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죽음과 다시 떠올려 보는 기형도의 시(詩)
죽음, 죽음이란 무엇인가?
지난 주 자주 어울려 지내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더욱 기막힌 것은 친구들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 원인도 모른 채 세상과 갑작스레 이별했다는 것인데, 전혀 뜻밖의 상황에서 겪게 된 이런 일은 그 어떤 죽음보다도 더 충격적일 수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경우와도 다르게, 이런 헤어짐은 오히려 평소와 다른 생각에 빠지게 하니 마음속에 이는 심사가 예사로울 수 없었다. 이렇게 지난 몇 년에 걸쳐 가까운 친구들이 세상을 떠나는 일을 겪었다. 이 세상에 와 살다가 언젠가 떠나는 일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자연스런 과정의 하나라고 해도 인간의 감정에 드는 반응이 그저 냉정하고 이성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냉철한 철학적 주제로서의 담론을 떠올린다는 것조차 당장에는 적절할 수 없다는 생각이 우선하는 데, 이는 죽음이라는 본질에 치우치거나, 아니면 관념에 충실하며 드러나는 현상 그대로를 생각하면서 의연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를 논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사람의 자연스런 정서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아무튼 이렇게 지근(至近)거리에서 함께 어울려 살던 이 땅의 사람들과 또 다시 죽음이라는 이별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겨진 우리는 남은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다시 마음의 평정을 찾아가면서 놓여있는 삶의 길 위에 서 있어야 할 것이다.
오래전 서른 살도 채 되지 않았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기형도(1960~1989) 시인이 떠오른다. 그에 대해서는 그저 지면(紙面)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이고, 굳이 관계를 따지려 한다면 아는 사이인 중학교 동창생의 대학문학회 후배였을 뿐이지만, 당시에 그의 재능과 시에 담긴 시인의 내적인 고뇌를 깊이 받아들이며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랐던 시인이었다.
물론 기형도의 죽음은 지금 친구의 죽음과는 상황과 분위기에서 전혀 무관하므로 이렇게 연상하거나 연관하려는 것에는 의도가 있을 수는 없다. 그저 친구의 죽음 앞에서 나는 「셸리 케이건」이 말하려는 “죽음”과 「기형도」의 “죽음”을 우연하게 떠올린 것이며, 나는 이런 생각의 구속에 처하게 된 채로 잠시의 시간을 보내려 하는 것뿐이니, 그 이외의 설명이 필요할 것은 없으리라. 단지 모두의 죽음은 그대로 죽음이라는 본질과 더불어 죽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생각들에 한동안 빠져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벗어나게 될 만큼의 시간적 과정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해 볼 뿐이다. 그리고 비록 케이건 교수의 “죽음론”이 명확한 답을 주고 있는 것도 아니고, 또는 터득의 수준과 무관하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부분들에 다가가 보려는 것으로 위로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편 젊은 시인의 짧은 삶 동안에 모질고 끈질기게 죽음을 떠올리면서 그에 무관하지 않은 사유에 빠져 있었던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니, 죽음에 대한 애절한 태도 또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면서 “누가 죽어가나 보다./차마 다 감을 수 없는 눈/반만 뜬 채/이 저녁/누가 죽어가나 보다.//(김춘수 「가을저녁의 시」 , 첫연)” 라고 김춘수 시인은 자기 속에 내재한 풍부한 관념을 순수와 객관을 지향하면서 죽음을 바라보기도 하였지만, 기형도는 끈질기게 죽음의 본질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가 결국 스스로 죽음을 맞았던 경우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름의 깊은 시름에 잠기게 된다.
나는 잠시 그를 떠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기형도 시인의 시를 다시 읽어보았다.
문학 평론가 김현 교수는 기형도의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을 펴내며 책의 말미(末尾)에 실은 비평에서 다음과 같이 쓰며 안타까워하였다. “좋은 시인은 그의 개인적, 내적 상처를 반성, 분석하여 그것에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문학비평가로서의 의견이면서, 동시대의 문학인으로서 시인의 비극적 생애에 대한 깊은 슬픔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에서 상징하거나 암시한 내용, 그리고 결국 그의 짧은 생애에 대한 자기의 소회를 압축한 말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촉망받기에 충분한 재능있는 시인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안타깝고 아쉬운 그의 내적 고백인 셈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뛰어난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고 그것을 증거 하는 시들을 발표하고 있던 기형도는 발표한 시들을 통해 수시로 세상의 사물들에 대한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을 쏟아내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그를 제대로 알아차리게 되고, 그 시들이 이미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라고나 할까. 그가 가진 슬픈 가족사와 자신이 겪은 불우한 형편과 경험들을 솔직하고 집요하게 표현해 내는 것이 한편으로 그것을 극복하거나 승화할 시도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아가 더욱 강렬한 삶에 대한 의지의 역행적인 표출일 수도 있었는데, 기형도는 그 자체를 직진하듯이 매달리며 피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관찰과 인식에 매달린 듯 하였으면서도, 본인 스스로가 그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기형도, <비가.2 – 붉은 달>
라고 외치는 이 바람은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 한편으론 강한 긍정의 의지와 염원을 담은 듯도 한데, 오히려 왜 이런 외침을 하였는지에 대한 알 수 없는 의문을 갖게 한다. 나아가,
(전략)
다음 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이후 나는
폭풍의 밤마다 언덕에 오르는 일을 그만두었다. 무수한 변증의 비명을
지르는 풀잎을 사납게 베어 넘어뜨리며 이제는 내가 떠날 차례였다.
