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엿보기 24.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

by 강화석

사극(史劇)과 희극(喜劇)사이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진심어린 심성(心性)과 교환(交驩)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눈과 귀를 기울이며 관심 두는 일을 소홀이 하여도 도처에서 그 소식이 들려 왔다. 특히 언제나 즐거운 듯 유쾌한 태도로 여러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는 유명인사인 장항준 감독은 이전보다 더 자주 출현(出現)하고 있었기에 그와 그의 영화에 대한 소식을 모를 수가 없었다. 지난 2월 4일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가 45일 째인 3월 20일 오전에 1,400만 명을 돌파하였다는 기사를 보면서, 곧 바로 몇 시간 후 상영하는 영화표를 예매하였다.

포스터 쇼박스 제공.jpg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제공:쇼박스)


이미 조선 6대 왕 단종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은 다양한 기록을 비롯 각종 미디어를 통해 재창조된 콘텐츠들로 해서 진부해질 만큼 익숙해 있었던 데다가, 역사의 승자 운운하면서 인간의 근본이나 정의를 하찮게 밟아버리고 세상의 이치(理致)를 뒤엎으며, 부정한 방식으로 차지한 권세(權勢)와 훈구(勳舊)의 지위를 누리면서 역사에 악명을 떨친 무리들, 또 이후로도 그 후손들이 누린 영화(榮華)는 역겹다 못해 치욕스럽기에, 그리고 무력하게 당하고 만 약자들이 겪어낸 안타깝고 처절한 스토리텔링마저 굳이 관심을 기울이고 싶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이미 대중사회의 유행주기에서 “초기(early)”도 아닌, “후발(late) 다수층(majority)”이 되어버린 필자는 무관심한 척하면서도 매우 궁금해 하였음을 고백한다. 대중의 힘은 무겁고, 사회(소비사회)의 중심을 지탱하는 당사자들이므로 이들의 내면상태를 반영한 이런 지표(index)는 「왜 지금 “왕사남”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하는 현상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에, 뒤늦게 이 대열에 끼어드는 것일망정 이 징후syndrome가 보여주는 사회현상이나 그 속내를 느껴보거나 다가가 보려는 것은 자연스런 대응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또한 관객동원 1,400만 명 돌파라는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숫자이상의 상징성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역대 5위권에 해당할 뿐 아니라 4위나 3위와의 숫자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기에 더 높은 순위로 올라설 수도 있거니와 특히 오늘날에는 과거와 달리 멀티미디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가 공급되고 소비되고 있으므로 전통적인 방식인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과거와는 다르게 불리한 환경에 있기에 특별하다고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이런 대중들의 반응을 이끌어 낸 이 영화의 힘에 대하여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역대로 최다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영화들을 살펴보면,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명량”이 1761만명으로 1위이며, 2위는 “극한직업” 1626만 명, 웹툰(webtoon)을 영화화한 “신과 함께(죄와 벌)”가 1441만 명으로 3위, “국제시장”이 1425만 명으로 4위이므로 “왕사남”은 현재 5위이지만, 4위와는 25만 명 차이에 불과하므로 곧 추월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라는 예술작품에 대한 질적인 평가와 더불어 흥행성적표라 할 관객동원 숫자를 중심으로 세인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에는, 영화라는 예술장르는 작품성과 함께 상업적 성과마저 의미롭게 여길 정도로 대중사회에서의 관심과 평기기준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 내용의 기본 배경은 ‘계유정난(1453년)’으로 정권을 장악한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이홍위)을 상왕으로 밀어내고 왕 노릇을 하던 중에 단종을 폐위하고(1455년) 왕이 되어, 단종을 유배 보내고(1457년), 유배생활 120일 만에 결국 사사(賜死)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것이지만, 정권을 잡은 수양대군이나 배후 세력들은 중심 스토리에서 배제하면서, 이 일을 꾸미고 처리한 한명회를 잠시 등장시킬 뿐, 피해 당사자인 단종의 유배와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의 호장(戶長)인 엄흥도와 그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전개가 된다. 따라서 사극으로서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엄흥도와 유배지 마을에서의 에피소드는 역사기록으로는 고증이 불가한 허구를 바탕으로 새롭게 영화적 스토리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영화는 단종의 폐위와 복위과정 등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엄흥도를 중심으로 한 일반백성의 시선으로 단종과의 관계를 그리는 구성으로 전개하고 있다.

