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애 8회 개인전 <박경애 수채화 100호전>
인사아트센터 본전시장 1층, 2025 3/26(수)~4/1(화)
인사아트센터 본 전시장 1층에서 2025년 3월26일(수)부터 4월1일(화)까지 박경애 작가의 여덟 번째 개인전, 『박경애 수채화 100호전』이 열렸다. 작품의 대부분(일부는 사이즈가 작은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지만)이 100호 크기로 그린 수채화로서 작가가 작품에 대하여 심혈을 기울인 정성과 예술성이 어렵지 않게 전달되면서도, 특별하게 여겨질 만한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사실적이고 세밀한 표현력으로 수채화의 진수(眞髓)를 보여줄 뿐 아니라, 작정을 하고 자기의 내밀한 정서를 주제로 삼아 작품에 담으려한 뜻이 읽혀지고 있다.
박경애 작가는 “그림은 나의 동반자”라는 부제와 함께 “70회 생(生)을 되돌아 회상하면서 전시회를 연다”고 작가노트에 적고 있다. 즉 자기의 ‘고희(古稀)’기념 전시인 셈이다. 그에게 그림은 지금까지의 생애동안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존재한 큰 축의 하나였음을 그의 고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박 작가는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과 조건에서 매우 성실하게 지내오면서도 그림에의 열정이나 몰두 또한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에게 그림은 매우 큰 기둥으로서의 삶의 주제였던 것으로 이해가 된다. 따라서 “내 인생은 그림이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고, 항상 내 곁에서 위로해 주는 동반자”였기에, 이번 전시는 그림을 통해 그의 인생 70년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뜻을 분명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의미와 의도를 작품 속에 그대로 드러낸 것은 아니지만, 마음자세를 통해 자기의 예술세계와 정신을 되돌아보고 정리하려는 뜻이 이번 전시에는 담겨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박경애 수채화 100호전>은 <박경애의 “아름다움”전>이라 해도 될 듯이 그의 작품들은 모두 아름답다. 40여 작품들은 풍경, 꽃과 나무, 그리고 정물 등 다양한 모티브를 그린 것이지만, 결국 그의 눈을 통해 재해석하고 재현한 그의 “아름다움”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설사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서기 어렵다고 해도 작가의 눈과 세련된 기교를 통해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고자 하는 것은 예술행위의 기본으로서, 특히 박 작가의 작품들은 정성을 들인 미의식이 유별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천재 화가 고흐(Gogh, Vincent van)는 생애를 궁핍과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은 채 살다갔지만, 자신의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산책을 자주하고 자연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자연을 사랑하는 일이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며, 화가는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가르쳐 주는 사람”이라고 쓰기도 하였는데, 따라서 자연을 가까이 하고 자연에 자기의 삶을 대입하고 이해하려는 것은 화가에게는 매우 자연스런 일이라 하겠다.
박경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자연경치를 그린 풍경화를 포함하여, 자연의 다양한 사물 등을 통해 마음 속 세상을 그려내며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자 하였다. 고희(古稀)를 스스로 회고하려는 것은 단지 기념 이상의 내재한 의미가 있다고 해야 한다. 자기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재고나 성찰 또한 포함된, 따라서 그가 선택하여 화폭에 재현한 세상의 모습은 자기와의 관계를 설명하거나 유의미한 해석을 덧붙이기에 충분한 것일 수 있다. 그가 그린 소나무와 자작나무, 돌담을 타고 넘는 담쟁이와 가을 산 작은 계곡을 흐르는 개울을 바라보며 그는 자기 존재와 의미에 대한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이렇게 박 작가는 자연을 통해 자기와 삶을 가지런히 하고 또 갈무리하려 하였을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때마침 봄에, 희고 붉은 봄꽃이 불타오르듯 만개한 마을의 어느 집, 그리고 노란 산수유가 화폭 가득 채운 시골 마을 등, 자연을 그린 작품들을 통하여 그가 맞이하는 봄에 대한 심정을 대신하려 하고 있다. 새삼 봄의 화려함과 정겨움으로 마음의 그리움이 더 깊어지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해마다 겪었을 봄의 모습이지만 언제라도 가슴을 뛰게 하는 계절에 대한 감흥을 숨기지 않는 솔직하고 순수한 감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자작나무는 반듯하지만 유약하게 보이는 이미지와 춥고 거친 산야에서 버티고 견디는 내성을 가진 나무의 존재성을 서로 대비하는 절묘한 조합의 미학을 시각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을의 자작나무와 겨울의 자작나무의 동질적이면서 다른 연상적 반응을 통해 대상에 대한 표상이 작가의 은근한 내적 정서를 보태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있다. 한 겨울의 자작나무는 한편으론 비장하며 의연하다. 곧게 뻗어 자리를 지키는 자작나무의 모습은 한결같은 반듯함과 올곧음을 전해 주면서도 움츠리고 가라앉은 마음에 자극이 될 것이다.
