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담고 인생을 담는 추억,

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by 강효숙

90. 시간이 남겨준 온도

까마득한 젊음.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날들, 젊음은 빛이 아니라 무지의 용기였음을 깨닫는 회상과 그때의 사랑, 상처, 선택을 미화하지 않고 담담히.


젊음은 언제나 뜨거웠지만, 그 뜨거움이 얼마나 많은 것을 태우는지 알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사랑을 선택했다고 믿었지만, 실은 밀려다니고 있었을 뿐이다.

‘라흐마니노프’(Rachmaninoff)의 음악을 들으면서 인생의 격랑을 사건보다 내면의 파문으로 표현, 폭풍 속에 기억, 휘몰아치되 무너지지 않는 감정, 인내와 절제, 참아낸 것이 아니라 품어낸 시간, 절제는 억압이 아니라 감정을 끝까지 데리고 가는 태도.


그 음악을 들으면서 가장 깊은 그리움은 말이 없다는 점을, 음악이 멈춘 뒤의 여백이 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음악은 위로가 아니라 동행한다. 누군가 대신 울어주지 않지만, 함께 견뎌준다. 눈물은 흘려야만 슬픔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붙잡지 않아도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음악은 말하지 않음으로, 나 자신을 끝까지 데려가도록 도와준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다시 듣게 되는 것은, 젊음이 끝난 뒤에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음악을 감정으로 들었다. 슬프면 슬프다고 느꼈고, 격정적이면 마음도 함께 요동쳤다. 그러나 지금의 귀는 다르다. 이제 그 음악 속에서 울지 않는 슬픔과 말하지 않는 사랑을 듣는다.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야 감정은 소리가 아니라 침묵의 무게로 남는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음악이 마음을 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음악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 경험.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라흐마니노프가 다가오는 방식이다.

젊음은 언제나 폭풍 한가운데 있었다. 사랑은 뜨거웠고, 선택은 성급했으며, 후회는 뒤늦게 도착했다. 그 시절의 나는 감정을 견디는 법을 몰랐다. 사랑은 소유해야 한다는 믿었고, 상실은 반드시 울음으로 증명해야 한다고 여겼다. 세월은 나를 다른 자리로 데려왔다.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처럼, 격정은 겉으로 터지지 않고 내부에서 오래 맴돌며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을. 인내는 젊음의 시절에는 참는다는 것은 지는 일이라 여겼다. 사랑도, 미안함도, 그리움도 침묵 속에 남겨두었다. 음악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아 있는 잔향처럼, 젊음의 기억은 그렇게 내 안에서 늙어갔다.

노년은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함은 공허가 아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으며 그 시절의 나를 조용히 이해한다. 서 틀었고, 과했고, 순수했다. 그 모든 선택이 지금의 나를 데려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누군가의 말이 아닌, 내 안의 목소리를 듣게 했다. 노년의 시간은 뜨거운 열정도, 날 선 슬픔도 아닌 미지근한 온도로 마음에 남는다. 그것은 식어버린 것이 아니라, 오래 머물러 사람의 체온과 비슷해진 감정이다.

이 음악을 들 때마다 나는 그 온도를 느낀다. 젊은 날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시간이 지나서야 남는 감정의 체감. 지나온 삶이 어떤 온도로 남았는지를 조용히 확인하게 한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으며 깨닫는다. 이 곡이 가진 아름다움은 폭발이 아니라 지속에 있다는 것을. 선율은 격정적으로 솟구치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는다.

사랑 또한 그러했음을, 이제야 이해한다. 오래 견뎌낸 마음만이 결국 따뜻함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이 곡은 슬픔을 흘러내리지 않고, 낮은음으로 가라앉아 오래 머문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 끝내 전하지 못한 고백들이 침묵 속에 눌러앉는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로 남아 있다. 이것이, 시간이 남긴 슬픔의 형태다.

사랑은 불꽃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체온으로 남는다. 슬픔은 눈물로 시작되지만, 끝내 침묵으로 살아간다.

나는 오늘도 음악을 듣는다. 젊음의 격정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이 조용한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시간이 내게 남겨준 가장 진실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젊음은 지나갔지만, 그 시절의 진실은 음악처럼 남아 오늘도 조용히, 끝까지 나를 살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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