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진 : 자연의 속삭임. 서울시립미술관 기획전시
< 박광진 : 자연의 속삭임(Whispers of Nature. Park Kwang Jin)>,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층 전시실, 2024 12/12(목)~2025 2/9(일)
서울시립미술관은 기획전시로 원로 서양화가 박광진의 개인전을 2024년 12월12일(목)부터 2025년 2월9일(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1층 전시실에서 열었다. 박광진 화백이 기증하여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과 작가의 대표작들 중에서 선별하여 총 117점을 4개의 section으로 구분하여 전시하였다. 박광진 화백은 올해로 구순(九旬)에 이른 한국을 대표하는 노장화백으로 평생 동안 1100여점 이상의 작품을 그린 바 있으며, 여전히 지금도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대학(홍익대 미술학부)에 재학 중이던 1957년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국보(國寶)」라는 작품으로 특선에 입상하면서 본격적으로 화단에서 활동을 시작하였고, 사실적인 화풍과 특유의 섬세한 묘사로 주목을 받았으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화단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한국미술계의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의 theme를 <자연의 속삭임(Whispers of Nature)>이라 정하고 박광진 화백이 생애동안 그린 주요 작품들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고 있는데, 박 화백이 구상화가로서 자연친화적인 작품을 주로 그린 것에 주목하여 주제를 정하였지만, 실제로는 박 화백의 일대기를 일별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전시라 할 수 있다. 즉 1957년 국전에 특선하며 화단에서 공식적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그린 작품들을 포함하여, 작품 활동의 변천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그가 평생, 즉 70년에 걸쳐 그림을 그리면서 시도한 예술적 탐구노력과 기법에서의 흐름과 진화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대한민국 화단의 대표적인 구상화가로서 그리고 화단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함으로서 적잖은 역할과 영향을 끼친 노 예술가의 예술세계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전시는 4개의 section으로 구분하여 박 화백의 주제의식이나 작품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는데, 공식적인 화단 데뷔debut를 전후한 시기에서부터 그 이후 국내외를 망라하면서 자연을 대상으로 풍경화를 그리며 사실주의적 구상작가로서 자리매김하여 가는 과정, 그리고 제주도를 중심으로 <자연의 소리>라는 주제로 동명(同名)의 연작 시리즈를 그려내던 시기에 이르기 까지 박 화백의 일대기를 연대기(年代記) 순(順)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종합적인 기획전시인 셈이다.
박광진 화백은 매우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예술가였다. 실내에서 인물과 정물을 그리기도 하였지만, 국내외를 막론하고 도시이거나 산천경개, 어디든 현장을 찾아 나섰던 현장형 예술가였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을 찾아 나섰으며, 그 덕분에 그가 그린 작품들은 화폭으로 남아 지금은 그 시절과 지금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풍속적인 가치까지도 덤으로 남겨주고 있기도 하다(「설경 염춘교다리」, 「삼선교 목욕탕」, 「당인리 발전소」, 「부산영도다리」).
이처럼 박 화백이 평생 그릴 대상을 찾아 나선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무엇을 찾고 무엇을 그리기 위해 부지런히 어디든 계절을 불문하고 길을 떠났던 것인가?
박 화백은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사람이다. 그는 우선 젊은 시절에는 자신과 가까이에 있는 주변 대상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들을 화폭에 담았다. 그런 과정에서 나온 작품들이 「보문동 전당포(1956)」, 「담배가게(1957)」, 「삼선교 목욕탕(1964)」 등이고, 그런 중에 「국보(1957)」는 <국전>에 특선으로 선정되면서 공식적인 화단 등용작(登龍作)이 되었다.
