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77. 내려놓음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선택 앞에 선다. 어느 길을 택해야 옳을지,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후회하지 않을지, 고민 속에서 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4~50대는 사회적 관계가 가장 풍성하게 얽히는 시기다. 직장, 가정, 공동체 속에서 책임과 역할이 교차하며, 때로는 무겁게 짓누른다.
이때, 내려놓음은 단절이 아니라 조율이다. 불필요한 집착과 지나친 자존심을 내려놓을 때, 관계는 더 깊어지고, 사회성은 성숙해진다. 이는 단순히 사람 사이의 유연함을 넘어, 자신이 서야 할 자리와 물러서야 할 자리를 분별하는 지혜로 이어진다.
퇴직 이후의 삶, 또 다른 무대가 열린다. 일의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세상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껏 붙잡고 있던 경쟁과 의무의 무게를 내려놓고 새로운 자유를 맞이한다는 의미다. 젊은 날엔 ‘해야 할 일’이 삶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이 삶을 빚어낸다. 이는 결코 공허한 여유가 아니라, 더 깊은 사색과 나눔, 자신을 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성숙한 자유다.
과거의 성공은 ‘내가 얼마나 앞서느냐’에 달려있었다면, 오늘날의 비전은 ‘함께 얼마나 멀리 ’가느냐‘에 달려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집착을 내려놓으면, ’공유의 삶‘ 속에서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모든 것이 빨라지는 시대, 속도를 내려놓을 때, 사람들은 깊이를 얻고, 진정한 창의와 통찰은 그 고요 속에서 태어난다.
풍요의 시대라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은 메말라 가고 있다. 각자의 권리와 주장이 앞서다 보니, 부부의 대화는 점점 짧아지고, 가족의 저녁 식탁은 고요한 침묵으로 채워진다. 40대에는 일에 쫓겨 마음을 나눌 시간이 없고, 50대에는 서로의 상처가 켜켜이 쌓여 말 한마디가 곧 다툼이 된다.
60대에 이르면, 긴 세월 곁에 있었음에도 마음의 거리는 더욱 멀어져, 풍요 속에서 오히려 가난한 삶을 사는 우리를 보게 된다. 상대를 향해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 내 마음속 자존심을 내려놓는 겸손, “내가 옳다”는 주장하나를 내려놓을 때,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잃었던 대화가 다시 시작된다.
풍요 속에 살면서도 감사하지 못하는 까닭은, 늘 더 많은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내려놓음은 부족함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의 소중함을 다시 보게 하는 눈이다.
건강하게 곁에 있는 배우자,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가족,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
그것이야말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물이다.
내려놓음은 결국 사랑을 회복하는 길이다. 내 자리를 주장하기보다 상대의 자리를 인정해 줄 때, 삶의 건조함 속에 다시 샘물이 솟는다. 내려놓음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더 깊은 사랑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결국, 사랑을 회복하는 길이다.
우리에게 맡기신 자녀들은 내 소유물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을 이어받아 세상 속으로 나아갈 존재들이다. 부모가 먼저 내려놓음의 본을 보일 때, 자녀들은 권리보다 사랑을, 욕심보다 나눔을, 물질보다 믿음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삶을 배운다.
미래를 내려다보는 눈은 결국 신앙의 눈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내일을 보장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오늘의 삶을 지혜롭게 살아갈 때, 우리의 가정은 흔들림 없는 사랑의 터전이 된다. 풍요 속에서 감사하고, 부족 속에서도 기뻐하며, 서로를 향한 신뢰와 기도로 가정을 지켜나갈 때, 그 어떤 시대의 흐름도 우리의 사랑을 무너뜨릴 수 없다.
내려놓음은 단지 어제의 상처를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릴 향해 사랑의 씨앗을 심는 믿음의 행동이다. 그 씨앗이 자라, 자녀들의 미래가 은혜와 지혜로 풍성해지고, 우리의 가정이 세대를 이어 신앙의 빛을 전하는 집으로 세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