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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화석 Nov 11. 2024

오늘은 갤러리 산책가는 날.27

왕영미의 10회 개인전, “영원회귀(永原回歸)”

인사아트센터 4층, 2024 10/30~11/4     

    

“영원한 시간은 원형(圓形)으로 이루어져 있어, 우주와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 된다”      


인사아트센터(4층)에서 10월30일(수)부터 11월4일(월)까지 열렸던 왕영미의 개인전은 철학적 주제를 다룬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왕영미 작가는 “영원회귀(永原回歸)”를 주제로 내세우며, 니체의 “영원회귀(永遠回歸)”사상을 자신의 예술적 정신으로 재해석하면서 다수의 연작들을 표상화 하였다. 

왕영미 작가가 선택한 모티브는 “해바라기”였다. 자신의 주제를 전개하기 위한 메타포(Metaphor)로서 선택한 해바라기가 주는 원형적인 메시지라도 있는 것인가? 아마 태양을 상징하는 강렬한 자연의 한 완성체로서 자신의 주제를 대입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대상이 무엇이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자연의 모든 생물들은 인간의 눈에는 유한성과 변화의 과정이 불가피하다고 믿고 있는 중이고,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에서 살아가는 것들은 그 유한함으로 해서 때론 아름답기도, 반대로 절박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숙명을 느끼는 중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해바라기나 그 어떤 꽃이어도 문제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왕영미 작가는 해바라기를 모티브로 하면서 유한함에 과감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중이다. 니체가 자신의 책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강조한 “영원회귀”를 통하여 그 유한성을 뛰어넘으려는 도전적 시도를 하려는 것이다. 즉 왕영미 작가는 대형 캔버스에 해바라기를 그리면서 자신의 기존의 감각적 경험과 지각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그리고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을 바탕으로 삼아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위해 스스로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 시도하는 중이다.   

왕영미는 이번 전시에서, 자연에 부여된 시간에 의한 제한은 영원히 되풀이 된다는 것을 극복하면서 그를 증거 하는 표상들을 3단계의 소주제로 구분하여 시각화하고 있다. <해바라기(Sun flowers)>, <Fully grown>, <Dionysus flower>는 작가가 선택한 단계적 테마 들이며 그에 따른 각각의 연작들을 내 보이고 있다.      

                                                                   <Sunflowers> 시리즈

우선 <해바라기(Sun flower)>에서는 아름다움에의 인식으로서 해바라기가 만개(滿開)한 절정의 아름다움을 다양한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밝고 환한 색채와 자연으로부터의 온갖 빛의 반응을 통하여 자신만의 미학을 해바라기에 심어놓고 있다. 다음 단계에서는 “다 자란” 성숙의 이미지와 실체를 표현하는 <Fully grown>의 표상을 보여준다. 성숙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성장을 멈춘 해바라기는 곧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스스로 뿜어내던 기운과 빛은 사라지기 시작하니 작품에 드러나고 있듯이 빛이 사라진 우울한 분위기를 단색이나 채도를 낮추어 마치 박제(剝製)하듯 그려진다. 한편으론 처연하고 연민이 느껴진다. 기울어 가는 태양의 희미한 빛에 비껴가듯 해바라기의 형체 또한 축 쳐져 흐느적거린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을 내어주고 거죽만 남았다 해도 그의 생애를 바쳐 맺게 된 결실은 남게 되는 순간임을 이미 알고 있으니, 의미 있는 생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다. 최상의 아름다움을 통해 확인된 해바라기의 생애는 곧 결실(結實)이라 할 열매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숙은 쇠락을 예고하지만 새로운 기대를 만드는 아름다운 회귀의 선약(先約)인 셈이다. 

                                                                      <Fully grown> 시리즈

다음으로 <Dionysus flower>는 이 모든 과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만들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단계를 의미한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초인(超人)사상」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와 규범, 믿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가 떠받들어야 하는 가치는 다양하며, 지금의 가치에 대해서는 재평가해야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삶 또한 긍정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가치 속에서 성장하려는 ‘주인의식’을 실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Dionysus flower(디오니소스적 해바라기)”는 영원히 회귀하는 꽃의 운명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영원히 창조되고 영원히 파괴되는 디오니소스적 세계”에서의 해바라기를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영원회귀”하는 삶과 이를 받아들이는 “초인”의 태도, 즉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를 자신의 예술혼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Dionysus flower> 시리즈

우리는 세상의 사물들에 대해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이성과 비이성 등을 대립시켜 2분법으로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이 중에서 어느 쪽을 보다 더 선호하였다는 것을 스스로 부정하지는 못한다. 나아가 이성적으로 믿고 따르던 것 또한 명확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믿는 기존 질서나 도덕 체계가 올바르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그 반대는 어떤가? 어느 쪽은 부정해야 하고, 또 올바르지 못하다고 해야 하는가? 니체의 사상은 이런 의문과 그 대안을 탐구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의 사상은 파괴와 창조라는 서로 상반된 행위로 설명할 수 있다. 