젊은 시절의 박광진 화백은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모방하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정신과 주제의식을 담고자 하였다. 이때 그는 대상을 그려내면서 한국의 토속적 정취라든가 한국의 정신이나 심미감(審美感)을 은연중에 부각하고자 하였는데, 전통적 정서에의 관심은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오랜 정신적 연원에 닿아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들은 타 작가들과 구별되는 예술세계를 추구하는 화가로 관심을 끌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박광진 화백의 초기 작품들은 시점과 대상과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상태에서 그려졌다. 그만큼 합리적이고 탐구적이며 깊이 빠지려는 자기인식이 있었던 듯하다. 또한 먼 거리에 비해 가까운 만큼 대상을 캔버스에 평면적인 질서로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며, 따라서 캔버스 안에 대상에 대한 자신의 실험적 사고와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57년부터 1962년까지 4회에 걸쳐 <국전>에서 “특선”을 하였는데, 그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국전 특선 작(「국보」, 「닭장」, 「토끼장」 외)들은 대상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더불어 화폭을 면분할하거나 보다 세부적인 표상을 각기 다르게 담아냄으로서 하나 이상의 시각적 메시지나 인상을 표현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자신의 내적 정서에 부합하는 시각적 이미지를 표상해 내기 위하여 그는 감성에만 치우치지 않고 대상의 구조, 내적 질서나 의미를 파헤쳐 보려는 진지한 탐구적 정신을 드러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그의 고유한 작품 특성으로 인식되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박 화백의 초기 화풍은 대상에 보다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마치 확대경으로 들이대며 세밀한 관찰을 하듯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이는 「파고다 탑(1957)」, 「탑(1968)」 등에서 ‘탑(塔)’을 그릴 때에도 탑의 전체를 구도로 삼기보다는 그가 원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탑의 일부를 그린다던가, 풍경역시 전체가 아닌 대상의 특정부분을 주목하며 가까운 시선으로 화폭에 담아내는 식으로 작품을 그려냈다(「수덕사」, 「해인사법당」, 「비원의 정원」 등).
그러나 이후 차츰 변화가 나타난다. 서서히 대상과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할 뿐 아니라 자신이 위치한 주변 환경으로부터 장소의 변경을 시도하여 국내외로 범위를 확장하면서, 대상의 구도역시 다소 멀어진 거리에서 시점을 정하고 화각의 폭을 넓혀 풍경을 담기 시작하는데, 이를 통해 박 화백은 대상에 대한 관찰과 몰입하려는 소통의 방식이 자연스럽고 원숙해 지면서 그만의 개성과 정서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사실적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평범하다할 장소에서 조차 자기만의 귀를 기울이면서 자연과의 대화를 시도하려 하였다. 그는 지방의 어느 동네 개천가(「냇가(민락동)」, 수풀이 우거진 산 계곡 초입의 물가(「정 사기동」), 포퓰러 가로수 길(「포퓰러」), 시골마을의 모습(「근교농촌 모습」) 등 무엇에 가릴 것 없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또한 대상이 보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를 화폭에 재현하려 하였고, 최대한 사실적이며 섬세한 묘사를 하고자 하지만 결코 회화적 미학을 놓치지는 않으려 하였다. 이러한 것은 「지곡리의 영影)」, 「지곡리 가을」, 「호수 영影」 등의 작품들에서 대체로 잘 반영되어 드러나고 있다. 이때 그의 작품들은 물가가 있는 풍경을 대상으로 정한 후 주 풍경을 마치 데칼코마니decalcomanie 하듯 물에 비친 풍경을 동시에 대비하며 그리는데, 그의 묘사가 매우 균형적일 뿐 아니라, 작품내용을 확장하여 그 안에는 무언가 storytelling이 담겨있거나, 한편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명상(冥想) 상태로 이끄는 듯하므로 여느 풍경화와는 맛과 느낌이 다른 정취(情趣)와 감흥(感興)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대상을 선정하거나, 바라보는 시점을 시선으로부터 다소 상향하여 화각(畵角)을 잡음으로서 대상에 대한 인상을 보다 특별하게 인식되도록 하는 구도를 설정하여 그리고자 하였다(「옛마을 설경」. 「옛마을(법성포)」).
