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엿보기 14.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선택한 희망의 색,“노랑"

by 강화석

아를(Arles)시대의 “노란집”, “고흐의 방”과 “고흐의 의자”


“국중박”에서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소장 작품들을 전시한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꽃 피는 과수원>,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 등이 포함된 총 81점을 전시하는데, ‘19세기 초 인상주의부터 20세기 초기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변화한 예술에 대한 인식을 조명하는 전시‘라고 안내하고 있다. 고흐와 르누아르의 원화(原畵)를 볼 수 있는 드문 전시이니 12월 둘째 주중에 가보려고 한다.

그동안 고흐의 작품들이 몇 번 국내에서 전시된 적이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처 가보지 못한 채 지나쳤다. 해외에 나가 그곳의 미술관에서 이들의 작품을 보는 호사(好事)도 누려보지 못했으니, 그동안 헛것만을 보면서 그저 마음으로부터의 위로를 받았을 뿐이다. 이것도 한편으론 내게 주어진 것들일 것이다.

50.jpg “꽃피는 과수원” 1888년 여름, 아를시대, 유화. 국중박 전시도록 캡쳐

필자는 고흐를 떠올리면서 사람들의 호들갑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이런 천재를 그토록 외롭고 비참하게 한 장본인들일 대중들이, 그 사이 눈이 떠서 새삼 이리 칭송하며 알아보게 된 시차(時差)에 대해 안타까운 생각을 떨치지 못했기에, 스스로 웬 심통인가 싶으면서도 난데없는 부아를 삭일뿐이었으니 말이다. 믿을 수 없는 인간들 속에 어울려 살아가면서도, 그래도 애쓰면서 간절히 살다간 37살의 짧은 평생을 내가 애도한다고 한 들, 무슨 흔적이라도 있을까마는, 마음은 이 사람이 안 되었다는 생각에 간혹 북받치기도 한다.

고흐는 괴롭고 처절했을 생애 중에 그나마 그림을 통해 구원과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였다. 어떤 일도 뜻대로 이루지 못한 채 실패와 좌절의 연속인 가운데,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의 이상을 이뤄내고 싶었던 고흐는 자신을 지지하며 후원하는 동생 테오 덕분에 생애의 마지막 10년 세월을 그림에 매달릴 수 있었다. 고흐는 27세 때인 1880년에 이르러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에 간혹 스케치나 데생 등을 해 보기는 하였지만 제대로 배워서 한 것도 아니니, 1880년 8월 “테오”에게 ‘데생법’에 대한 책을 구해달라고 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시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부터 10년 동안 화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데, 무려 2,000점을 그렸으니 그림에 매달린 그의 집념과 열정은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해바라기.jpg “해바라기” 1888. 8. 아를시대. 유화. 파리 루브르미술관. 도록(서양미술전집13.한국일보사)캡쳐

고흐는 생애의 막바지 무렵인 1888년 2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1년 3개월을 남프랑스 아를(Arles)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물론 동생 테오의 경제적 지원 덕이었다. 도처(到處)를 떠돌던 지난날에 비하면 비교적 현실적인 안정이 주어졌던 시기라 할 수 있었다. 고흐는 임대한 집에 공동아틀리에를 꾸미고 화가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경제적 수익도 창출하는 화가공동체를 꿈꾸었다. 고흐는 알고 있는 여러 명의 화가들에게 자기의 뜻을 전하고 동참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고갱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이를 수락하는 회신을 보내오지 않았다. 고흐는 누구로부터도 호감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고갱”은 고흐가 동생 테오를 통해 이전에 소개 받아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다. 고갱은 현실적인 사람이었기에 테오가 형 고흐를 소개하려하자 테오가 화상(畵商)인 것을 고려하여 고흐와 만나는 것을 수락했을 것이다.


고흐가 아를에 머무는 동안에 그린 그림들은 190여 점에 달하는데, “해바라기”, “밤의 카페, 테라스”, “씨 뿌리는 농부”, “별빛이 흐르는 밤”등 대중들이 사랑하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노란집”, “고흐의 방”, “고흐의 의자” 등을 이때 그렸다. (이번 국중박 전시에 오는 “꽃피는 과수원”도 아를에서 그린 것이다.)

“노란집”은 고흐가 임대하여 살던 집을 그린 것이며, 그 집 안에는 “고흐의 방”과 고갱의 방, 그리고 공동 아틀리에가 있었다. 아마도 고흐는 부푼 기대감으로 이 특별한 대상들을 각각 그렸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특히 “고흐의 방”은 거의 같은 구도와 채색으로 3가지의 버전version을 그릴 정도로 애착을 보이기도 하였다.

