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5. 내 친구 순아
인생의 뒤안길에 남겨진 것들! 상처, 배신 좌절, 결국 이런 것들은 흘러가고 생의 모든 아픔을 치유하는 데에는 시간이 보약인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인간은 성장하는 것이다.
내 친구 순 아가 그립다! 순 아는 깔끔하고 단아한 긴 머리에 넓은 이마에 큰 눈을 가진 친구였다. 직장 동무였던 순 아는 나와 속마음을 주고받는 친구였다. 내가 먼저 결혼한 뒤에도 휴일에는 먼 곳에서부터 자주 놀러 왔었다.
어느 날 내가 살던 옆집에 하숙을 운영하시는 분에게서 순 아를 소개받았는데 그것을 계기로 순아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분은 H 대학을 나온 건설회사 소장으로 그 지역으로 발령받아 살고 있을 때이다. 키가 크고 과묵한 성격으로 순아와 서로 잘 맞아 좋아했었다.
순 아 집은 지방이었고, 시댁은 서울이라서 서울에 사시는 우리 외삼촌 집에서 상견례 음식을 장만하여 순아의 시댁 식구를 대접해 드렸다. 그 후에 내가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순아 역시 1년 후에 내 근처로 이사 왔었다. 매일 전화하고 자녀들과 같이 오가며 재미있게 지냈다. 순아는 1남 1녀를 가졌고, 남편과 화목하게 부족함 없이 잘 지냈다.
너무나 자주 만나서일까? 어느 날 서로의 오해와 상처로 인하여 순아와 헤어졌었다. 너무나 믿었던 마음에 실망과 상처로 내 마음을 닫아버렸다. 내가 순아 곁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후에 20년 만에 순 아를 만났는데 그동안 나를 잊지 못하고 후회 했었고,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내 마음도 후회가 되었다. 내가 선교 봉사활동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너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같이 가겠다고” 하며 내 손을 꼭 붙잡았다. 그동안 순 아가 어떻게 지냈는지 많은 사연을 들었다. 그중에는 황당하고 가슴이 아픈 일들도 있었다. 순아는 그토록 당당했던 모습은 없고 옷차림새와 말하는 행동을 볼 때 어딘가 기가 없는 것 같아 내 마음이 괴로웠다. 순아는 나와 이야기를 더 나누었으면 했는데 내가 약속이 있어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 후에 시간이 지나서 전화했지만, 없는 번호였다! 순 아를 만나려고 해도 찾을 길이 없었다. 좀 더 빨리 전화했더라면. 아니면 우리 집에 같이 왔었으면.?’ 내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삶을 살며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느덧 20년이 또 흘러서 40년이 지난 고희가 되어버린 나이! 조그마한 오해와 상처로 좋은 친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가도, 다시 만날 수 없는 친구.
지난날 속이 좁고 부족했던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숙연함이 느껴진다. 인생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시작도 될 수도 있고 끝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절망한 사람에게는 늘 닫혀 있고, 희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늘 열려 있다고 한다. 오늘도 내 친구 순 아를 그리면서 그 단아한 모습을 언젠가는 꼭 만나리라는 꿈을 가져 본다.
여백은 삶의 흔적을 만드는 일이다. 누군가 그립고, 인생이 되돌아 손짓할 때, 그 여백 속에서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