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가 오세필의 첫 개인전, "Color of daily life"
갤러리 라메르 (1층 1전시실), 2024 10/9~10/14
오세필 화가의 첫 추상화 개인전이 갤러리 라메르 1층 1전시실에서 10월 9일(수)부터 14일(월)까지 열렸다. 추상화(抽象畵)는 구체적이지 못하고 일반화하기도 어려운, 막연한 무언가를 그려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은 반대로 사물들의 공통된 성질이나 정신적 작용을 일반화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추상화 작품을 감상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수많은 대상으로부터 선택한 개념들의 공통된 서술에 공감하거나 공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오세필 작가는 작품의 주제를 "color of daily life"로 정하면서, 이 제명의 연작을 선보이고 있다. 필자는 작품을 이해하기에 앞서 작가의 프로필과 전시주제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았다. "일상(每日)의 색"이라 하니, 작가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이거나 자신 삶의 과정에서 보고 겪는 것들에 대한 창의적 인상을 담아내려는 삶의 표상이 내포되어 있을 법하면서도, 생애 중 꽤 오랜 세월 목회활동을 해온 성직자인 이력에 신경이 쓰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daily life)’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순간들이 아니라는 인식으로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탐구하려 한다면, 이것은 보통의 인생관이나 삶의 자세가 아니라 특정한 소명의식으로 여겨질 수 있다. 즉 삶의 수명은 제한되어 있고, 생명이란 이유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특별하게 선택된 주체적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에 따라 ‘일상(매일)’이라는 삶은 순간마다의 소중한 의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작가는 이런 관점과 각성을 시각적 표현을 통해 작품으로 완성해 내고자 하였을 것이며, 이것이 오랜 세월을 기다리며 창작을 통해 일생의 과업을 수행하려는 의도인 것은 아닌지 추측을 해본다. 따라서 평범한 일상이거나, 특별하고 유일한 현상의 모습이거나 그 무엇에 대한 인상과 체험을 허투루 여기거나, 보낼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나 기록과도 같은 자신의 내면을 담아내고자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우리는 삶에서 기억할 만한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대한다. 특히 아름다운 가을날과 같이 날씨와 경치에서도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할 수 있지만, 세상의 일들로부터 자극받거나 발견하는 인식이나 진실에서도 만날 수 있으며, 이것은 언제든 기대하고 원하는 일이다. 오세필 작가는 작가의 글에서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그가 그려내는 “일상의 색(Color of daily life)”이란, 곧 매일의 삶을 통해 그 “아름다운 순간”을 겪었거나 발견하고자 시도한 표상이라 할 수 있으나, 매일의 일상이라는 것은 의식이 없는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닌 관심과 탐구의 정신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런 가운데 새롭게 느끼는 특별한 체험이요 인상이라 할 수도 있다.
오세필 작가는 이미 50여년의 화력(畵歷)을 가졌음에도 비교적 근래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러나 화가의 길에 접어든 50여 년 전의 작품과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의 작품들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작가의 주제의식이나 추구하는 방향이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으며, 일관성이 유지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근래에 겪는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한 표현이나 기억하고자 함이 아니라 그의 생애를 통해서 지속되어온 주제의식의 발로이거나 발현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그의 “추상화” 작품들은 작가의 의식과 전달메시지를 자신의 표현도구와 방식으로 체계화하여 전달하려 하며, 이는 작가와 독자의 적절한 소통과 더불어 바람직한 교감과 공감이 이뤄짐으로써 의미를 찾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자신의 언어와 표현 기교를 통하여 소통을 기대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깊은 몰입과 경청을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 작가의 근래 작품들은 화단 입문 초기에 비하여 오히려 원천적인 방식으로 몰두하려는 진지함을 보이고 있는 듯하였다. 즉, 그가 찾으려는 것들은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의식과의 결합으로 재발견하려는 듯이 탐색과정을 철저히 지켜가고자 한다. 그가 제시하는 전제는 겹쳐진 것들, 덮여 있는 것들에서 한 커플을 벗겨 내거나 파헤치며 찾아내고자 한다. 당연히 눈앞에 드러나 있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을 알기에, 진실한 것들과 더욱 아름다운 것들은 그저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몸소 찾아 나선다. 결국 그것은 신이 창조한 자연 안에 있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주변의 사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지기도 하며, 자연의 일부 구성 요소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것들을 성실하고 꾸준히 찾아 나서며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표상화 한다.
오 작가의 첫 번째 개인 추상화전은 이렇게 오랜 세월을 찾고 기다린 것들을 만나려는 여정 끝에 이루어진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세상의 것들에서 자신이 생애동안 추구하였던 진리와 진실을 증명할 무언가를 만나고자 하는 깊은 염원과 이를 담은 기도, 그 기도가 원하는 간절하고 경건한 마음의 준비를 이제 막 끝냈다는 것을 증거 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래 전 어느 날 오후, 오 작가는 잠결인 듯 꿈결인 듯 경험한 생명의 기운이 자신을, 온 세상을 휘감고 이끌던 기억과 물고기를 통한 생명구원의 기적을 떠올리면서 “오수(午睡)”와 “어(魚)”를 그렸다. 그리고 20여년이 흐른 뒤, 다시 “물고기(魚)”와 “오병이어(五餠二魚)”를 떠올리며 이를 시각화하는 작품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와 의무를 확인하는 과정을 겪은 후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몰입한다. 자신의 출발지로 다시 돌아온 작가는 비로소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목도(目睹)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영원히 남기고자 하는 생각을 굳히게 되는데, 어떤 연유로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을까? 연어가 자신의 생명을 잉태한 곳으로 회귀하듯 오 작가는 아름답고 찬란한 이 가을에 다시 옛 시절의 고향과도 같은 땅으로 돌아온 것은 생명의 연원을 그리는 본능의 회귀와도 같은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필자는 작가개인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며 일방적일망정 작품창작의 재개와 작품화의 계기나 영감의 발단에 대한 선입견적인 판단을 해보면서, 오 작가가 비교적 긴 세월동안 화가로서의 공백이 있었음에도 이를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그간 종교인으로서의 소명과 소임에 충실하면서도 화가로서의 창작에 대한 열망 또한 마음에 내재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면서 느끼는 기대감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외경(畏敬)의 심정으로 탐구를 시작하면서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주제라 할 “생명과 구원의 빛”을 향한 여정을 떠나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한다. (강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