노란집.jpg “노란집(반고흐의 집)”. 1888.9. 아를시대. 도록(서양미술전집13.한국일보사)캡쳐

그러나 고흐에게는 마지막 꿈이 될 운명인 “화가공동체”는 고갱과의 갈등과 다툼으로 두 달 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1888년10월에 아를에 도착한 고갱은 고흐와 싸운 후 그해 12월 떠나 버리자, 고흐가 꿈꾸던 공동아틀리에 운영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고흐는 고갱과의 불화를 자신의 귀를 자르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셍레미Saint_Rémy 정신병원에 스스로 입원하는 1889년 5월까지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1년 여 동안 190여점의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에게 덧 씌워지는 시련과 좌절, 고통 등에 더해 스스로에게 엄습하는 온갖 감정 찌꺼기들과 자기 존재에 대한 탐구, 자기위로와 치유를 시도하는 엄청난 자기수양의 과정을 겪어 내었다고 할 수 있다.

“아를의 침실”이란 제목이기도 한, 작품 “고흐의 방”을 보고 있으면 아찔할 만큼 공허하다. 노란색이 강조된 단순하고 수수하면서 지나치게 평범하고 초라한 침실에 불과한 그 방. 그 방은 여러 갈래의 기회를 품은 문들이 있는 방이었다. 그림의 정면에 나있는 창문으로는 마르티느 광장과 공원을 바라볼 수 있고, 왼쪽의 문은 고갱의 방으로 통하며, 오른쪽의 문으로는 2층에 있는 공동화실로 가는 계단으로 연결된다.


“노란집”과 “고흐의 방”은 역사적이고 의미 있는 유적과도 같은 장소라고 할 만하다. 평생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버림받았다고 할 만한 가련한(?) 고흐가, 결국 마지막이면서 유일한 시도에 그친 자기만의 이상향(함께 그림을 그리고 경제적 자립도 이룰 수 있는 화가공동체)을 설계한 상징적인 장소였으며, 이렇게 초라하기 짝이 없는 방에서 미술사에 길이 남을 천재화가가 마지막 생애기에 머물렀던 장소이면서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작품들을 그려낸 곳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도 없이 달랑 침대 하나, 작은 탁자에 빈 의자 두 개뿐인 방안엔 공허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밝고 환하지만 치장조차 없는 단조로운 그림을 보고 있자니 서글픔이 몰려올 뿐이다. 다만 그림의 오른쪽 벽에 걸린 두 개의 초상화중 하나는 친구 “외젠 보흐”의 초상으로, 고흐의 생애 중 유일하게 돈을 받고 판 한 점의 작품을 “외젠보흐”의 누나가 구입해 준 것이었다고 하니 이것으로 조금은 더 의미를 부여해도 되는 것인가? 싶다.

고흐의 방.jpg “고흐의 방” 1888.10. 아를시대. 유화. 파리 인상파미술관.도록(서양미술전집13.한국일보사)캡쳐

아무튼 이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니, 뜬금없고 아이러니irony하게 장자(莊子)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 떠오른다. “어떠한 인위(人爲)도 없는 자연 그대로의 세계.” “있는 듯 없는” 이 방에는 고흐의 마지막 꿈을 실현해 보려는 그의 간절함이 담겨있기도 할 것이며, 동생 테오가 매월 보내는 생활비 50프랑 중에서 15프랑을 월세로 주고 임대하여 마련한, 그의 마음 속 이상향으로 가는 통로이거나 그 현장이었던 유서(由緖)깊은 방이라는 상징적 스토리가 배어있다.


그러나 고흐나, 고흐를 특정할 흔적도 없이, 평범할 뿐인 방의 모습과 그 방안의 가재도구들을 그린 이 그림에서 “無爲自然(무위자연)”을 읽어낸다는 것이 지나친 발상에 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흐가 평생 가져보지 못했던 것, “따뜻한 관심과 평가”, “주위사람들의 지지와 사랑”, “돈으로부터의 자유로움”, “여인들과의 사랑”, “자기 생각과 행동에 대한 이해와 동조”, 하다못해 자기를 낳아 준 친어머니에게 “아들로의 인정이나 사랑”등 그 무엇도 제대로 받거나 누려보지 못한 철저한 “무소유의 존재”라 할 수 있는 고흐이면서, 방안의 의자조차도 그저 빈 의자일 뿐이니, 고흐의 방을 통해서 그의 존재를 시각적으로는 실체를 확인할 수조차 없는 것이기에, 따라서 고흐의 방은 “무위(無爲)”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고흐의_의자-jschoe69.jpg “고흐의 의자” 1888.12~89.1. 아를시대. 유화. 런던 테이트 화랑.

