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간을 담고 인생을 담는 추억,

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by 강효숙

91. 갈등

젊은이들의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기보다 안쪽에서 조용히 자란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보다 무엇이 되지 말아야 하는지를 먼저 배우는 시대, 비교는 일상이 되었고 불안은 개인의 책임이 되었다. 꿈을 말하면 현실 감각이 없다는 말을 듣고, 현실을 말하면 열정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모순 속에서 젊음은 자신을 믿고 싶은 마음과 의심해야만 살아남을 것 같은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린다. 내적 갈등은 실패 때문이 아니라 방향을 너무 많이 요구받기 때문에 생겨난다.

변해버린 친구, 시간이 지나며 변한다. 혹은 변하지 않은 나 때문에 더 낯설어 보인다. 같은 꿈을 이야기하던 친구가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성공하거나 너무 현실적으로 되었을 때, 갈등은 질투도 미움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거리감으로 찾아온다.

젊은 날의 갈등은 관계를 붙잡을지, 조용히 놓아줄지를 결정하는 순간에 있다. 모든 인연을 끝까지 끌고 갈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성숙이다. 변한 친구를 원망하지 않고 변한 나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관계 속 지혜다.

부부의 갈등은 대개 큰 사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한마디, 반복되는 침묵, 너무 익숙해져서 묻지 않게 된 마음에서 자란다. 사랑이 식어서라기보다, 서로의 하루를 설명할 에너지가 부족해진 결과다. 함께 살수록 더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쉽게 단정하게 된다. 현대의 부부들은 같은 공간에 살면서 서로 다른 세계를 건너고 있다. 하루를 공유하지만, 마음은 나누지 못한 채, 각자의 침묵으로 삶을 이어간다. 갈등은 폭발하지 않기에 더 오래 남고, 해결되지 않기에 익숙해진다.

이 침묵은 비단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현대인들은 모두 어딘가 말할 곳을 잃었다. 관계는 많아졌지만, 대화는 줄었고, 연결은 쉬워졌는지만 이해는 어려워졌다. 이 안타까움이 바로 우리 시대의 가장 조용한 슬픔이다.

자식과의 갈등은 더 복잡하다. 사랑이 전제이기에 더 아프다. 아이의 선택이 걱정으로 보이고, 부모의 조언이 간섭으로 들리는 지점에서 서로는 같은 방향을 보며 다른 말을 한다. 갈등은 세대 차이가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달라진 데서 생긴다. 그리고 이 모든 갈등 위에, 초고속으로 변하는 시대가 덮쳐온다. 어제까지 유효했던 기준이 오늘은 무력해지고, 배워온 삶의 방식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불안. 자리는 있는데 설 자리가 없는 느낌,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 앞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막막함. 이 시대의 갈등은 외부와의 충돌이 아니라 내가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인가라는 내면의 싸움이다.

갈등을 없애는 삶의 지혜는 없다. 다만 갈등을 해석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모든 갈등은 나를 부정하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정의하라고 요구한다. 침묵 대신 질문을, 회피 대신 성찰을 선택할 때, 갈등은 상처가 아니라 경계선이 된다. 넘어야 할 벽이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알려주는 표식이 된다.

형제의 갈등은 오래 남는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수십 년의 기억을 건드린다. 비교, 역할, 기대, 책임이 사랑보다 먼저 쌓여 있기 때문이다. 형제는 선택한 관계가 아니라 주어진 관계이기에 더 깊은 상처와 더 큰 책임을 함께 가진다. 지혜로운 삶은 형제를 완전히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거리를 존중하며, 필요할 때, 돌아올 수 있는 자리만 남겨두는 것. 그 여백이 관계를 오래 살게 한다.

지혜로운 삶이란 갈등이 없는 삶이 아니다. 갈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젊은이에게 지혜란 빨리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견디는 힘이다. 모든 갈등은 나를 부수기 위해 오지 않는다. 나의 기준을 점검하게 하고, 관계의 경계를 다시 그리게 하며, 삶의 방향을 묻기 위해 온다.


결국 지혜로운 삶은 갈등을 이기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는 삶이다. 변한 친구 앞에서도, 어긋난 형제 사이에도, 흔들리는 내면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조용히 지켜내는 것. 그 중심은 확신이 아니라 정직함에서 나온다. 젊음의 갈등은 상처가 아니라 성장의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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