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12. 왜 보내야 하는가!
우리는 노령 사회의 일원이다. 거리에서 노동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외로운 노인이 많다. 시린 손으로 폐지를 수거한 수레를 끌며 힘겹게 언덕을 넘어가는 노인을 본다.
인간은 누구나 두 개의 자아를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하나는 사회적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 자아라고 한다. 개인적 자아는 인간이 본래 타고난 욕망의 힘에 따르는 자아이고, 사회적 자아는 사회적 가치 질서에 따르는 자아라고 한다.
시대가 변하여 가족이 병구완하기 어렵고 저희 살기 바쁜 자식들이 부모에게 매달리기도 더욱 힘든 세상이 됐다. 특히 치매는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 선진국처럼 국가에서 시스템이 잘 갖춰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장려해서 품위와 존엄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요양원 가면서 죽으러 가는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요즈음 노인들에게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이 먼 길 가시기 전에 거쳐야 하는 곳이 되었다. 인생은 본시 흙이니 흙으로 돌아간다. 흙은 허물어지고 부서지고 갈라져서 먼지로 날릴 것임을 안다.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죽음이다. 인간의 시간이란 어쩌면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그 크기에 따라 파도 소리가 달라진다. 파도 소리도 바람과 어우러져 난다. 바람이 세면 파도도 커진다.
아버지는 요양병원 침상에서 고되고 힘든 여정에 용케 버티어 온 영혼이 오르막길을 내디디고 신음하고 보여주는 이 없고 알아주는 이 없는 허기진 그림자 하나 자식들의 임종과 함께 침상에 누워 쓸쓸히 99세에 인생을 마감하셨다.
아버지는 큰 딸인 나에게 가끔 들려주셨던 말씀이 생각이 난다.
자욕양이친부대(自慾梁李親部大)
자식이 부모에게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효도를 다 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 부모가 살아계실 때 효도를 다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나무가 고요하게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 자식이 부모님을 공양하고 싶어도 부모님이 별세하여 세상에 계시지 않음이다.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리지 못했던 일들을 후회하면서 지금도 눈을 감으면 엄마와 함께 음악을 틀어놓고 식사하신 모습이 그리워진다.
내 인생도 어느덧 고희를 넘어 산수를 바라본다. 이젠 육신이 생각을 따르지 않고, 생각이 육신을 따르지 못한다. 세월은 오늘이 어제가 되고, 인생의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삶은 순간마다 스치고 지나간 바람의 자국들이 온몸에 누더기 젖는다. 모두가 세월의 흔적이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고 옮겨감이라고 한다. 즉 인간의 육신은 영원불멸의 자아를 둘러싼 껍데기에 불과하며 죽음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왜 보내야 하는가!” 우리도 언젠가 그 길을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