영화에서 엄흥도역을 맡은 유해진 배우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뿐 아니라 영화적 재미와 몰입에 크게 기여할 만치 혼신(渾身)의 연기력을 보여 준다. 극중의 엄흥도는 실존 인물이지만 인물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기록이 부재하므로 어떤 유형의 인물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아마 감독은 의도적으로 낮은 신분이거나, 어쩌면 밑바닥이라 할 민초(民草, 일반 백성)를 선택하여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즉 가장 최고의 권력에 있었던 임금과 하층민에 속하는 백성들 간의 인간적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염두에 두고자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의 엄흥도는 영월에서 호장(戶長)의 지위에 있었다. 호장이란 지방 향리(鄕吏)에 속하면서도 가장 우두머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중인의 신분으로 일반 백성들 보다는 높은 지위이므로 영화에서처럼 일반 백성들과 어울려 사냥을 하거나 삼가지 않는 말을 아무렇게나 주고받는 사이로 그려낸 모습은 적절한 고증이 안 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영화의 메시지로 볼 때에는 감독의 뜻으로 재해석한 인물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즉 역사의 고증에 따르기 보다는 유해진이 연기하는 엄흥도를 인간의 심성이나 감정의 기복에서 폭넓은 스펙트럼spectrum을 제공할 수 있는 캐릭터를 제시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이것은 기왕에 익숙하게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와 그에 따른 역사적 사실을 반복하기 보다는 영화미학을 추구하면서도 새로운 인물유형을 창조하기 위한 파격을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수백 년의 시대를 뛰어넘어도 수용 가능하면서 이 시대에 필요해 보이는, 사람사이의 교감이나 그에 따른 교환(交驩)을 통해 사람에게서 발견하고자 하는 진솔한 그리움이나 슬픔, 또는 연민의 감정을 한데 어우르는 “감성의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제공하려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 것일 것이다.

영화에서 단종은 이미 폐위되었기에 철저하게 “노산군”이라는 군호(君號)나 이름인 “이홍위”을 통해 지칭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따른 고증을 어느 정도는 지키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어떤 부분들은 세밀하지 못하거나 오류를 보여주는 장면들도 있다. 물론 이 영화가 정통사극이 아닐 뿐더러 사극이라 해도 역사 그대로를 재현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므로 크게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에서라면 일어날 수 없는 장면들이 포함되거나 실제를 왜곡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경 쓸 필요는 있을 것이다. 즉 오늘날의 창덕궁은 예전에는 ‘수강궁’이었다. 단종을 폐위하던 시기에 수양대군이 머무르던 궁궐이었는데, 따라서 수강궁은 건물이름이 아닌 궁궐 전체를 이르는 이름(宮號)이기에 영화 속에서 사육신들을 고문(拷問)하는 씬에 등장하는 건물현판의 “수강궁(壽康宮)”은 오류에 해당할 것이다. 또한 아무리 단종을 폐위하고 유배를 보내는 문제가 중차대할 지라도 영월을 유배지로 정하고 그곳의 특정 장소를 결정하기 위해 한명회가 사전에 영월까지 내려온다는 발상은 현실적으로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따지면 영화적 설정을 고려하는 그 무엇도 제약이 될 수 있기에 심각한 의도로 거론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고증을 고려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왕사남2.jpg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화면 일부(제공:쇼박스)