왕영미 작가는 “영원회귀” 라는 니체의 사상에 자신의 예술정신과 작업을 접목하며 해바라기 작품들을 그려냈다. 그는 “나는 꽃과 해바라기를 기존의 사회적 통념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신의 감각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화가는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색채, 형태, 구도 등을 통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만들어 내야한다”고 자신의 작업 노트에 쓰고 있다. 

왕영미가 선택한 “해바라기(Sun flower)”는 자신의 정신과 의지를 구현하기 위한 Motif이며 도구라고 할 수 있는데, 그에게는 하나의 사물이며 대상이지만 상징적 메타포로서 자신의 선험적 지식이나 인식이 해바라기를 주목하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곧 니체(Nietzsche)의 ‘초인사상(超人思想)’과는 상충(相衝)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전통적 규범과 믿음을 초월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려는 인간으로서는 기존 질서와 규범을 뛰어 넘어서는 것에 있어 일단 서로 부딪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작가는 기(旣) 인식된 대상으로서 특별함이 있는 “해바라기”라는 상징을 통해 니체의 사상을 적용하고자 했기에 어느 정도 절망감도 느낄 법하다. 그럼에도 작가는 니체가 내세우는 “초인(超人)”이나 “영원한 회귀(永遠回歸)”를 다루고자 했기에 기존의 것에 대한 해체, 쇠락과 소멸을 통하여 자신의 가치인식들을 넘어서려 한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작가는 기존의 미의 대상으로서 만개한 “해바라기”를 그려낸다. 그의 해바라기는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이 난다. 말년에 해바라기를 자주 그린 고호는 해바라기를 “아주 아름다운 꽃”으로 인지하고 있었고, 최대한 밝게 표현하기 위하여 환한 바탕의 노란색과 파란색을 사용하며 여러 작품을 그리기도 하였다. 

이런 해바라기를 선택한 작가는 절정의 “피어남(bloomingness)”이 드러나도록 화폭에 해바라기를 재현함으로써 전통적 관점의 규범과 가치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해바라기의 생(生)은 그 성숙의 절정에 이르러 꺾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결국 “Fully grown”은 성장과 성숙의 단계를 지나는 순간부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서서히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나 자연의 생명이 겪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왕영미 작가는 철저히 그것들을 표현한다. Sunflower의 완전한 개화와 대비하며 처참하게(?) 쇠퇴한 모습을 통하여 서로 반대의 표상으로 한 생명의 반전을 확인하도록 한다. 결국 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들과 생명을 가진 생물들의 운명이며 숙명이라 할 것이다. 이로써 시각적으로 해석한 “Fully grown”의 해바라기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느끼거나 전해 받은 감흥은 무엇인가? 처절하리만치 서글픈 현재에 대한 애처로움이나 그에 따른 안타까움 그래서 체험하는 물리적 고통이라 할 것인가? 

오래되고 낡은 가치를 죽이고 또는 지금의 삶을 부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거나 중요시하면서 이 순간에 느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설령 쇠락하고 사라져 가는 과거의 영화이고 아름다운 것일지언정 지금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왕영미 작가는 매우 단단한 마음으로 화폭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성숙기를 지난 해바라기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꽃 피운 후에 서서히 말라가며 쇠락하는 모습을 보인 뒤 자신의 열매를 생산해 낸다. 자신은 소멸되어 가지만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어놓게 되는 것이다. 자기희생으로 새로운 잉태를 낳고, 스스로는 과거의 영화를 버리고 추한 몰골로 남았다가 사라진다. 작가는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변해가는 해바라기의 생애를 시각으로 표상화하면서 변화를 따르며 반복하는 생명 순환, 영원한 윤회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Dionysus flower>에서의 해바라기는 암청색과 암록색의 바탕과 대비하여 나름의 빛나는 해바라기를 보여준다. 그가 선택한 색과 빛의 조합은 매우 절제되어 있고 신중하다. 이는 기존 질서에서의 흐름을 연상하므로 어렵지 않게 작가의 심중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곧 사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영원히 창조되고 영원히 파괴되는 “디오니소스적(Dionysus) 세계”를 시각화하려는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은 이런 식의 영원불멸을 암시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회귀하며, 영원히 창조되고 영원히 파괴된다”는 니체의 세계관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운명의 원천을 이해하고 운명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니체의 운명관이 정립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왕영미 작가는 이런 니체의 사상을 해바라기라는 모티브를 통하여 자신의 예술적 정신을 접목하며 시각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왕영미 작가는 작년에 이어 올해의 전시에서도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사상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의 역동성을 달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아의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를 꾀하려는 것은 예술가의 근원적인 책무라 할 수 있다.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여러 요인들에 대한 관심과 그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는 예술가의 창의성과 어우러져 더욱 빛을 발휘하게 될 것이며, 이는 이미 영원회귀 사상의 기본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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