이렇게 그에게 그림의 대상은 그저 화폭에 옮겨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삶의 여정에서 선택적으로 관계된 대상이요 원천이 된 것들이며, 또한 자신의 동반자가가 되어 준 그림을 통해 확인하고 재인식하려는 뜻을 작품으로 표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과 그림속의 대상들은 그저 즉물적(卽物的)인 것이 아닌, 실존의 의미를 가진 본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즉 익숙한 현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닌, 때로는 빠져들거나 비현실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자기를 담아내어 애정을 전하려 한다. 이것이 접사적(接寫的) 구도로 그린 작품들이나, 모티브로 선택한 대상을 최대한 넓게 포착하고 다양하게 바라보며 표상해 내려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법하다. 접사적(接寫的) 구도는 확대경, 또는 현미경의 의도일 수 있다. 하나의 대상으로부터 평소의 시각과 다른 ‘무엇’을 체험하려는 뜻을 담고자 하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작가의 시점간 거리를 최대한 줄임으로써 뜻밖의 것을 발견하거나 탐구의 의도로 접근하려는 것은 전체적이거나 종합적인 것이 아닌, 보다 분석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려는 것이다. 또는 당연하고 자연스런 대상에의 인식체험으로부터 탈피하여 새롭고 다른 시각적 체험을 통해 스스로의 일상으로부터 보다 특별한 미학적 발견이나 추구를 기대하려는 것이다.
이런 발상은 대상에의 거리를 축소하려는 것과 더불어 물속에 잠겨있는 것들이나 물에 비친 반사된 이미지를 들여다보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물이라는 투명체를 거쳐 보여 지는 물속에 존재하는 것들을 바라보면서, 실재 그대로가 아닌 물이라는 물리적 체계와 Frame을 통해 그 안에 내재된 대상을 그리고자 한다. 그리고 물의 표면에 또 다른 대상이 겹쳐지면서 동시에 하나의 화폭에 여럿의 존재들이 합쳐지고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낸다. 또한 대상을 뒤집어 보려는 것은 대상의 상대적 또는 반대의 이미지이며, 실재의 뒤집힌 형태로서 동일함의 다른 모습이면서, 곧 실재를 인식하는 실존적 관점의 존재확인과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물에 반사된 대상의 잔영, 또는 물이라는 매개에 투영된 대상의 이미지는 대상의 허상(虛像)으로서 본질이 아닌 현상적 이미지이지만, 이를 최대한 재현함으로써 새로운 실체적 이미지를 창조해 내려하는 것이다. 대상에의 확인이며 실존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그가 그린 꽃 그림은 단지 하나의 정형화된 꽃 더미를 그리는 것에서 나아가 꽃의 세밀하고 숨겨져 있다시피 한 꽃 자체의 시각적 본질을 관찰하려는 호기심의 발로를 보여준다. 즉 사실적인 재현을 넘어 꽃 자체에서 찾아낼 ‘무엇’, 혹은 이것이 실존적인(existential) 접근일 수도 있지만, 중의적(重義的)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재현함으로써 평소와는 다른 표현적 감흥을 의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박경애 작가는 겉으로 드러낸 동백의 아름다움 뿐 아니라 깊고도 넓은 동백에 관련된 여러 가지의 실체적 미학을 동시에 탐구하려 한다. 따라서 동백꽃을 그린 것을 넘어 동백의 실존(existence)을 파악하려고 깊이 몰두하고 있는 작가의 내재된 자세까지도 읽어내도록 자극하고 있다. 그가 그린 여러 꽃 그림들에서는 이런 방식의 탐구적 태도에 따른 몰입이 담겨 있고, 이를 통해 자기 삶에의 자세가 투영된 깊은 성찰이 꽃이 가진 본질적 미학과 어우러져 드러나게 된다.
