있었고 연민이 있었으며 계산적이지 않고 순수했던, 오빠의 친구인 천상병을 이해하고 보살피고,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기를 우선하였던, 천상, 천사와 같았던 색시, 목순옥(님). 아내 덕으로 천상병의 삶은 그나마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잃은 것도 있었지만 반대로 얻은 것도 있었던 천상병의 삶이 균형 잡히도록 추(錘)를 달아준 묘한 인생.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총명하고 바른 천상병을 조금은 다른 이로 만들어 놓은 세상의 억압과 죄악들은 언젠가 바로 잡히게 되어 있는 이치에 맡겨놓을 일이며, 한편 천상병은 덕분에 막걸리를 즐기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천상병은 혹시 남아있을 분노와 울분을 막걸리로 씻어내면서 틈틈이 시 쓰기를 계속하였을 것이다. 그의 깊은 심성이 그를 정돈시키며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였던 바, 그가 겪은 끔찍하고 참혹한 시련이 시를 통해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득도(得道)한 사람의 그것처럼 승화되고 터득한 이치에 닿는 글들이 생산되었다. 그의 여러 시편 중에 수작(秀作)으로 꼽을 수 있는 「歸天(귀천)」은 이런 가운데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예쁜 부인이 운영하는 주점 <歸天(귀천)>에 나와 아내가 건네는 막걸리 몇 잔에, 혹 취기에 주정을 부리 듯 하여도 손님들조차 인상 찌푸리는 일이 없고, 아내의 이해심 가득 담긴 투정을 즐기듯 자신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그는 깊은 성찰과 생의 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것을 놓치지 않고 시(詩)로 완성하여 놓았다. 그리고 예고라도 하듯 신이 허락한 삶을 다 살아낸 후 사랑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떠나 그가 온 곳으로 돌아가는 순환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때를 누리고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 누가 그를 막걸리 몇 잔에 취기(醉氣)를 표하는 사람으로 보았겠는가. 한 많고 유감어린 생애에 대해 직설이 아니고 춤을 추듯 돌아가며 그 언중(言中)에 숨은 미학을 찾아내며, 원래 삶이란 왜곡 속에서도 신의 뜻이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읽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천상병은 이렇게 사람들과 사람속의 삶의 원리를 탐구하며 자신을 억압하고 핍박한 세상을 떠나지 않으며 세상을 지키며 살았다.
결국 “귀천”은 누구나에게 공통적으로 가야 하는 과정인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그것을 따르고 터득하는 삶을 살며, 누군들 차이 있고, 누군들 특별할 것 없는 삶의 뜻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 소풍(消風) 왔다가 끝내면 결국 가야할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인생에 대해“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나쁜 일도 있었다고”(시 「새」의 마지막 연 중에서)돌아보면서도, 이 세상을 떠난 뒤에 저 세상으로 돌아가 자신이 살았던 삶을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려고 한다. 돌아보니 과연 그러할까? 속도 좋으시니 그렇게 말한다 하는 것일까? 남들은 알 수 없는 깊은 깨달음과 터득 덕에 그럴 수 있게 된 것일까?
신께서 바라본다면 흐뭇해 할 착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천상병은 그래서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의 마음과 눈을 가진 이”라고 말하는 시인(신경림)도 있었다.
지난 해 가을, 지인들과 인사동의 어느 식당에선가 식사를 하고 난 후, 장소를 옮겨 차를 한잔 하게 되었는데, 그 집이 곧 “귀천”이었다. 전보다 더 넓어지고, 깨끗하고 밝고, 위치도 골목길이지만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넓은 길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집의 메뉴판(menu板)이나 실내의 장식(裝飾)들은 오로지 천상병 시인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다시 환생한 듯 멀쩡히 사람들을 불러 모아 활기를 띠는 장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이미 주인공 두 분은 이 세상에 안 계신 것이 분명하니, 필경(畢竟) 다른 누군가가 운영하는 곳인데, 알고 보니 그 분들의 조카라고 한다. 잠시 대화를 나눠보니 목 여사의 친정조카였는데, 그 장소가, <귀천>이라는 옥호(屋號)를 달고 버젓이 예전 그곳(원래의 그 장소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손 떼가 묻고 익숙한 동네, 인사동의 그 어느 곳)에 살아 있으니 반갑고 좋았다. 기억 속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데, 이리 현존(現存)하고 있으니, 상상과 실체의 차이만큼이나 확실한 즐거움이 살아난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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