그의 풍경화들은 화면을 꽉 채워 그림으로써 빈틈없이 대상을 살피며 자연에 대한 소홀함이 없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진정한 자연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품 「지곡리 영」에서 마을 어귀의 작은 개천일 지라도 천변(川邊)의 작은 돌덩이나 얕은 물에 비친 그림자조차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서 소소한 장면이 매우 특별하고 인상적으로 살아나고 있으며, 「인수봉」의 경우에서도 멀리 원경에 “인수봉” 암벽을 그리고 있지만 근경, 중경에 들어오는 전체적인 산과 주변의 모습을 어느 것도 빼지 않고 모두 정성을 다해 그리고자 한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물가에 비친 산 그림자를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산 정상으로 가는 길과 그 주변을 매우 비중 있게 묘사하고 있으니, 「인수봉」이 아닌 「인수봉 가는 길」이라고 해야 맞을 듯이 ‘인수봉’의 전체를 모두 화폭에 담아 시각화하고 있다. 이는 그의 자연관이나 자연에 대한 애정의 표시가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그의 풍경화에는 대상을 시각적으로 화폭에 재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들의 호기심이나 마음의 동요를 자극하는 어떤 “감흥의 요소”가 담겨있는 듯한데, 결국 이는 독자들을 자극하는 여지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마치 “진경산수화”가 작품 안에 “여백”을 통하여 독자들의 마음의 여지를 담으려 하는 효과와 같은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그의 풍경화들은 서양화 재료와 기법으로 그린 “산수화”라고 확대하여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며, 다만 박 화백의 풍경화는 “여백”의 여지는 없으나 간혹 산수화적 정취가 느껴지는 표현기법이나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대상의 어느 특정부분을 부각하여 단순화한다든지(「북한산의 봄」, 「바위 눈 계곡」, 「설경」 등), 산과 바위의 웅장한 이미지를 담은 작품에서 바위의 묘사를 한국화의 ‘부벽준법(斧劈皴法)’을 연상시키는 채색기법이 읽혀지기도 하며, 이런 표현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연상되지만, 작품의 내용이 자연으로부터 인간에의 위로와 안정, 그리고 명상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듯 하기 때문에, 이런 전체적인 연상만으로도 진경산수화의 정신을 박 화백의 작품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박 화백이 자연을 대하며 들은 “자연의 소리”, 즉 “자연의 속삭임”은, 한편 자신의 “내면의 소리”라 할 수도 있다. 즉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비롯되는 자연을 향한 순수한 신심(信心)이라 할, 그가 자연과 실재하며 서로 호응하는 상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자기와 자연 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실경을 화폭에 옮겨 재현하는 것이 아닌, 최대한 서로의 거리를 당겨 합일(合一)하고자 하는 작가의 순심(順心)이 통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담고자 하면서, 그 풍경의 대상이 흔히 바라 볼 수 있는 경치의 일부이든, 웅대하고 인상적인 자연의 한 표상이든 모두 상호적인 교감의 흔적이나 표식을 담고자 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특별한 정서적 감흥이 내재되어 나타나는 것이라 하겠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자연과 보내면서 작품을 완성하였고, 그런 중에 그 소리를 시각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화폭에 담고자 하였다.