박 작가의 작품에서 ‘동경(憧憬)’과 ‘설레임’이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소나무 숲을 지나 멀리 원경(遠景)에 깔린 아득하지만 안정된 분위기에서 동경(憧憬)의 마음을, 해풍(海風)에 흔들리는 바닷가 해송(海松)의 여유 속에 표현된 평화롭고 정갈한 이미지에서 작가의 설레임을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작품 속에 비집고 들어온 햇빛이 만들어 내는 뜻밖의 시각적 인상은 작가의 마음이 자극받고 있다는 단서를 읽을 수 있게 하는데, 자기만의 스타일로 그린 소나무 작품들은 산뜻한 빛과 소나무의 조화가 아름답게 표현되면서도 밝고 건강한 감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그의 마음 속 진심이 드러난 심적 열망이거나 바람(wish)의 은근한 표시라 할 수 있다. 특히 소나무는 지조와 절개, 변치 않는 신뢰의 상징인데, 이렇게 자기 식으로 밝고 경쾌하게 소나무를 다루거나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은 박 작가에게 소나무가 주는 특별한 감정의 이입 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평생 자신을 의지하게 하고 이끌어 준 존재의 가시화(可視化)라고 한다면, 작가는 이를 은근하게 에둘러 표현하면서 여전히 자신의 기대와 동경을 담아낼 상징의 표상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또한 소나무와 더불어 한 화폭에 담은 푸른 바다의 이미지는 소나무에 연결된 그의 심중(心中)과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옅은 푸른색, 즉 ‘티파니 블루(Tiffany Blue)’라는 색은 흔히 ‘설레임’을 상징하기도 하는데, 작가는 은연중에 이런 내밀한 바람을 드러내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고상한 수국(水菊)의 모습은 최대한 수채화의 멋을 살려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하늘과 바다의 이미지가 푸른색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것 역시 작가가 추구한 주색(主色)으로서의 옅은 푸른색의 이미지는 곧 작가가 지향하는 상징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가 그린 작품 「알알이 맺은 포도송이」에는 포도 넝쿨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린 포도송이들이 짙은 청색으로 익어가는 중인데, 그 성장과 성숙의 변화과정에 있는 생명의 모습들이 동시에 표현되고 있다. 한 폭의 그림에 정리된 상태로 포착되었지만 생기를 띤 포도의 생장과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생물의 생동감이 부각되고 있다. 산속의 작은 개울엔 가을이 짙어져 가면서 낙엽이 떨어져 쌓이고 있다. 한편 처연하고 애잔할 장면을 밝고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다음 시기를 다시 기약할 수 있으니, 이대로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의 작품들에서는 여전히 지속하는 것들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찰하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다듬고 정리하려는 자세가 느껴진다.
작가는 70평생을 성의 있고 진지하게 자신의 생애를 살아왔음에도 그것을 조심스럽고 경건하게 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여전히 자기를 더 원하는 쪽으로 이끌면서 자기 내면에서 바라는 것들을 얻고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거리고 연마하려 하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크게(?)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세상에 드러내보려 하면서도 자기의 정체성과 존재를 내보이려는 것에는 아직도 머뭇거리기도 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에게는 아직 스스로의 생장과 성장을 지속해야 하며, 더 크게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그럴 기회가 앞으로 주어지거나 남아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또한 그간에 깨달은 대로 오래 이끌면서 여전히 탐구하고 터득하려는 대상이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으며 그것들이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나고 있기에, 그런 이유에서 그의 전시 작품들은 아름답고 빛이 나는데도 겸허하고 편안하며, 그래서 매우 수더분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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