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간을 담고 인생을 담는 추억,

부제 : 21세기에 만학 이야기를 전하는 20세기 샐러던트

by 강효숙

35. 작은 불꽃


8년 만이었다.

한때는 매주, 거의 매일같이 얼굴을 보며 교회에서, 전국 연합회 활동, 직장선교와 여러 단체 지도자로, 봉사했던, 서로를 붙들며 웃던 우리였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바빴고, 멀어졌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른 채 흘렀다. 그 시간은 우리를 조금은 달라지게 했다. 몸도, 마음도.

어느 날, 마침내 다시 넷이 마주 앉았다. 장로, 전도사, 화가, 글쓴이. 화려하던 이름표들은 이제 조금 빛이 바랬고, 그 시절의 열정도 약간은 조심스러워져 있었다. 서로의 주름진 얼굴에 여전히 남아 있는 옛 모습, 그 안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무언가를 느꼈다. 작은 불꽃, 아주 작은.

나는 막내였다. 3세, 5세, 7세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운전대는 내가 잡았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살아온 언니들이 조수석과 뒷좌석에 앉아, 간간이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그중 연배가 가장 높으신 전도사님은 홀로 지낸 세월이 오래되었다. 말끝마다 외로움이 묻어났지만, 그의 음성은 담담했고, 눈빛은 여전히 단단했다. 어쩌면 사명이라는 이름은, 시간이 지나도 흘러지지 않는 것이리라.

화가였던 그 언니. 한때 전시회를 열고, 벽화를 그리고, 색으로 세상을 물들이던 그 손이 그립다.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오래되었지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언니, 다시 한번, 그림 그려보시면 어때요?” 그 순간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그토록 반가운 표정을, 나는 오랜만에 보았다. 그녀 안의 무언가가,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불씨는 살아 있었다. 그 불씨에 숨을 불어넣었을 뿐이다.

그러나 하루의 끝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이어졌다.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치셨다.

병원에서는 약간의 골절, 붕대를 감고 조심히 숙소로 돌아왔다. 다리가 불편해졌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화가의 얼굴이었다. 이상했다. 아프고 불편할 텐데, 그 얼굴에는 다시 그림을 꿈꾸는 설렘이 서려 있었다. 무릎은 금이 갔지만, 그 마음은 금 가지 않았다. 나는 그때 진심으로 생각했다. 아, 이건 작은 불꽃이 아니다. 이건 다시 타오르려는 시작이다.

여행길 곳곳에는, 오래 기억될 장면들이 흩어져 있었다. 차창 너머로 스치는 강물은 햇빛에 부서져 반짝였고, 바람은 시원하게 얼굴을 스쳤다. 그 산들과 강물을 바라보며 나눈 이야기 속에는, 웃음도 있었지만, 서로만이 알 수 있는 긴 시간의 무게도 스며 있었다. 살아온 길은 다 달랐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꽃을 피웠다. 때로는 길의 방향을 잃기도 했지만, 그 모든 시간이 오늘을 만든 소중한 뿌리였다


저녁 식탁 앞에 앉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여유라는 단어를 맛보았다. 따뜻한 음식과, 오래된 벗들의 웃음, 그리고 잔잔한 음악이 그 흐르는 공간에서 느낀 행복감은 어떤 화려한 연회보다 귀한 순간이었다.

식탁 위에는 음식이 있었지만, 마음 위에는 서로의 비전이 놓여 있었다.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갈지, 하나님께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다시 꽃 피울지, 그리고 서로의 불씨를 어떻게 꺼뜨리지 않을지에 대한 조용한 약속이 있었다

.

그날 밤, 우리는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다시 모여, 이번에는 더 넓은 세상을 함께,. 외국 여행으로. 오늘의 웃음과 내일의 꿈을 이어가기로 했다.

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어느 멋진 커피숍에 들렀다. 음악이 조용히 흐르고, 창밖으로 햇살이 기울어지는 시간, 빵을 나누어 먹으며 우리는 조용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쓸쓸했을까. 말은 없었지만, 모두가 느꼈다. 서로가 겪은 세월, 잃어버린 꿈, 감추었던 외로움.

그 모든 것을 다시 꺼내놓을 수 있는 이 따뜻한 동행. 짧았지만 깊었던 1박 2일. 그 여행은 단지 시간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다시 피어난 불꽃이었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길을 비춰줄 등불이 될 수 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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