이 영화는 반인륜적이고 비극적인 역사와 관련된 무겁고 안타까운 스토리를 약간은 비틀어, 다른 시선이나 관점에서 단종폐위와 수양대군의 정권 찬탈에 관련된 스토리로 재구성하였다. 단종 복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여러 장면 삽입하여 긴장감이나 무게감을 실어가면서도 전반적으로는 사실보다는 허구(fiction)를 더 많이 차용한 스토리의 영화인데, 이것은 영화의 미학이나 콘텐츠의 확장을 위해서는 자연스런 시도에 해당한다. 슬프고 처절한 이야기에 인간적인 유감(有感)과 공감을 유발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유머와 인간애적인 심성을 드러내면서, 그리고 시대를 넘나드는 대중의 바탕에 깔려있는 근본에의 미덕을 재확인하려는 일은 언제라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자극요소라 할 것이다. 지금 시대에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스토리에 새삼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이런 정서에 대한 갈증이나, 아니면 결핍에의 보상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한다. 물론 서럽고 애절한 처지와 절망적인 운명을 맞고 있는 어린 임금을 대상으로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반응 중에 누군가는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것에 집중하는가 하면, 다른 누구는 그것을 막아내거나 극복할 만큼의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일지라도 같은 편이 되어 조금이라도 덜 외롭지 않게 하거나 위로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는 법이다. 세상의 선악(善惡)은 굳이 나뉠 수 있어도 공존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잊지 않는다면, 그때 그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흘러가 버렸지만, 새삼 지금에 다시 떠올리면서 그때에는 부족했고 다투지 못했으며 정리되지 못했던 감정과 속내들, 그것들을 나누려는 깊고 선한 심성들을 지금에야 다시 나누면서 그때를 돌이키며 미안해하고 불쌍히 여기면서 함께 어울려 위로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의 삶이 100년 안팍의 짧은 생애이지만 시대를 초월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인간의 기본이라 할 깊고 아름다운 정서에 해당하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이런 인간의 깊은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크고 무겁고 그래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이야기라기보다는, 못 가져서 가난하고, 스스로도 불쌍한 사람들이 어울려 누군가의 가슴 아픈 처지를 보듬고 그 아픔을 나누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조금은 마음의 짐이나 고단함을 덜어 내려했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 보이려 하였고, 이것에 세상 사람들이 공감하고 반응하는 중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중심스토리를 재구성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 파격을 시도하려 한 발상은 창의적이면서 의미 있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즉 사극에서 스토리의 주도권을 권력자나 기존의 역사적 인물로 부터 변방의 민초들로 중심을 이양(移讓)했다는 것은 기존 관점을 뛰어 넘거나 인식을 뒤흔드는 왜곡(?)까지도 불사하려 한 것으로서 새로운 인간관계나 인간형을 창조하려는 용기있는 결단이기도 한 것이다. 과거 신분사회에서는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평가나 대우를 받을 수 없었던 그들과 비록 폐위된 왕이라 할지라도 아끼고 사랑할 대상으로 가슴에 품고자 한 임금의 아량(雅量)과 이들을 지키려 위급한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와 품격, 이에 반응하여 평소에는 고개조차 들 수 없었을 임금과 한데 어울리면서 모두에게 즐겁고 평화로운 순간을 누리면서 신분을 넘어서거나, 신분에 맞는 본분을 서로 느끼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인간적인 관계를 보여주려 한 것은 비록 영화에서의 설정이라 해도 마음속 깊이 감동을 불어오는 놀라운 체험일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서사적 구성을 완성하기 위해 처음부터 기존 관념과 다르게 파격적으로 설정한 셈이었다. 나아가 서로의 입장이 다른 왕과 엄흥도의 상반된 기대와 갈등은 엄중한 역사적 사실과 절박한 민초들의 삶 사이에서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 대립적이다. 모든 것을 다 잃고 죽음을 목전에 둔 어린 왕에게 시골 사람들에게는 정성스럽고 맛난 식사라 할지라도 식욕을 당길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런 왕의 심정에 아랑곳없이 자신은 보수주인(保授主人)으로서 왕의 유배생활을 감시하고 보고해야 할 뿐더러 유배자가 잘 머물다 한양으로 귀환하게 된다면 그 후에 얻을 수 있는 반대급부만을 생각할 뿐이다. 이 완벽하게 어울릴 수 없는 두 조건이 조금씩 변하고 서로를 향해 시선을 마주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물론 스토리의 전개가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영화 속 설정에서나,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기본 인식사이에서 서로 대립된 기대와 차이가 드러나 있기에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부분들도 눈에 들어온다. 즉, 왕좌에서 쫓겨나 유배를 온 죄인인 왕일지라도 신분이 낮은 촌노(村老)가 자기의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큰소리를 치면서 멱살잡이를 한다든가, 그러다가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단종이 엄흥도의 속셈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든가, 하는 부분들은 예정된 흐름으로서는 납득이 될지언정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무튼 그 이후로 왕과 마을 사람간의 관계가 좋아지면서 서로 어울리며, 식사도 함께하고 사사로운 대화를 허물없이 나누면서 화기애애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설정일지라도 영화 속에선 매우 인상적이면서 극의 새로운 전개를 위한 재미와 주제의식을 부각하는 것으로서 수용할 만하다 할 것이다. 나아가 엄흥도의 아들 태산이를 단종이 직접 공부를 가르치는 장면이나, 태산이가 배운 것을 다시 마을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면서, 마을사람들에게 자기존재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은 임금이 베푼 아량(雅量)이거나 애민정신의 실천일 수 있으므로 인간적 교분(交分)이 느껴지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배소를 허락 없이 드나들었다는 이유로 엄흥도의 아들이 곤장을 맞는 장면에서 때마침 단종을 곤란하게 하려는 한명회의 계략임을 알고 단종이 나타나 이를 제지하며 맞섰던 것은 실제 발생가능 여부를 넘어, 극의 전개상으로 볼 때 단종과 마을사람들과의 관계형성과 이로 인하여 단종이 왕으로서의 위엄과 품격을 되찾아가는 변화를 상징하면서 한명회 일파의 다음 행동을 유발할 수 있게 하는 적절한 시퀀스로서 인상적인 설정이라 할 만한 것이다.