기형도, <폭풍의 언덕> 마지막 연
이 시를 보니 대 놓고 자신의 뜻을 밝히며 과감히 내면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누군들 이의 진의(眞意)를 바로 알기에는 기가 막힌 반전이라고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기형도가 『빈집』이란 시를 발표한 시기가 1989년 봄이었다. 바로 그 무렵 기형도는 세상을 떠났다.
(전략)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하략)
기형도, <빈집> 가운데 연
이 시가 발표되는 순간에 누군가는 그의 멀지 않은 미래를 짐작할 수 있었을까? 마치 더 이상 그 어떤 열망조차 안녕을 고하며 떠날 채비하는 자의 정리(定離)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이 애절한 시를 보면서, 또 누구는 불안감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재능이 많았던, 그리고 열정적으로 글에 매달리던, 글에 매달리는 만큼이나 주변 사람들을 사랑했던 한 젊은 시인은 마음속에서 스스로를 정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절절해 진다.
산다는 것이 사람마다의 틀과 그와 관련된 사연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라면, 기형도의 삶도 그만의 이야기와 구조 속에서 얽기 설기 어떤 모양으로든 펼쳐져야 마땅했는데, 그는 더 이상 이야기를 중단하고 그의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었던 글쓰기로부터 손을 놓게 되고야 말았다. 그를 살리는 길이었을 시와 산문은 그의 생에 대한 비중에 있어 대체할 일은 아니었던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의 사랑은 원천적이고 근원적이었던 것이었기에, 그리고 그 사랑의 아픔으로 얼룩진 그의 생애의 원천에 대한 씻거나 회복할 수 없었을 절망감의 계기가 있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처럼, “빈 집”의 마지막 연에서 드러나 듯, 그가 잃은 사랑이란 누구로부터의, 또는 그 대상으로의 것이었겠으나 결국은 짧았던 세월의 아늑했을 그들의 밤을 기억 속에나 두고 떠나려는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 내면의 온갖 생각들을 쏟아 표현하였던, 그래서 희망이 되고 존재의 가능성을 부각시킬 수 있었던 흰 종이들을 놔두고, 또 그에게 사랑을 유지하고 그를 지킬 수 있는 그 나마의 집과, 그 집을 채우고 있는 어둠을 밝히는 전등도 아닌 촛불(그 촛불은 불안하기는 했지만 사랑을 한 곳으로 모아주는 밤이기에, 그래서 따뜻하고 의미 있었으나) -그 촛불은 그런 의미까지를 포함하는지는 몰랐을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그 ‘집’을 둘러싸고 있던 집 밖의 희부연 안개, 추운 겨울이면 더 짙어지는 그 안개(애증의 실체일 수 있는, 그러나 사랑의 반대는 아니라 할 수 있는)는 자신과 함께 했기에 잊지 못하는 대상이다.
결국 기형도는 자신에 관계되었던 것들로부터 떠나고자 고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더욱이 자신이 안고 있는 무게를 덜어내는 역할을 하였던 말과 시를 담아내던 종이는 곧 더 이상 대체역이 되지 못한다는 고백이 되는 것이니, 그의 괴로움과 슬픔은 명확히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정하는 과정에서, 그의 주저함은 왜 없었을까? 그는 서러움이라 할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결국, 그는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모두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행위로써 자신만의 사랑 그 자체이며 그 사랑을 담아두고 확인하였던 집을 모두로부터 닫고, 영원히 세상으로부터 영향 받지 않도록 스스로 가두고 만 것이다.
이런 처절한 마지막 고별의 암시가 있을 수 있는가? 누구도 예사로이 읽고 지나칠 수 없었을 이 시를 발표하고, 많은 독자는 이를 읽었지만, 이런 냉정하고 단정적으로 세상과의 소통이 중단되는 순간까지 세상의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하면서도 세상과 단절을 선택한(?) 것은 그의, 시인으로서의 예의와 함께 절연(絶緣)의 정신을 보이려는 뜻이라 부연할 뿐이다.