박 화백은 제주에서 오래 머물며 많은 작품들을 그렸다. 그러면서 제주에서 보고 겪는 다양한 풍광을 그리면서 이전과 다른 시도를 하게 된다. 특히 「자연의 소리」연작에서는 박 화백이 제주의 자연에서 발견한 “유채꽃”과 제주의 오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억새”를 마주하며 그동안 보여준 화풍과는 다르게, 자신의 사실주의적 구상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면서도, 파격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즉 구상작가로서 풍경화와 함께 기하학적 추상을 연상시키는 화법(畵法)으로 자연의 대상으로부터 얻은 영감과 창조적 해석을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의 “소리”에 주목하면서 마치 “소리”를 보는 듯 그려내려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이 듣고 느낀 소리를 보다 세심하고 정교하게 시각화하고자 하였고, 그것을 구상적 표현이 아닌 추상적 재현으로, 그동안 자신이 지속해온 화법이 아닌 방식으로 대범하게 변화된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즉 세로로 가늘고 정밀하게 곧은 선을 일정하게 그린 작품들을 실경(實景)을 그린 풍경화와 조화하여 한 작품으로 완성하고자 하였다. 이런 시도는 자신이 감지한 “소리”를 자신의 지각으로 해석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인데, 마치 일정한 주파수가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사이클cycle로 전달되고 있는 상태를 표상하면서도 이를 미학적으로 해석하여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질서와 체계를 은유하려는 시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자연의 소리」라는 “억새” 연작시리즈는 “자연의 소리”라는 주제로 그린 것이지만 “억새”에 대한 시각적 해석과 재현(再現)의 일품(一品)을 보여줄 뿐 아니라 ‘억새’에게서 느껴지는 역동적 움직임과 이미지를 통해 삶에서 요구되는 에너지와 거친 자연환경에서 비롯되는 도전과 고난에 대응하는 넉넉하고도 깊은 성찰을 고스란히 맞닥뜨리는 억새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성숙한 이미지를 미학적으로 표현해 내려 하고 있다. 억새를 자기만의 해석으로 시각적 표상을 해낸 것도 대단하지만, 작품을 통해 전해지는 억새의 소리는 어떤 연상으로도 소홀히 대할 수 없을 위대하고 장구(長久)한 생명력의 본질과 인간에의 적용 시 큰 교훈으로 영향을 줄 만한 감동을 여유롭고 덤덤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자연의 불규칙적 동작이나 리듬일지라도 소란스럽지 않게, 어떤 엇박자라도 수용되고 수습되는 억새들의 화합(和合)을 깊은 감흥으로 담아내고 있다. 나아가 이 작품들은 마치 억새가 바람을 맞이하여 내는 동작과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해 내고 있으니, 작품들을 잠시라도 집중하여 바라보면 그 소리들을 보고 들을 수 있을 듯하며, 그 억새들의 소리는 매우 웅장하면서도, 느리게(Andante Cantabile), 다시 조금 더 빠르고 활기있게(Andante con moto) 연주하는 억새의 소리를 통해 마음의 안정과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듯하다.
박광진 화백은 제주의 “유채꽃”과 “유채꽃밭”을 그리면서 그동안 추구했던 사실적 풍경주의를 재해석하거나, 기존의 사실적 묘사와 달리, 생략과 절제를 통해 대상을 그리는 등 평생을 사실적 방법으로 사실주의 화풍을 일관되게 추구해 왔음에도, 이런 식으로 기하학적 추상주의를 연상하는 작품을 그려낸 것은 다소 의외의 변화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물론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 정신과 사상을 얼마든지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표현해 내려는 본질적인 역무(役務)가 있기는 하지만 이처럼 과감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세련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한편 놀라운 도전이며 용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또한 이것은 박 화백이 보여주는 자기 혁신적 창조정신의 실행인 셈인데, 매우 인상적이며 감동적이다. 예술가가 보여줄 수 있는 왕성한 생명력이라 할 만하다.
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즐거운 심적 동요를 경험하며 매우 의미있는 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노장으로서 그간의 자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창조적 파괴는 매우 위대한 실천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며, 더불어 평생을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를 자극하며 자신에 충실하면서도 자연(세상)을 대하며 소통을 멈추지 않았던 노 화백에 대하여 필자는 경의를 표하고 싶었으며, 이것의 원동력은 평생 동안 가까이 하고자 한 자연이 그만을 위해 전해주는 “자연의 소리”에 서로 교감한 까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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