이 영화가 단종을 둘러싼 기존의 스토리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들이라 할 것이다. 기존의 알려진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구성된 스토리와는 다르게, 이렇게 단종의 이미지를 재설정하거나 백성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인식, 그리고 서로 대등(?)하게 추구할 수 있는 상이한 욕구를 서로를 향해 조정해가는 상호작용적 변화를 통하여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감정의 상승효과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 속에서 보여 지는 “상징적 상호작용”은 현재의 대중들이 기대하고 가치 있게 받아들이려는 현상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왜 지금 대중들은 이 영화에 반응하는가?” 하는 그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매우 간단하고, 이미 잘 알고 있는 지식과 연관된 감정에 대한 공감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엄밀하게는 역사적 사건에의 새삼스러운 재조명이거나, 안타깝고 끔찍한 과거사실에 대한 인간적 연민이나 동조에 대한 평범한 수준의 공감일 뿐인데, 이렇게 화제를 몰고 오면서 신드롬을 형성하고 있고, 나아가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객관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흔한 소재이고 좀 더 잘 만든 영화인 것은 맞지만 이렇게 까지 특별한 반응을 유발하는 것은 묘한 인간의 내적 코드와 일치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면서 아마 상징적 상호작용과도 같은, 분명 대중들의 내면에 존재했지만, 드러내려 꿈틀 대고 있던 그 어떤 정서와 만난 탓일 것이다. 그것이 이렇게 상호작용, 또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이라 할 것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퇴위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있기에, 결코 가볍지 않은 선입견을 갖게 한다. 특히 조선왕조에서 결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심각하고 잔혹하며, 패륜적인 스토리에 해당할 뿐 아니라, 받아들일 수 없는 명분과 인간이 저지를 수 없는 행위를 극단적으로 자행한 탐욕의 극치를 보여준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이런 비열한 음모의 중심에 선 한명회와 수양대군이라는 인물은 그 이후에 누린 권세와 그나마 이뤄낸 업적에 상관없이 역사적 오명을 절대 씻을 수 없는 흔적을 깊이 새기게 되었는데, 이렇게 쉽게 다루기 어려운 스토리의 무거움을, 영화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시점(視點)으로 새롭게 풀어낸 셈이었다.