고흐는 그림을 그리면서 스스로도 자기(self)와 자아(ego)를 찾기 위해 애를 썼을 뿐 아니라, 자기개념(自己槪念, self-concept)이나 자기애(自己愛,self-love)를 찾고 유지하려는 탐구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는 있으나, 당대에 고흐의 삶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소외된 채 무위(無爲)한 존재로서 짧은 생애를 스스로 마감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텅 빈 고흐의 방을, 비어있는 고흐의 의자를 바라보며, “무위(無爲)”를 느끼고 확인하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유위(有爲)”라는 것도 ‘인연의 화합으로 만들어 지고 조작되는 현상’을 의미하면서, 무위와 유위는 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며 인식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일 뿐이니, 공교로운 것이지만 이런 인식은 서로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어 있으되 채워져 있고, 채우고자 하여도 비어있는, “무소유”의 개념을 고흐나, 고흐의 방, 그리고 고흐의 의자를 바라보면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M. Foucault)가 제안한 세 개의 공간개념을 통해 ‘현실적인’ 공간인 “호모토피아(Homotopia)”와 ‘이상적인’ 공간으로서 “유토피아”를 구분할 수 있다면, 장자(莊子)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에 대해 ‘유토피아(utopia)’의 한 양상으로 분석하거나, 혹은 ‘내면세계의 초월을 통한 미적 환상의 세계’라는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는 관점이 존재한다면, 푸코가 이를 혼합한 공간개념인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고흐의 빈 의자나, 비어있는 방을 바라보며 떠올린,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과 관련되는 개념으로서 “유토피아(utopia)”나 “호모토피아(homotopia)”를 동시에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므로, 오히려 푸코의 “헤테로토피아”가 더 적합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공간으로의 “호모토피아”와 완벽하고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아우르거나, 여타의 공간들과는 절대적으로 다른 “헤테로토피아”가 오히려 적절한 연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따라서 100여 년 전 고흐가 꿈꾸었던 이상적인 공간으로서의 고흐의 방은 지금 작품으로 남아서 “실재하지 않는 상상력의 공간으로서 사람들이 꿈꾸는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신은영 무소유.png “무소유” 신은영. 아크릴 오일. 2025.10. 인사아트센터

한편, 지난 달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제22회 씨올정기전(10/29~11/3)에서 보았던 신은영 작가의 작품 “무소유”에서 읽을 수 있었던 영감 역시 우연한 것이지만 고흐에게서 받은 이러한 통찰을 적절하게 대신해 주고 있으니 놀라웠다.

신은영 작가가 내면의 심상을 재현해낸, 작품명 “무소유”라는 추상작품은 “빈 의자”를 시각적 모티브로 삼아 “무하유지향”의 유토피아적인 위안의 장소이거나,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의 혼재된 공간으로서의 강력한 암시가 전해지도록 표현해 내고 있었다. 이런 무위한 존재에서의 심적 표상을 ‘의자’라는 물리적 형태에 담아, ‘유토피아’의 한 양상으로 분석하거나, 혹은 ‘내면세계’의 초월을 통한 미적 환상의 세계를 암시하는 절묘한 시각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현실이지만 동시에 반(反)현실”인 “헤테로토피아” 인 것이다. 또한 어떤 경험으로 구성되는 예술적/미적 ‘유희’의 공간으로의 “헤테로토피아”이며, ‘물리적 공간’과 ‘환상의 공간’을 아우르는 ‘체험된 공간’(lived Space)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언뜻 명확해 보이는(필자의 일방적인 생각에 불과할지라도) 전달력을 가진 통쾌한 사유적 인식을 담아내고 있었는데, 나아가 안온(安穩)해 보이지만 열정적인 에너지energy까지 더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곧 붉은 기운은 생명의 기운이요, 화기(和氣)인 것이며, 혹은 끓는 에너지는 잠시 머무르는 일시적 존재가 아닌 영원한 존재로서의 기운임을 우리 인식이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눈에 드러난 무위한 것일 수 있는 “의자”의 형체를, 단지 상징으로서의 존재이거나 허상(image)이기도 하지만, 누구라도 거쳐 가는 특정의 순간이거나 영원한 존재임을 복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따라서 이 “무소유”를 담아낸 무위한 의자에는 유위함이 존재하면서 강력한 에너지가 그림을 꽥 채우고 있으니 필자와 같은 둔한 이 조차도 가슴이 묵직해짐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공교롭게도 고흐가 매우 짧게 무위한 행위처럼 남긴 순간의 영감조차도 시.공간을 넘어 어디서든 절대적으로 다른 고흐만의 세계를 유위하게 지속하는 “헤테로토피아”의 공간이 되어 시대를 초월하여 교감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임이 분명하다. 또한 저 멀리 네덜란드의 옛날 작가가 겪어낸 의자와 한국의 현대 추상작가 신은영이 이입(移入)한 의자에서 이런 식으로 복합적인 사유와 성찰의 뜻이 공통적으로 담겨있다고 느껴보는 것도 누구에게나 허용된 자유로운 상상의 힘이요, 혼재의 미학이면서, ‘시간에 대한 과학’이라 할 헤테로크로니(hétérochronie, 이질적 연대기)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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