기형도의 여러 시편(詩篇)들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시인의 괴로움과 부정적인 암시는 매우 일관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유년과 청소년, 청년기를 거치며 성장하는 중에 자신과 세상의 것들에 대한 탐구, 그 원리와 구조에 대한 이해의 과정으로 접어들었을 법도 하고 그래서 부정성은 긍정으로, 세상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나 극복으로 전환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기형도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고, 그대로 자신의 사고와 정신을 고집스레 밀고 갔다. 그러하니 기형도는 언제라도 순수가 지켜진 순백의 가슴을 가진 채, 곧게만 세상을 바라보려는 사람이었던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자신이 보고 있는 현실을 피하지 않고 곧이 곧 대로 바라보며, 이것의 실체와 핵심을 들여다 보려했을 것이며, 피하고 시선을 외면한다 해서 안 볼 수 있거나,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는 몸소 맞서며 그것들을 바라보고, 그로해서 생겨나는 온갖 감정의 반응들을 받아내고 삼키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따라서 그가 겪는 감정의 골격은 시간이 지난다 해서 달라지거나 잊히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현실은 전과 다를 바 없고, 이미 입은 상처는 지울 수도 없이 깊기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리에서의 상상력은 고통이고, 그 고통을 사랑했을지언정 자연에의 비유(比喩)마저 무책임하다고 여길 정도로 현실을 떠나거나 벗어날 수가 없었으며, 결국 가장 위대한 잠언(箴言)이 자연 속에 있음을 언제나 믿고 있었음에도 결코 현실이 아닌 자연 속으로 벗어나지는 않으려 했다.
대개의 시인이나 또는 보통의 사람들도 현실에서의 고통이나 번뇌를 해결하는 일을 현실에서 실현하거나, 도피의 방식으로 자연을 매개로 하였던 것과 비교한다면 기형도는 상처의 깊은 연원(淵源)은 결코 우회할 일이 아닌, 또 무엇으로도 매개할 일이 아닌 스스로에게 부여된 천형(天刑)이나 견뎌내야만 할 수렁속의 인내로 보았던 것은 아니었을 까 싶다. 즉 대신해야만 할 것 같은 사랑하는 가족들의 현실의 모습에 대해, 그들이 실제로 겪는 안타깝고 고통스런 것들에 대해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처절한 좌절이고 괴로움인 것을 무엇으로 대신하고 회복할 수 있었으랴.
미래에는 달라지고 지금을 벗어나면 다른 환경과, 바라는 것들이 오리라는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원천의 아픔을 어찌해야 하는 지에 매달리는, 그래서 순수의 영혼을 지켜내고 있었던 맑고 깨끗한 청년으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을 해 본다.
결국 서른 살이 된 기형도는 삶과 인생, 현실인식을 깊이 있고 통찰력 있게 들여다보고 알 수 있었던 천재적 작가였음에도 그가 바라고 지켜내고자 했던, 그러나 이미 훼손되어버린 자신과 자신의 분신들과도 같은 가족들을 회복하고 회생시킬 수가 없는 현실을 도무지 견뎌 내거나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가 선택하려는 죽음만이 그가 바라는 것을 대체할 만 하다고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볼 뿐이다.
그의 처음이며 유일한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에 수록된 시들은 무겁고 슬픈, 또는 위태하고도 염려스러운 암시가 도처에 담겨있고, 그러나 젊은 시인의 시 이기에는 그 생각의 범위가 넓고 깊은데, 오로지 특정의 대상을 향해있는 것도, 그의 생각의 방향과 그 뜻을 살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리게 하고 있다.
그의 재능으로, 그가 써야 할 시적 대상이 온 천지에 가득하거늘 그의 감성으로 포착하며 시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면, 지금까지도 그를 잊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독자들이 많은데,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그의 시에 반응하며 위안을 삼거나 정화할 수 있었을 까. 그를 기억할수록 가슴의 한 곳은 허전하고 쓰리다.
평론가 김현은 기형도의 시학에 대한 비판 중에 ‘현실적 역사에의 부재’를 언급한다. 즉 역사적 전망이 없으니 그의 시가 퇴폐적이라는 세간(世間)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은 이를 인정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기형도의 시세계는 “극단적인 세계관의 표현”이라고 보려 하면서, 그의 시들이 보여주는 ‘부정성’은 대부분의 시인들이 보여주는 것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기형도에게는 ‘망가진 꿈조차 꾸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개의 시인들은 ‘망가진 꿈이라도 꿈을 꾸는 자에게는 희망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데, 기형도는 그저 망가진 꿈은 그리움의 상태이거나, 쓰디 쓴 회상의 상태로 존재할 뿐이라는 것이다. 김현은 이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시인들이 “낙관적인 미래 전망의 흔적”으로 보여 준 것에 비하여, 기형도의 시에는 “그런 낙관적인 미래전망이 거의 없다”는 것을 들며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인간세상의 어려움과 사람의 고통이 어찌 타인의 눈과 마음으로 다 읽히고 이해 될 수 있을 까 싶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론 세상의 여지가 좀 더 있지는 않을 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상처를 담고 상처를 극복하게 되면 더 강해진 대응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속된 생각도 해볼 수 있지 않은가 하면서, 세상에 대한 마지막 인사를 전한 기형도의 시를 읽으며 다시 한 번 더 옛 시절의 그때를 더듬어 볼 뿐이다. 이런 것이 세상인심이다. 타인의 처절한 고통과 생각을 희석(稀釋)된 상태로 덤덤히 바라볼 뿐인 것이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중략)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기형도,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이미 마음의 결심을 했던 기형도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더 이상 찾지 말기”를 세상에 밝히면서 삶의 의미를 잃은 채, 그 어떤 탄식이나 희망조차 거두어들이고 있었던 것에 새삼 가슴을 메이게 한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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