영화에서는 조선시대라는 역사적 환경에서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이질적이고 상반된 두 집단이 상호 이해라는 과정을 겪어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하고 연민하고 그러면서 삶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면서 “살아가야 하는” 방향까지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폐위되었다고 해도 왕의 밥상머리에 함께 앉아 겸상을 하거나 한 방에 왕과 마을 사람들이 어울리며 자유롭게 대화하고 웃고 떠들며 좋아하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이런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감동하거나 격한 감정의 반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예술작품이 선사하는 새로운 기대이며 전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창조하거나 또는 가공하여 새롭게 재탄생시킴으로써 인간의 내면적 주제를 드러내고 그것의 의미를 새기면서 더 나은 곳을 향해 나아가려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뒷부분에 이르러 노산군 이홍위가 죽음을 앞에 두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라고 탄식하는 것은 삶의 종말이나 죽음을 앞에 둔 채 희망을 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막막한 하소연에 해당하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 ‘산다는’ 것은 이렇게 서로 어울리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감사함을 알거나 기억하면서 삶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인데, 그래서 이홍위는 그것의 가능성을 판단하기 전에 자기가 왕으로서 사랑하고 아끼는 백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숙부인 금성대군이 벌이는 거사에 동참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런 단종의 생각을 알고 단종의 마음을 받아 들였기에 들키거나 실패하면 자기는 물론이고 3족이 멸하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흥도는 단종을 돕게 된다. 곧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살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역사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금성대군의 거사는 실패로 끝이 났고, 이홍위의 기대 역시 물거품이 되어 죽음을 당하게 된다. 곧 죽음을 앞둔 단종과 이를 도운 것으로 드러난 엄흥도. 그러나 단종은 그 모든 죄를 스스로 떠안으려 한다. 엄흥도를 이미 이해했고, 실제로 자기를 위해 보여준 그간의 일들을 잘 알기에 이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며, 단종이 마지막에 보여 준 모습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이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더욱 관객들의 가슴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영화의 많은 부분에서 마치 코미디극인가 싶게 유머코드를 상당히 배치하고 전개한(그러나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도 없었던) 영화였지만 이렇게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관객들의 감정 샘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단종은 더 이상 살려둘 수 없다는 조정의 판단으로 사약을 받고 죽을 운명에 처한다. 그러나 왕으로서 사약을 마시고 죽을 수는 없다는 판단으로 사전에 엄흥도에게 긴히 부탁을 해두었다. 스스로 목숨을 거둘 수 있도록 청을 해둔 것이다. 유해진 배우가 절정(絶頂)의 연기력을 통해 보여준 엔딩 장면은 언제라도 잊지 못할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잔인하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역으로 권력의 비정한 면모를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시킬 수 있는 시퀀스sequence가 되었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해학과 유머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유지하면서도 역사의 슬픈 면에 대해서는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결국 왕조시대에 겪었던 임금과 백성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인간적 교류를 은근하게 강조한 휴먼드라마로서 자리하게 된 셈이다. 오늘날 대중에 선보인 유사한 버전version중 하나에 속하는 사극이었지만, 한국영화사상 가장 빠르게(개봉 후 45일) 1,400만 명을 돌파하게 한 동력은 곧 이런 인간의 깊은 심성, 연민, 그리움, 남 일 같지 않게 감정이입하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등 인간적 정서를 고스란히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어린 임금은 인간의 더러운 탐욕에 희생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되돌릴 수 없는 길, 허구였다면 살려낼 수 있었겠지만, 역사는 이미 기정의 사실이므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빠져든다. 그리고 차가운 강물에 던져진 시신을, 누구도 수습해서는 안 되며, 그럴 시에는 3족(族)을 멸한다는 엄명(嚴命)에도 불구하고 강물에 뛰어들어 시신을 건져내는 엄흥도를 보면서 적지 않은 안도감을 느끼면서 마음의 박수를 보내게 한다.

한국적 정서를 잘 살려낸, 다소의 무리(?)가 없지는 않았다 해도, 과거에 비해 수많은 채널을 통해 영상물을 접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 정통 오리지널 극장개봉 영화를 보기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극장표를 사서 몰려든 이유를 찾으려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5~600년 전 가엾고 슬픈 삶을 살다간 어린 왕의 생애나, 이를 도운 엄흥도나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인정, 또는 강원도 영월을 무대로 한 아름다운 경치, 혹은 주.조연을 막론한 연기자들의 헌신적이고 진지한 연기력, 무대(set)장치나 의상 등이 자연스럽게 잘 갖춰지고 차려 입어서 등등 여러 이유들을 댈 만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잘 알 수가 없다. 특정하지 않은 무언가가 관객들 각자의 마음을 자극하고 동조하고 이끌리게 하였을 것인데, 그것은 본인들이 각자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그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의 처지를 인정하면서 채우려는 생각을 가지고, 서로 나누려 하는 공감대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그것들이 인간의 내적인 감성으로 교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날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고, 더 나은 것을 얻고 즐기기 위해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혹시라도 저런 따뜻한 감성을 그리워하거나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동정하면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우리는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려는 세상에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왕과 한동안 살았던, 또는 함께 죽으려 한, 한 남자를 기억하게 되었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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