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4.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고 싶지 않은 사람 당신
만약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현재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느냐는 질문에 선뜻 예스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체로 강한 부정이거나 또는 다시 태어나지 않겠다고 어깃장을 놓아서 묻는 사람을 당황케 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많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남편이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난 후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49세라는 이른 나이에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과 항암 치료, 그리고 간이식 수술까지. 숨 돌릴 새 없는 병시중에 최선을 다했지만 홀로 남겨진 나에겐 회한만 쌓인다.
문화생활과는 아예 담을 쌓고 오로지 직장에만 충실한 고지식한 사람, 그래서 여행 한 번 제대로 가본 적 없다. 요즘처럼 가을바람이 부는 계절이면 아침마다 마당을 쓸던, 쓱 쓱 하는 빗자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날에 “현아 엄마.”하고 나를 부르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모습도 눈앞에 생생하다.
건강을 잃은 후에야 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새벽마다 산엘 오르곤 했는데 그때 왜 동행해주지 못했을까. 우리는 결코 포기하거나 지치지 않았는데 다만 주어진 순간마다 완벽하게 함께하지 못한 일들이 후회로 남는가 보다. 이미 병색이 짙어진 초췌한 모습으로 운전하는 내 옆 좌석에 앉아 병원을 오가던 일도 추억의 한 커트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삼 남매를 낳고 키우면서 성격 차이와 의견 대립으로 다툴 때면 _(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나 봐라!). 하고 속으로 되뇌던 푸념도 돌아보니 다 허무하고 부질없게 느껴진다.
가을도 짧고 추억은 길다고 했다. 한로만 지니고 나면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가을을 살갑게 느끼게 한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워가는 것, 하루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 한다. 우리 인생도 가는 세월 속에 성숙과 완숙으로 만추의 곱게 물든 단풍잎같이 아름답다. 비록 절정에 머무는 시간이 짧더라도 낙엽은 기꺼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 봄을 잉태한다.
황혼으로 물들어 가는 세월의 바퀴에 얹혀살고 있다. 바래지 않은 남겨진 삶의 자국도 낙엽이 날리고 어제도, 오늘도 흘러간다. 누구에게나 한 번 왔다가는 생의 여로가 서성인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효채 교수의 저서,_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_을 보면 죽음은 소멸이 아니고 옮겨감이라고 한다. 즉 인간의 육신은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데기에 불과하며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또한 ‘죽음학’의 효시인 로스 박사는 오랜 임상경험과 수많은 근사체험자의 사례를 연구 분석하여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의식이 존재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였다.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계신 하나님과 천국의 존재를 의심해 본 적은 없지만, 종교와 상관없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며 영생에 대한 확신이 더욱 깊어졌다. 언제가 내게도 죽음이 찾아오면 또 다른 세계에서 그리운 이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그땐 애증이 뜨겁게 교차하는 부부가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반갑게 만나리라 확고한 믿음이 있기에.
“삶이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라 한다. 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자 신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