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균의 시 ‘설야(雪夜)’를 읽으며…
며칠 전(12/4) 밤, 눈이 내렸다. 마치 폭설이라도 내린 듯 잠깐 사이에 꽤 많이 쌓였는데, 첫눈 치고 예전에 이런 적이 있었나 싶게 제대로 내려 겨울에 어울리는 설야(雪夜)가 펼쳐졌다. 도시의 밤은 고즈넉이 내리는 눈을 온전히 바라보기에는 주위가 부산스럽기는 하지만,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심정(心情) 한 곁에 슬그머니
동요(動搖)가 이는 것을 숨길 수는 없다.
이리 눈이 내리면, 그것도 한 밤중에 내릴 때면, 놀랍게도 기억에 남아있는, 오래전 읽었던 김광균의 시
「설야(雪夜)」가 떠오른다.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 가며/서글픈 옛 자취인 양 흰 눈이 내려//
하이 얀 입김 절로 가슴에 메어/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내리면//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흰 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김광균의 시 「설야(雪夜)」 전문, 조선일보(1938)
그저 한편의 아름다운 서정시라 해도 될 만치 술술 읽히는, 마음을 착 가라앉게 하는 시이다. 특히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라는 시 중간 부분의 이 구절은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인 청소년 시절에, 아마도
가슴이 턱 막히게 했을 법하게 마음에 가한 자극이 강렬했을 것이다.
순백의 순결을 떠올리는 순간에 불쑥 치고 들어오는 이 에로틱erotic한 감성이란 무엇인가? 짓궂은 예술가의 예리한 속셈과도 같은 솔직한 고백. 순진한 감성에 뒤섞여 있는, 이 또한 순수 그 자체일 본능의 정서일 테다. 이런 감성으로 독자들을 자극하니 누군들 소홀히 할 수 있었으랴. 이 정도의 영향력이었으니 지금도 겨울에 눈이 내리면 이 시구(詩句)부터 떠오르는 것인가? 어린 10대의 가슴을 당황시킨 이 에로틱erotic한 표현은 아무래도 직접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아닌, 글로 전달되는 청각적 메시지이지만, 머릿속에서는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처럼, 그리고 그를 즐기는 관음(觀淫)의 일탈마냥 상상 속에 빠지게 했을 것이다.
이처럼 김광균은 뛰어난 회화적 상상력을 특유의 낭만적 이미지즘으로 보여 주면서 그만의 고유한 서정성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이 시는 김광균이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이다. 이미 1926년 13살 어린(?) 나이에 시인으로 등단하여(「가신 누님」, 中外日報) 대중일간지나 동인지에 시를 발표하던 기성시인인 그를 더욱 대중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1939년 발간한 첫 시집 『와사등(瓦斯燈)』(남만서점, 1939)에 실려 있다.
시는 우선 “말의 재미를 통해서 즐거움을 준다.(이남호, 문학평론가)”고 한다. 물론 이때의 “말의 재미”를 시 「설야」의 중간에 나오는 이 구절과 관련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구절은 재치나 재미보다는 나름의 복잡하면서도 세련된 비유, 즉 절묘하기까지 한 은유와 상징을 담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즐거움”의 반응도 다를 테지만, 이런 세련되고 깊은 말의 재해석은 새로운 상상력을 발동시키면서 “차단한”(이때 “차단한”이란 수식어는 김광균이 조어(造語)한 시어로 흔히 ‘차고 단단한’, ‘차디찬’, ‘차단(遮斷)한’ 등으로 해석하려는 여러 견해가 뒤섞여 있지만, 문학평론가 유성호 교수는 ‘차단한’에 대해 “흐릿하고 몽롱한, 실체가 분명치 않은 느낌을 전하는 말”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매우 와 닿는 견해라 할 것이다) 상상의 나락(奈落)
속으로 이끌어 가는 놀라운 언어적 유인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는 어찌 보면 전형적인 낭만주의 시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김광균은 한국문단에서 모더니즘 시운동에 참여하여 “시는 하나의 그림(회화)”이라는 시론을 전개하며 주지적(主知的)이면서 이미지적인 시를 발표하였던, 1930년대 한국의 대표적 모더니스트modernist 시인이라는 점에서 놀랍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30년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들이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 등이라 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 정지용과 김기림은 중도에 모더니즘 시풍을 버린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반면에 김광균은 그대로 남아 모더니즘을 고수한 시인이라 평가받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본래 낭만주의가 고전주의 등에 반발하여 생생한 표현과 감정을 전달하려는 것을 중시하는 문학관을 갖고 있는데, 이에 반해 모더니즘은 반(反)낭만주의적 특성이 뚜렷한 사조(思潮)운동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철저하게 낭만주의적 속성을 극복하면서 ‘문화적 현대성’ 개념을 통해 미적 태도를 내세우려 한다. 또한 문화적 현대성을 ‘미적 현대성’이라는 개념과 동일시한다면 이를 주관적 시간을 중시하는 삶의 태도를 의미하고, 따라서 김광균이 지향하는 모더니즘은 미적 현대성을 지향하는 ‘미적 모더니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현대시에서 김광균 등과 같은 모더니스트 시인들이 활동한 1930년대에 특히 미적 현대성이 드러나고 있지만, 서구의 현상과는 다르게 나타나는 것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모더니즘의 특성인 반(反)낭만주의적 속성으로서 주지적이며 시각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시풍은 여전한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현실에서 나라를 빼앗긴 특수한 상황이라는 상실감이 컸고, 이를 단지 고향이나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표현되었다고 해도, 한편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는 일제 치하에서 제대로 시대를 이해하고 신념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지향할 만한 사상으로서의 시학을 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작품에 대한 기술적 접근이 대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광균 등의 시에서 나타나는 이런 “상실감”과 함께 “군중과 고독”이라는 도시적 감각과 관련되거나, 다시 유토피아적인 인식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광균의 대표시들 중에 1936년에 발표한 시, 「와사등」에서는,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내 호올로 어딜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 여름 해 황망히 나래를 접고/늘어선 고층(高層)창백한 묘석(墓石)같이 황혼에 젖어/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클어진 채/사념(思念)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중략)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기/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리어 있다.
-와사등(瓦斯燈)/김광균, 조선일보(1936)
첫머리에서부터 당시의 도시문명 속에서 방향을 상실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를 담아내면서 “사념(思念)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라는 사고(思考)의 공백상태에서, “내 어디로 어떻게 가라는 슬픈 신호(信號)”에서처럼 현재에 공간에서의 이동을 의도하고자 하지만, 실제의 행동은 미래를 암시하므로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통해 절망과 좌절을 표상하고 있다. 이렇듯 김광균이 당장에 목도하는 현대성의 이미지는 황량하고 공허할 뿐이다.
한편 1940년에 발표한 「추일서정(秋日抒情)」에서도,
낙엽은 포—란드 망명정부의 지폐/포화에 이즈러진/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새로 두시의 급행차가 들을 달린다.//
(중략)
자욱--한 풀버레 소리 발길로 차며/호을로 황량한 생각 버릴 곳 없어/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편에/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여 간다.
-추일서정(秋日抒情)/김광균, 「인문평론」(1940년 10월)
김광균은 “낙엽”을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에, “길”은 “구겨진 넥타이”, 열차의 매연은 “담배 연기”, “구름”은 “셀로판지”에 비유하면서 그간 상투적일 수 있었을 가을의 소재에 대해 현대적 감각을 입히며 한국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미지로 변주해 내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새롭고도 이질적인 감각적 즐거움을 느끼는 미적 효과를 체험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모더니즘은 전통적 서정이 아닌 세련되고 도시적인 감각으로 대상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나 인식으로 재탄생 시키려 한다. 독자들은 도시 속에서 “군중의식”을 체험하게 되고, 군중의식에는 고독감이 동반하게 되는데, 군중이라는 개념은 고독이라는 개념과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야」에서는 그 표현의 수사(修辭)나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이나 독창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으면서도 지극히 서정적인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주관적인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낭만주의적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눈 내리는 정경(情景)을 시각화하고 이미지화를 시도하면서도 그 속에 몰입하여 자연과 동화되거나 최소한 고향의 내재한 감성에 빠진 채 작가고유의 서정성을 담아내고자 하고 있다. 이는 모더니즘이 낭만주의를 지양(止揚)하는 반작용에서 일어난 문예운동이라면, 김광균의 이러한 감정과잉적 서정주의는 한편 모더니즘과는 거리가 있는 모호한 문학적 태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김광균의 “낭만성”에 대해 당시의 모더니즘 문학계 내에서도 “감정의 범람”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것은 문학사의 기록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우리는 언제나 지나간 것에 관대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김광균의 낭만적 이미지즘을 두고 “서구 이미지즘의 건조한 이미지가 거부했던 단순한 비애감과는 궤를 달리한다. 한국적 정서를 탁월하게 담았다”고 평가하는 평자(김유중, 서울대)도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 시는 김광균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에서처럼, 도시적 감각이나 이미지를 통해서 읽을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폐쇄성이나 갈등, 방황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눈 내리는 상황을 스케치하듯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차분하면서도 회고적인, 그리고 자기 성찰적인 감정의 동요를 읽을 수 있으며, 따라서 당시의 모더니즘 시운동을 이끌어간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시인으로서의 김광균의 전형적인 시와는 결을 달리하는 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는 시청각적 비유를 떠올린 것이나,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에서처럼 낭만주의적 이미지를 동반한 수사를 통해 눈 내리는 공간에서의 시각적 관점으로 읽어낸 이미지화는 매우 탁월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김광균이 보여주는 낭만적 모더니즘이라는 구분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준 서정적 낭만주의 감성은 시대적 문예조류와 상관없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자연에 대해 보여준 깊은 몰입과 아름다운 동화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눈 내리는 현장을 꼼꼼히 시를 통해 시각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이미지묘사를 중시하는 이미지즘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래서 “모더니즘에는 센티멘탈(서정)이 있으면 안 되고 내용에 편중되면 안 된다”는 모더니스트들의 반발이 있기도 하였으나, 김광균만의 고유한 서정성을 담아 자기 내면의 영감과 감흥을 시속에 녹여냄으로써 한국적 낭만의 모더니즘을 실천한 시인으로 평가되기도 한다는 의견에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문예사적 논의와 상관없이 첫눈 내린 날에 옛날 시를 떠올리면서 시적 감흥에 취할 수 있었던 즐거운 기억을 남기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강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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